[김성호의 씨네만세 1048]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개막에 부쳐
[김성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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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 반다페 |
다큐멘터리를 잘 보지 않았다. 하물며 중·단편 다큐야. 삶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극화해 꺼내놓는 극영화에 비한다면 다큐란 얼마나 단조로운가. 멋드러진 연출이며 있는지도 몰랐던 솜털까지 곤두세우는 명배우의 연기, 웅장한 음악과 몸을 내던지는 액션까지를 다큐에선 발견할 수 없지 않은가. 대단한 실화를 익히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내보이는 해외 유명 다큐라면 그래도 모르겠다. 내 집 안방에서 세기의 걸작을 찾아볼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미숙하기 짝이 없는 중·단편 다큐를 발품까지 팔아가며 봐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2년 전이겠다. 2023년 봄, 반짝다큐페스티발이란 이름의 영화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글을 청해온 이가 있었다. 20년을 이어온 인디다큐페스티발의 뒤를 이어 신진 다큐인을 발굴하고 영화팬들과 만남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이라 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초유의 팬데믹이 근근히 이어지던 인디다큐페스티발을 끝장낸 뒤였다.
어느 다큐인이 사재를 털어 목돈을 내놓았고, 또 다른 다큐인들이 그를 도와 사라진 장을 어떻게든 이어가자고 의지를 모았다고 했던가. 한국 유일의 비경쟁 다큐 영화제가 사라진 뒤 2년의 공백이 이들에게 얼마나 서러웠던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듯도 했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이 그 이름처럼 반짝- 하고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여겼었다. 글을, 모더레이터를 청해온 이들에게 내밀한 사정 이야기도 들었거니와, 지원은커녕 고난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윤석열 정권 지난 3년의 시간을 모르지 않은 때문이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조차 없는 단편 다큐를 다루며 기업 후원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을 알면 일하는 이들의 임금마저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뜻 있는 이들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어찌어찌 운영해온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오늘에 이르러 제3회째, 그것도 지난 두 회차보다 양과 질 모두에서 한층 발전한 작품군을 갖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나로선 자그마한 기적과 마주한 양 놀랍기만 하다.
얼마나 귀한 노력들이 모여 피운 꽃인가
그러나 어찌 기적일 수 있을까. 운영위원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작품 수급부터 영화제 운영, 심사, 상영에 이르는 일련의 수고로움을 감당한 이들, 또 이들의 수고에 물심양면 보답한 이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반짝다큐페스티발 앞에 '제3회'란 세 글자가 적힐 수 있었을 테다.
황무지였던 민둥산을 뒤덮은 울창한 숲 앞에서 그를 심어낸 노인의 노고 대신 기적만을 소환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없겠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을 일궈낸 이들, 그리하여 한국 문화예술계에 주목할 만한 단편 다큐를 선보일 유일한 창구를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씨네만세'에 옮겨보고자 한다.
모두 126명의 출품자, 126편의 출품작이 이번 영화제에 들어왔다. 개중 27편의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한국 다른 영화제와 겹치지 않으려는 발버둥 끝에 반짝다큐페스티발은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사흘 동안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인디스페이스에서 27편의 다큐를 소개한다.
어떤 작품을 들이고 어떤 작품을 들이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건 영화제의 성격과 지향, 그리고 수준을 내보인다. 마땅한 고심 또한 따를 밖에 없다. 문턱을 넘은 이에게도, 그렇지 못한 이에게도, 무엇보다 극장에서 작품과 마주할 관객 앞에서 제 선택을 설득해내야 한다. 아니, 적어도 그러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다음은 올해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운영위원 5인이 발표한 '선정의 변'이다. 일부를 덜고 문장을 다듬었으나 본 뜻을 훼손치는 않았다. 나는 이 짤막한 글귀 안에 이들의 진심이 녹아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째서 한국 중·단편 다큐와 대면해야 하는가. 한국 중·단편 다큐는 우리 시대에 어떤 유효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를 얼마쯤 짐작하도록 하는 마음들이 이곳에 담겼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을 지탱해 오늘에 이르도록 한 진심, 그 귀한 마음들이 글을 읽는 독자와 닿아 주말 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 또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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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시간표 |
ⓒ 반다페 |
문창현
치열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창작자들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창작자 각자의 고뇌에 공감하며 다큐멘터리가 현시대에 있어야 할 위치를 함께 고민할 수 있게 해주셔서 출품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짧은 시간 내에 126편의 작품을 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함께 들고 세상을 항해하는 사람으로서 자극도 많이 받았습니다. 실험을 멈추지 않고 세상과 호흡하는 숨은 이야기들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창작자들에게 존경의 마음 전합니다. 27편의 선정작이 관객분들과 만나게 될 시간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시대와 호흡하고 세상에 연대하며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번 작품들을 영화제에서 꼭 확인해 주시고, 함께 해주세요!
민다홍
한정된 시간 동안 밀도 높은 작품들을 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작품들을 보며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때로는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환경·여성·가족·지역·장애·젠더, 여러 사회적 이슈를 때로는 따듯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담아낸 작품들을 보며 저 또한 많은 배움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중단편 다큐멘터리들이 존재한다는 것, 꾸준히 새로운 작업이 이어지고 기록되어 진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은혜
작품은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작품을 심사하는 내내 감사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뜻깊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지닌 세계를 이곳저곳 떠다니며 여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창작을 이어가는 이들 앞에서 우리 또한 창작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모두가 자신의 세계를, 그리고 우리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조금이나마 희망찬 마음으로 함께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
이인섭
높은 완성도의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보내주신 작품들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위트에 빵 터져 웃기도, 깊은 고민에 마음이 찡해지기도, 허를 찌르는 질문에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즐겁기도 하고, 많이 배우기도 한 선정의 시간이었습니다.
쉽게 재단하고 판단하는 세상에서 다름을 알아가려고 하는 자세의 작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비틀어보는 작품, 사라지는 것들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적인 시선이 담긴 작품에 눈이 갔습니다. 저마다의 결로 반짝반짝 소중하게 빛나는 작품들을 제3회 반다페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게 기대됩니다. 마지막 한 작품까지도 운영위원 모두의 의견 교환을 거치며 치열하고 신중하게 선정했습니다. 이 과정이 더욱 빛나는 반다페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었길 바라며, 같이 작품을 선정한 운영위원분들께도 수고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정된 작품들이 영화제에서 많은 관객분들께 새로운 질문과 사유의 순간을 선사하길 바랍니다. 상영작으로 선정된 모든 감독님께 축하를 전합니다. 그럼, 영화제에서 뵙겠습니다!
조이예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Youtube 조회수를 위해서도 아닌데, 영상을 만들고 있었다니! 놀라웠습니다. 좋은 작품이 정말 많아서, 심사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습니다.
심사하는 동안 "우리는 돈 안 되는 다큐멘터리를 왜 만들지?"하는 질문이 종종 엄습했습니다. 다큐멘터리인으로서, 여러 생각이 드는 질문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이 질문을 현장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반짝다큐페스티발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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