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고급 인재 쟁탈전…뤼튼·토스 ‘현금 살포’
전 세계 LLM 구축 전문가 ‘1000명’도 안돼
경력·능력 갖춘 인재 유입 ‘하늘의 별 따기’
국내 인재 ‘아메리칸 드림’ 확산…‘처우 열악’
업계 개발자 “네카라쿠배=빅테크 이직 다리”
토스 광고 [토스 유튜브 채널 캡처]
“합격만 해도 2000만원 줍니다” “면접만 봐도 100만원 줍니다”
국내 IT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 토스 채용 공고 中
[헤럴드경제=차민주 기자] 정보기술(IT) 업계가 전례 없는 채용 한파를 맞이했지만, ‘인공지능(AI) 고급 인재’ 모시기만큼은 현금 살포를 불사하면서 인재 쟁탈전이 불거지고 있다.
AI 개발에는 고급 인재가 필수적인데, 한국의 두뇌 유출이 심각해지면서 국내 IT 스타트업이 인재 유입을 위해 ‘초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생성형 AI 전문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이하 뤼튼)은 채용 일정을 공지하면서 합격 인원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파격 조건을 내걸었다. 합격자는 실제 근무를 하지 않고 합격만 하더라도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토스 또한 지난 9일 1000명대 대규모 채용 일정을 발표하면서 1차 직무 면접을 보는 인원에게 면접비 100만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광고와 커머스(쇼핑) 전문성 있는 서버 개발자, ML(머신러닝) 엔지니어를 집중 채용할 예정이다.
업계 내 이 같은 현금 살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넥슨, 슈퍼캣 등 게임사는 우수 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 수백만원대 채용·면접·추천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반면 이번에는 단순 개발자가 아닌 ‘AI 고급 인재’를 확보하고자 현금 살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쏠린다.
뤼튼은 올해 채용 공고를 내면서 합격한 인원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뤼튼 공식 홈페이지 캡처]
AI 고급 인재 유치는 ‘하늘의 별 따기’…“경력 5년 이상도 찾기 어렵다”
이들이 현금 살포를 불사하는 까닭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제대로 된 AI 고급 인재를 데려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입을 모은다. 생성형 AI 시대가 지난 2022년 오픈AI의 챗GPT 출시를 기점으로 촉발된 만큼, 경력과 능력을 모두 갖춘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2024 이공계 박사 추적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배출된 국내 이공계 박사 9247명 중 AI 분야는 61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이공계 박사 중 약 6.68%만 차지하는 수준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은 지난해 거대언어모델(LLM) 구축 자격을 갖춘 AI 전문가는 전 세계 1000명 미만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IT는 오로지 사람에게 의존해 돌아가는 업계인데, LLM 개발 부서를 통솔할 수 있는 핵심 인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력 5년을 넘는 인재를 찾는 것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 국내 IT 대기업 인사 담당자 김모(36)씨는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AI 응용 분야와 달리, LLM 설계나 AI 반도체 제어 소프트웨어(SW) 개발 등 AI 기반 기술 분야 전문가는 상위권 대학 석박사는 갖춰야 한다”며 “이 같은 고급 인재는 찾기 힘들고, 찾는다고 해도 해외로 떠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AI 인재 ‘아메리칸 드림’ 확산…10명 중 4명 해외 유출
더 큰 문제는 국내에 석박사 학위 등을 갖춘 AI 고급 인재가 있다고 해도, 이들 대다수가 해외로 유출된다는 점이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산하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 중 40%가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최상위 AI 연구자들이 졸업 후 활동하는 국가는 미국(57%)이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AI 고급 인재가 해외로 떠나는 까닭으로는 국내 기업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낮은 처우가 꼽힌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세계 인재순위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고숙련 인재가 느끼는 기업 환경 만족도’ 순위는 2023년 47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5년 37위보다 10위 하락한 수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픈AI 연구원 초봉은 11억3000만원으로, 국내 기업 초봉 수준과 경쟁 자체가 불가하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AI 관련 학부생·대학원생 사이에서는 이미 ‘아메리칸 드림’ 기조가 거세다. 한국에서 AI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박사 과정을 준비 중이라는 오모(30)씨는 “같은 연구실에 있는 이들 중 과반수가 이미 한국은 미국에 비해 AI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 미국행을 바라보고 있다”며 “나 또한 빅테크 취업에 유리할 수 있도록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국내 IT 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이를 빅테크 이직 ‘징검다리’로 활용하려는 인재도 많다. ‘네카라쿠배’ 중 한 기업에 종사하는 개발자 최모(28)씨는 “여기서 유학 자금을 모으고 경험을 쌓은 뒤,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빅테크로 이직하는 게 목표”라며 “나뿐만 아니라 이미 동기 대여섯명이 같은 사유로 퇴직하거나, 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분야 야망 있는 인재들 사이에서 네카라쿠배는 빅테크를 위한 하나의 이직 경로로 여겨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복잡한 IT 뉴스, 에라잇! 권제인·차민주 기자가 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