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칙 감독의 NFL 6차례 우승 명성 추락..."이런 꼴이 어디 있나" 팬들 분개73세 노인과 24세 여자친구의 행복한 모습(사진=조던 허드슨 SNS)
[스포츠춘추]
빌 벨리칙(73). 미식축구 NFL에서 20여 년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이끌며 6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감독이다. 선수들에게는 "잡음을 무시하라"고 가르쳤고, 언론 앞에서는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정반대 상황에 처했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잡음'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문제는 49세 연하의 여자친구 조던 허드슨(24)이다. 지난해부터 공개적으로 교제를 시작한 이 젊은 여성이 벨리칙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면서 미국 스포츠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벨리칙이 지난해 말 노스캐롤라이나대 풋볼팀 감독으로 새 출발을 시작한 뒤 허드슨의 '월권'이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 2월 벌어졌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대는 HBO의 유명 다큐멘터리 '하드 녹스' 촬영을 확정했다. 대학팀으로는 최초였고, 신입생 유치에 엄청난 도움이 될 기회였다. 그런데 허드슨이 제작진에게 "내용 승인권과 프로그램 지분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촬영이 무산됐다.
노스캐롤라이나대 관계자들은 경악했다. 학교 직원도 아닌 감독의 여자친구가 대학의 중요한 사업에 개입한 것이다. 허드슨이 다른 제작사와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도 충격을 더했다. 벨리칙과 허드슨이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해 SNS에 올린 이미지(사진=조던 허드슨 SNS)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벨리칙이 부임한 지 몇 주 만에 허드슨은 학교 이메일 참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학교 홍보팀에는 요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건넸다. 심지어 벨리칙의 아들이자 수비코디네이터인 스티븐 벨리칙의 업적을 더 홍보하라고 학교 소셜미디어팀에 지시하기도 했다.
결정타는 지난달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터졌다. 기자가 벨리칙에게 "허드슨과 어떻게 만났느냐"고 묻자, 카메라 밖에서 허드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단호하고 차가운 톤이었다.
25초짜리 이 장면은 순식간에 인터넷 밈이 됐다. "감독을 조종하는 20대 여자", "이 사람이 정말 벨리칙 맞아?" 같은 댓글이 쏟아졌다. 해당 장면 외에도 허드슨이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개입했고, 급기야 촬영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벨리칙까지 따라나오라고 했다는 후문까지 나왔다.
NBA 명예의 전당에 오른 찰스 바클리는 "오랜 친구로서 걱정된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때 벨리칙과 함께 일했던 전 패트리어츠 단장 업튼 벨은 더욱 신랄했다. "모든 것을 통제했던 남자가 이제 다른 사람에게 통제당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미용사에서 사업가로, 24세 나이에 800만 달러 부동산 보유
73세 노장을 조종하는 '비선실세' 허드슨은 누구인가. 메인주 작은 어촌 마을에서 자란 허드슨은 부모의 양식업이 망한 뒤 매사추세츠로 이주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용실에서 일했고, 대학에서는 치어리더로 활동하며 두 차례 전국 우승을 차지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사업 감각이다. 24살의 젊은 나이에 16개의 회사를 운영하며 800만 달러(112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 이름들도 눈에 띈다. '채플 빌', '코치 쇼', 'BB 버전' 등 모두 연인인 벨리칙의 이름을 딴 것들이다.
특히 'BB 버전'이라는 이름은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상술을 그대로 베꼈다. 스위프트가 자신의 앨범 소유권 문제로 기존 곡들을 '테일러 버전'으로 다시 발매한 것처럼, 허드슨도 벨리칙의 유명한 구호들("휴식일은 없다" "네 일을 해라")을 '빌 버전'으로 상표 등록해 사업에 활용하려 한다는 평가다.
벨리칙과 허드슨은 2021년 2월 비행기 안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69세였던 벨리칙이 20세 대학생 허드슨이 읽던 철학 교재에 관심을 보이며 대화가 시작됐다. 벨리칙은 책에 "논리학 강의 고맙다"며 자신의 슈퍼볼 우승 기록과 함께 사인을 남겼다.
허드슨은 이날을 '만남의 기념일'이라 부르며 매년 SNS에 기념 포스트를 올린다. 팔로워 11만 명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벨리칙과의 일상을 공개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할로윈 때는 자신이 인어, 벨리칙이 어부 차림을 한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됐다. 해변에 누운 벨리칙이 허드슨을 '비행기' 태우는 사진도 유명하다.허드슨과 벨리칙(사진=조던 허드슨 SNS)
벨리칙-허드슨 커플을 바라보는 미국 내 여론은 싸늘하다. 외신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대의 한 오랜 후원자는 학교 총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손녀뻘 나이 여자가 연습장을 드나들며 인터뷰까지 좌지우지하는데도 감독이 아무 말 못하고 있다"며 "이런 꼴이 어디 있나. 대학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분개했다.
언론도 가세했다. 팟캐스터 메긴 켈리는 이를 "노인 학대"라고 표현했다. 스포츠 전문 매체들은 "벨리칙이 통제력을 잃었다" "20년 넘게 쌓아온 명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다시는 프로팀 감독 자리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벨리칙 자신의 변화도 화제다. 과거 정장 차림에 무표정으로 기자회견에 임했던 그가 이제는 해진 운동복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CBS 인터뷰에서는 낡은 스웨트셔츠 차림이었는데, 이를 두고 현지에선 "여자친구가 옷도 제대로 안 챙겨주나"는 조롱까지 나왔다.
허드슨의 활동 반경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판단력이 온전했던 시절의 벨리칙이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던 연습장에도 자유롭게 출입한다. 크로아티아 대통령 재선 축하 행사에 동행해 "5년 임기 동안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SNS에 올리기도 했다.
메인주 출신답게 어업 정책에도 목소리를 낸다. "실향한 어부의 딸로서 메인 어업 가족들을 보호하겠다"며 정치인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스 메인 USA 대회에도 출전해 2위를 차지했는데, 벨리칙이 현장에서 지켜봤다. 개인적 명성과 야심을 위해 벨리칙을 이용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이유다.73세 노인과 24세 여자친구의 행복한 모습(사진=조던 허드슨 SNS)
물론 나이차가 큰 커플의 연애가 불법은 아니다. 성인 간의 자유로운 교제는 개인의 권리다. 하지만 미국 언론과 스포츠계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사적 관계가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대학 감독이라는 것은 단순히 경기만 지휘하는 자리가 아니다. 수백 명의 학생선수들을 이끌고, 수억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학의 명성을 책임지는 중책이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의 개인적 판단이 흐려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와 선수들에게 돌아간다.
실제로 노스캐롤라이나대는 이미 HBO 다큐멘터리 기회를 놓쳤고, 팬들과 후원자들의 신뢰도 잃어가고 있다. 벨리칙 개인의 평판도 추락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책임져야 할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시니어스 칼리지의 앨리스 레퍼트 교수는 "팬들이 알고 있던 냉철한 감독과 지금 보이는 모습 사이의 충돌이 관심을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벨리칙은 허드슨을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업무적 관계"라고 설명하며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벨리칙이 계약금 100만 달러(14억원)만 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점도 노스캐롤라이나대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에게는 그 정도 돈은 용돈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만약 허드슨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면 벨리칙이 주저 없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과연 학교의 요구와 여자친구의 뜻이 충돌할 때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뻔해 보인다.
올 시즌 개막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과연 벨리칙이 필드에서 제대로 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사적인 관계에 이토록 휘둘리는 모습을 보인 그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믿기 힘들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한때 '잡음을 무시하라'고 가르쳤던 명장이 지금은 그 잡음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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