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존재감 부각 소득
상속세 인상 등 진보의제 전면에
사이다 발언 등 지지층 호응 얻어
타협없는 원칙주의엔 평 엇갈려
“윤석열씨가 12월3일 내란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는 지난달 18일 첫 TV토론에서 거침없는 공격으로 원외 정당에 가려져 있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를 “무슨 자격으로 선거에 나왔냐”며 몰아세웠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당장은 어렵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겐 “영원히 못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날 권 후보는 거대 양당 후보들을 제치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량 1위에 올랐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후보가 3일 서울 구로구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까지 중도 보수를 자처한 이번 대선에서 권 후보는 유일한 ‘진보 후보’였다. 일찌감치 빅텐트에 올인한 민주당은 대립이 첨예한 젠더(성별)·노동 의제에 대해 언급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고 ‘노동 존중’을 내세운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 후보는 민주당이 주지 못하는 ‘사이다 발언’으로 진보 유권자의 호응을 얻었다. 토론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이름을 읊으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옹호했고, 상속세 최고세율 인상·부유세 신설 등 타협 없는 진보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권 후보는 정치적으로 진보 정당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대선에 나섰다.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민주당과 협력한 정의당은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침묵하면서 ‘민주당 2중대’ 꼬리표가 붙었다.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는 2022년 대선에서 2%대 득표율로 참패했고, 녹색정의당 연합은 지난해 총선에서 원외로 밀려났다.
정치인으로서 권 후보에 대해선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그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세월호 참사 등 굵직한 노동 사건과 사회적 참사를 변론하며 정치인보다는 ‘거리의 변호사’로 알려진 사람이다. 김 후보와 악수를 거부하는 대쪽 같은 캐릭터는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평도 있다. 반면 이런 원칙주의적 태도가 진보 정당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기에 강점이 될 거란 반론도 있다.
권 후보는 스스로도 당선이 어렵다는 사실을 본인도, 정당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 의제가 사라진 이번 대선에서 “광장의 목소리를 되살리겠다”는 그의 출마 선언만큼은 토론회를 통해서, 또 사회적 약자의 손을 잡은 유세장에서 지켜졌다. 그가 2000년대 초 민주노동당이 그랬듯 진보 정당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킬 수 있다면 진보 정치에도 새 활로가 열릴지 모른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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