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더 교묘해진 중고거래 사기
구매자 아닌 판매자가 타깃
외부의 가짜 사이트로 유인
포인트 환전 미끼로 입금 종용
소액사기라 대처하기 쉽지 않아
경찰 인프라도 턱 없이 부족해
전문가들도 “뾰족한 수 없어”
늘어나는 중고거래 피해자
이대로 두고봐도 괜찮을까
판매자를 타깃으로 하는 중고거래 사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신종 중고거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들 사기꾼은 특이하게도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에게 접근합니다. 물건을 빨리 팔고 싶은 판매자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의 의도대로 순순히 움직이게 만들죠. 판매자는 부지불식간에 수십만원의 돈을 사기꾼에게 빼앗깁니다.
# 문제는 중고거래 사기 특성상 피해 사례가 늘면 늘지 줄어들진 않을 거란 점입니다. 대부분이 소액사기여서 피해자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데다, 경찰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한 탓입니다. 더스쿠프가 신종 중고거래 사기 수법을 파헤쳐봤습니다.
골프채를 팔기 위해 중고거래 앱에 게시물을 올린 황의현(가명)씨. 얼마 뒤 A씨로부터 '물건을 사고 싶다'는 쪽지를 받았습니다. "10만원이에요." 가격을 제시한 의현씨에게 A씨는 대뜸 한 사이트 주소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가 제가 쓰는 중고거래 사이트인데, 여기 가입해서 골프채를 상품으로 등록해줄 수 있어요? 제가 모아둔 포인트를 써서 구매하고 싶어서요."
의현씨는 회원이 보내준 사이트에 가입하고 골프채를 판매 상품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러자 '물건이 판매됐다'는 알림이 뜨면서 의현씨 계정에 10만 포인트가 입금됐습니다. 환전 방법을 묻는 의현씨에게 사이트 상담원은 "환전하려면 보증금 15만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의현씨가 돈을 입금해도 포인트는 현금화되지 않았습니다. 상담원은 "전산 오류로 계좌가 동결됐다" "추가로 입금해야 동결이 풀린다"는 알쏭달쏭한 답변만 늘어놨습니다. 수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입금한 돈이 있었기에 의현씨는 별수 없이 상담원의 안내에 따를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3차례에 걸쳐 입금한 돈은 총 45만원. 그럼에도 상담원은 계속해서 추가 입금을 요구했습니다. 그제야 사기인 걸 깨달은 의현씨는 거래를 중단하고 해당 사이트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만 5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자의 지인이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신종 중고거래 사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구매자에게 물건을 보내지 않은 채 돈만 받고 잠적하는 게 일반적인 수법이었다면, 이 신종 사기의 타깃은 '판매자'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앞의 사례에서 봤듯 사기꾼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자와 접촉해 자신이 만든 사이트에 물건을 등록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물건이 팔린 것처럼 꾸미고 포인트를 지급한 뒤 '포인트를 환전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며 입금을 유도하죠.
이 신종 사기에 걸려든 피해자는 적지 않은 듯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사이트에서 사기당한 피해자들을 찾습니다'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의현씨가 알음알음 검색해 들어간 오픈채팅방에는 한 사기꾼에게 당한 피해자만 20명이 넘었습니다.
신종 사기 때문인지 통계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4년 12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발생한 중고 거래 사기는 총 8만1252건에 달했습니다. 하루 평균 258건씩 연간 10만건 이상의 중고 거래 사기가 발생하는 셈인데, 이는 2020년(12만3168건) 이후 4년 만의 최대치입니다.
민간 서비스에 접수된 피해는 이보다 더 많습니다. 비영리로 활동하는 금융사기 방지 서비스 '더치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고 거래 피해는 2020년 24만5500건에서 2024년 36만4643건으로 4년 새 48.5%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피해 금액도 2020년 1862억5000만원에서 3565억1000만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중고 거래 피해를 겪은 상당수가 20대(36.4%), 30대(26.8%) 등 비교적 젊은 이용자란 점입니다. 이들 이용자층이 활발하게 중고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뒤집어보면 인터넷에 밝은 젊은층이 당할 정도로 사기 수법이 교묘해졌다는 얘기도 됩니다.
■ 판매자 심리 악용 = 사례로 언급한 신종 사기 수법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들 사기꾼은 구매자보단 판매자가 더 절실하다는 점을 악용해 돈을 가로챕니다. 의현씨는 "아무래도 물건을 빨리 처분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경계를 덜 했던 것 같다"면서 "설마 판매자인 내가 사기를 당하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사기꾼이 알려준 사이트도 겉보기엔 그럴싸합니다. 의현씨가 가입한 사이트는 여느 중고 거래 플랫폼 못지않게 등록된 물품이 많았고,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상품 대부분이 비공개 또는 품절로 처리돼 있었지만, 의현씨는 이를 '아는 사람들끼리만 쓰는 폐쇄형 장터'쯤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사기는 말할 것도 없이 불법입니다. 형법 제347조에 따르면 사람을 기망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문제는 현행법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점이죠. 의현씨만 해도 사기를 당하자마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서 관계자는 "조사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 소액의 아이러니 = 왜 사기꾼을 좀처럼 잡지 못하는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중고거래 사기의 대부분이 '소액사기'란 점이 이유 아닌 이유로 지목됩니다. 의현씨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피해 금액이 1명당 몇만원에서 몇십만원에 그친다. 100만원 이상 사기를 당한 사람은 얼마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오픈채팅방에서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수업료 낸 셈 친다. 피해액이 적으니 경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중고거래 사기를 수사할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중고거래 사기를 담당하는 사이버 수사팀이 속한 경찰서는 전국에 259개. 하루에만 평균 258건씩 발생하는 중고거래 사기를 일일이 처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사기엔 기본적으로 제3자 명의인 대포폰과 대포통장이 쓰입니다. 사기꾼을 특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수사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 집단소송 있지만… = 피해자가 모여 집단소송을 진행하면 수사 속도를 어느 정도 높일 순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제출한 공통의 입금 계좌와 입금 시점, 전화번호 등을 통해 범죄 네트워크의 윤곽과 피해 규모를 좀 더 효과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급했듯 개별 피해 금액이 적다는 점이 피해자의 연대를 어렵게 만듭니다. 악순환이죠.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도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조새한 변호사(법무법인 자산)는 "소액사기에선 피해자가 자신의 치부를 알리기 싫어 경찰에 알리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이상은 사기꾼을 색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소액사기의 아이러니다. 지금으로선 믿을 만한 중고거래 앱 안에서만 거래하는 등 소비자가 스스로 조심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우리에게 중고거래는 어느덧 일상이 됐습니다. 그만큼 중고거래 이용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사기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죠. 이제는 구매자는 물론 판매자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아직까지 전무한 게 현실입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계속 두고만 봐야 하는 걸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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