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가지고 내 아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상당히 가슴이 아파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냐”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30일 강원 원주시 문화의거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30일 아내 설난영씨에 대해 “저와 함께 가는 그 길이 늘 가시밭길이고 힘든 길인데 가장으로서 지켜주면서 저와 산 지가 벌써 44년이 됐다”며 “그동안 저를 지켜주고 함께해준 제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날 강원 춘천 유세에서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데, 제 아내한테는 특히 부족하다. 제 딸한테도 (민주화운동으로 수감 생활하느라) 장난감 하나 사준 적도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후보는 연설 도중 감정이 격해진 듯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김 후보는 “정치가 아주 비정하다. 정치라는 게 서로 마주하다 보면 그런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래도 제 아내를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건 과연 그게 맞느냐”며 “저는 대통령보다도 가정이 더 중요하다. 가정이 없다면 대통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했다.
앞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28일 밤 공개된 친민주당 성향 유튜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방송에 출연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에 대해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대통령 후보 배우자 자리에 있어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노동자·학력 비하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김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고졸이라는) 학력을 가지고 제 아내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제가 상당히 가슴이 아프고,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냐”며 “저는 제 아내가 저 때문에 또 상처를 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후보는 “제 아내는 저 때문에, 저하고 같이 운동하고 이러다가 또 잡혀서 경찰서 유치장에도 두 번을 갔다”며 “저하고 같이 한 번 가고,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또 저 석방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갔다. 한 번 들어가면 열흘씩 있는데, 유치장에도 갇혀 있고 했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 후보가 춘천에서 아내에 대해 발언한 유세 연설 전문.
제가 이렇게 ‘제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 하고 왔다. 제 아내는 전라남도 순천 사람이다. 그래서 순천여고를 나오고 그다음에 구로공단에 와서 세진전자라는 공단에 노조위원장을 하다가 저를 만났다. 저는 당시에 대학을 들어갔다가 대학에서 데모한다고 두 번 잘렸다. 두 번 잘린 다음에 공장에 7년을 다녔다. 공장 다니면서 거기서 노조위원장이 되었는데, 제가 그 지역노조에서 저는 청년부장, 제 아내는 여성부장을 했다. 그래서 둘이 활동하다가 그냥 거기서 눈이 맞은 게 아니고 제가 처음에는 프로포즈를 했는데, 제 아내가 ‘시집갈 생각 없다’ 해서 퇴짜를 먹었는데, 나중에 제가 잡혀가서 고문도 많이 당하고 감옥 갔다 왔는데, 나오고 난 다음에 바로 80년 그때 계엄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때 80년에 전두환 대통령이 올라오기 전에 계엄이 되어서 제가 삼청교육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삼청교육 잡아서 보내면 강원도 군부대 와서 추운데 봉체조하고 잘못하면 죽으니까 당시에 그때 담당하던 근로감독관이 저보고 ‘빨리 안 피하면 당신이 가서 창자가 터져서 죽을지도 모르니 빨리 피하라’ 그래서 제가 얼른 도망가서, 갈 데가 없다. 그래서 제 아내하고 동생들이 자취하는 방이 있었는데 그 방 다락방에 숨어 있다가 계엄 끝나고 난 다음에 둘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제 아내는 결혼하기 전부터 저를 계엄을 피해서, 삼청교육을 안 가도록 피하도록 저를 다락방에 숨겨줘서 제가 삼청교육을 면했다. 저 대신에 제 부위원장, 제가 없어진 다음에 부위원장 하는 그 사람이 삼청교육대가서 고생하고, 그 사람 지금도 상당히 어려운데, 정말 어려운 때 저를 숨겨주고 또 저를 지켜준 사람이고, 그 뒤에 결혼했는데, 결혼식을 하는데 돈이 없었다. 돈 20만원 밖에 없었다.
그때 예식장을 빌릴 능력도 없고 그래서 제 아내가 드레스도 못 입고, 그냥 아무것도 없이 청첩장도 없고, 예식장도 못 빌리고, 그냥 교회 교육관이 하나 빈 데가 있어서 아무것도 음식점도 없이 그냥 결혼식만 했는데, 저도 해고자이고, 제 아내도 해고자이고, 그 사회하는 분도 그때 계엄 때 잡혀가서 군부대 잡혀가서 나온 해고자, 동양강철이라는 노조위원장, 그다음에 주례한 사람이 대한전선 위원장이다.
그때 저희들이 청첩장이 없다 보니까 하객들이라고는 경찰들이 ‘이거는 위장 결혼이다.’ 그때는 계엄 상태니까 위장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서 결혼식 빙자해서 모여서 결혼식이 그냥 한다. 그래놓고 시위를 하는 것이다. ‘전두환 물러가라’ 그렇게 하는. 그러니까 경찰들이 다 와서 지키고 있었다. 경찰차가 닭장차가 와서 하객은 전부 경찰관들이 둘러싸여서 제가 결혼식을 마쳤는데, 그러고 단칸방, 봉천동, 서울에 꼭대기에 화장실도 없는 그런 방을 얻어서 거기서 제 딸 하나를 낳고, 제 아내는 작은 책방을 하나 하면서 해고되어서 그땐 블랙리스트가 있어 취직이 안 된다.
거기서 책방를 하면서 저를 먹여 살리고, 제가 또 감옥을 2년 반을 또 갔다. 아기 4살 때쯤, 그때도 감옥이 목포, 광주가 있었는데, 면회도 오면서 저를 뒷바라지하고 그렇게 했다. 그래서 저는 가장이 아니고, 제 아내가 우리집 가장이고, 저는 건달이다. 데모하다가 감옥 가고, 이런 짓만 하고 살다가 제가 어떻게 해서 지금은, 만날 때는 대학 졸업장도 없고 고등학교 다니다가 대학 들어가서 잘려서 있고, 제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는 위원장이고, 저는 결혼하고 난 다음에 13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래서 그때는 우리 둘이 결혼할 때는 우리 둘 다 대학 졸업장 없는 상태에서 결혼했는데, 저는 7남매가 있다. 7남매 있는데 우리 큰누나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오고, 그다음에 저만 대학을 갔지 나머지는 대학 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7남매 중에 6명이 대학을 못 갔지만, 다 저보다 잘 산다. 제가 제일 못산다. 저는 돈 버는 데 관심도 없고, 계속 데모하고 저는 우리 대한민국을 살려야 된다. 민주주의를 살리자, 우리 국민을 위해서 나는 봉사하는 사람이지 내가 돈 버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돈을 벌어서 집에 가져 준 적도 없는데, 제 아내가 이런 무능하고 이상한 남편을 만나서 고생 많이 했는데, 제가 감옥 가 있을 때 제 딸도 다 혼자서 키우고, 그래서 정말 저는 가장이 아니고, 아버지로서 할 일도 별로 못하고, 또 남편으로서 집에 돈도 좀 갖다 줘야 되는데 못하고 그래서 저는 가장으로서 별 볼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 집 가장, 제 아내 정말 이 부족한 저를 늘 돌봐주고, 늘 뒤에서 도와주는, 그리고 살림을 맡아서 살아주는 제 아내가 뭐 잘못된 게 있는가.
그런데 요즘에 어떤 사람이 유시민이라는 친구 제가 잘 안다. 제 대학교 바로 후배고, 또 유시주 라는 유시민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 사람이 구로공단에 취업해서 거기하고 저하고 노조 운동을 하다가 같이 감옥에 갔다. 두 사람만이 아니라 그때 14명이 갔는데 그중의 하나가 유시민의 여동생이라서 제가 감옥 가 있을 때도 같이 가족들끼리 잘 알고 제 아내하고 유시민도 잘 알고 다 잘 안다.
아는데 지금 이 정치가 아주 비정하다. 그래서 정치를 하다 보니까 제가 경기도지사를 두 번째 나갈 때 유시민이 또 그 당시에 출마해서 저하고 대결을 했다. 1 대 1로 맞붙었는데 제가 그때는 제가 당선되고 그 사람은 떨어졌다. 그런데 정치라는 게 뭐 서로 이렇게 마주하다 보면 그런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래도 제 아내를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거는 과연 그게 맞는가.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나오거나 우리 큰 누나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우리 가족이 다 대학을 한 사람이 저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우리 누나를 조금도 공부를 덜 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저보다 더 지혜롭고, 저보다 더 잘하고 또 우리 누나들이 다 고등학교, 형님 고등학교, 동생도 고등학교, 이렇게 나오고 대학을 안 나왔지만 다 저보다 잘살고 더 착하고 더 잘한다.
저는 그래서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저는 대학을 25년 만에 졸업했다. 그런데 저는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 대학 나온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을 안 나오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든지, 대학을 안 나오면 영부인이 될 수 없다든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김대중 대통령은 상고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도 상고 나온 거 아시는가. 권양숙 여사는 여상 중퇴밖에 안 했다. 졸업도 안 했다. 그래도 잘 한다.
그래서 이 학력을 가지고 우리 제 아내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제가 상당히 가슴이 아프고, 저로서는 정말 정치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냐, 그래서 정말 가슴이 매우 아프다. 저는 그래서 제 아내가 저 때문에 또 상처를 받는 거 이런 걸 저는 원하지 않는다. 제 아내는 저 때문에, 저하고 같이 운동하고 이러다가 또 잡혀서 경찰서 유치장에도 두 번을 갔다. 저하고 같이 한 번 가고,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또 저 석방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갔다. 한 번 들어가면 열흘씩 있는데, 유치장에도 갇혀 있고 했다.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데, 제 아내한테는 특히 제가 부족하고, 제 딸한테도 제가 장난감 하나 사준 적도 없다. 정말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저는 대통령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정말 가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내도 중요하고, 딸도 중요하고, 가정과 가족이 우리 대한민국을 받쳐주는 굉장히 중요한 힘이 아닌가. 가정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대통령이 무슨 소용이 있고 다 소용이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분, 정말 사랑하는 제 아내, 저 때문에 처음에 제가 대통령 나간다고 그러니까 저보고 도장 찍고 나가라고 그랬다. 그런데 제가 도저히 도장 못 찍으니까 한 번만 저를 생각해서 좀 도와주라고 사정사정해 가지고 한 달 만에 제가 해서 나왔는데, 결국 이렇게 출마하고 보니까 온갖 욕을 먹고 상처를 받고 이런 거 보니까 역시 정말 저와 가는 그 길이 늘 가시밭길이고 힘든 길, 이런 거를 가장으로서 지켜주면서 이렇게 저하고 지금 산 지가 벌써 44년이 됐다. 44년 동안 저를 지켜주고 함께해 준 제 아내가 저는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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