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제공
이번 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표지에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 고도 2650m에 설치되고 있는 광시야 반사망원경 '베라 C. 루빈 천문대(베라루빈 천문대)'의 모습이 실렸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카메라를 탑재한 광시야 관측 장비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최근 시운전에 들어갔으며 올해 말 연구 목적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정규 과학 관측 단계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이언스는 18일(현지시간) 베라루빈 천문대와 베라루빈 천문대가 주도하는 '대형 시놉틱 관측망원경(LSST, Legacy Survey of Space and Time)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했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4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 첫 광자(photon)를 포착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베라루빈 천문대의 주 관측 장비이자 세계 최대 크기의 디지털 천체 카메라다. 당시 실제 이미지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본격적인 과학 관측에 앞서 마지막 장비 조정과 성능 최적화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베라루빈 천문대에 설치된 디지털 카메라는 지름 8.4m의 거대한 주반사경을 갖고 있으며 3200만 화소가 넘는 초고해상 카메라다. 무게는 무려 3톤(t)이다. 영하 100한 번에 보름달 40개 크기에 해당하는 범위의 하늘을 촬영할 수 있다. 카메라가 포착한 영상은 초고화질 TV 400대를 이어 붙여야 볼 수 있을 정도로 해상도가 높다.
카메라 내부에는 영하 100℃로 냉각된 빛 감지 센서(광센서) 189개가 있다. 차가운 광센서는 별빛을 아주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 센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최소화해야 더 선명하고 정확한 영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센서가 뜨거워지면 잡음(노이즈)이 증가해 우주에서 오는 희미한 빛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 밤하늘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영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축적하는 방대한 데이터에는 총 200억개의 은하와 별의 색채, 밝기, 거리 정보가 담긴다. 공간뿐 아니라 시간 축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우주 지도를 만들기 위한 핵심 자료가 축적된다.
카메라 촬영 한번에 30초가 걸리며 카메라는 5초도 채 되지 않아 다음 구역으로 방향을 이동해 연속 촬영을 이어간다. 이러한 방식으로 베라루빈 망원경은 약 3일 만에 관측 가능한 하늘 전체를 스캔하고 다시 처음부터 관측을 반복한다. 반복적으로 촬영된 파노라마 영상은 결국 우주의 변화를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우주 타임랩스'로 만들어진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세계 최대의 남반구 전천 탐사인 '대형 시놉틱 관측망원경(LSST, Legacy Survey of Space and Time) 프로그램을 올해 말 시작한다. LSST 프로그램은 광범위한 남쪽 하늘 전체를 반복적으로 관측해 고해상도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우주의 95%를 차지하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비밀을 밝힐 것이다. 암흑물질은 베라루빈 천문대의 이름이기도 한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1970년대 은하 회전을 관측하며 처음으로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했다.
이후 수많은 이론과 실험이 이어졌지만 아직 정체는 규명되지 않았다. 암흑에너지는 1990년대 말 우주의 팽창 속도가 가속된다는 관측 결과를 통해 제기된 개념으로 작용 원리는 미지로 남아 있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초신성 폭발, 감마선 폭발처럼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밝아지는 천체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 우리은하가 형성될 당시 합병된 왜소은하에서 끌려온 항성 흐름까지 추적한다. 이를 통해 은하의 진화사를 복원할 수 있다. 항성 흐름의 구조와 왜곡은 암흑물질과의 중력 상호작용을 반영하기 때문에 소규모 구조에서 암흑물질의 성질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베라루빈 천문대는 또 우주 전체에 분포된 은하들의 불균등한 배열인 ‘우주 거대 구조’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계에서 우주 거대 구조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위에 보통 물질이 응집된 결과로 이해된다. 이들 물질의 정밀한 분포를 관측하는 것은 우주의 초기 형성 조건과 암흑물질의 중력 작용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중력렌즈 현상'도 베라루빈 천문대의 주요 관측 대상이 된다. 중력렌즈 현상이란 강한 중력을 가진 암흑물질이 마치 렌즈처럼 뒤쪽 천체의 빛을 휘게 만들어 왜곡되거나 증폭된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현상이다. 암흑물질의 분포와 밀도, 시간에 따른 변화를 간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베라루빈 천문대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는 유럽우주국(ESA)의 우주망원경 '유클리드'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낸시그레이스로먼우주망원경 등과 함께 우주 탐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베라루빈 천문대의 시운전 이미지는 23일 공개된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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