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충돌에 글에너지 수송로 ‘호르무즈 봉쇄’ 현실화 우려
유가·물류비 급등 조짐에 산업계 긴장…WTI 한때 78달러 돌파
수입 의존 한국경제 압박 커져...“봉쇄해도 장기화 가능성 낮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연합뉴스
미국이 중동 갈등에 직접 개입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들면서 한국 경제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유가와 물류비가 동반 급등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에너지·물류·수출 전반에서 ‘제2의 오일쇼크’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3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에 미국까지 개입하면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이에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각국 정부와 산업계도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봉쇄되면 대체 불가능”…에너지·물류 공급망 비상
한국시간 이날 오전 11시25분 기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 대비 2% 넘게 오른 배럴당 75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개장 직후엔 78.40달러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도 한때 81달러를 기록한 뒤 2%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가격도 리터당 1730원을 넘어서며 연일 고점을 경신 중이다.
중동 정세가 장기화되거나 해협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경제적 파장은 한층 커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35%, 액화천연가스(LNG)의 33%가 통과하는 전략적 해상 요충지다.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 해협을 거친다.
미국은 지난 21일(현지시간) B-2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 세 곳을 타격했고 이에 대응해 이란 의회는 해협 봉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이란이 해협을 실제로 봉쇄할 경우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의 결정에 따라 봉쇄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협의 폭이 가장 좁은 구간은 33㎞에 불과해 대부분 유조선이 이란 영해를 지나야 하며 대체 항로도 사실상 없다. 과거 중동발 무력 충돌 때마다 해상 운임과 유가는 급등해 왔다. JP모건체이스는 해협이 실제 봉쇄되거나 중동 전역으로 갈등이 확산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 중인 한국 선박의 선원이 직접 촬영한 미사일 발사 장면.ⓒ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에너지 의존 산업계 직격탄…정유·석화 등 타격 우려
한국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유가가 급등하면 원가 부담과 함께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수입물가가 오르고, 이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자극해 내수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에서 정제되는 중간유분인 나프타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 업계의 원가 부담으로도 직결된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제품 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원가까지 오르면 수익성 방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중동을 거쳐야 하는 해운업계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 진입하던 초대형 유조선 2척이 미국의 폭격 직후 항로를 급변경했다. 페르시아만 방향이던 선박들이 위험 회피 차원에서 아라비아해로 전환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가와 환율, 해상운임이 동시에 오르면 제조업 수익성은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해협 봉쇄 시 전체 산업의 생산비 상승률이 3.02%, 제조업은 5.19%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유가가 10% 오르면 제조업 비용이 평균 0.67% 증가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제2 오일쇼크 오나...“확전은 부담...실익 없어” 전망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1973년 오일쇼크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시 아랍 산유국들은 중동 전쟁을 계기로 석유를 무기화했고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고성장을 구가하던 한국은 이후 1980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충격을 겪었다.
정부도 비상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최남호 2차관 주재로 종합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에너지, 무역, 공급망 분야의 영향 가능성을 전방위로 논의했다. 산업부는 “이란 반격 가능성 등 모든 상황을 열어두고 민간과의 상시 점검 체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란이 실제 봉쇄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잇따른다. 유가 급등은 이란의 최대 원유 수출국인 중국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자국 경제에도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란과 미국 모두 확전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국면”이라며 “미국은 감세 등 재정 부담에 전쟁 비용까지 상승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유가가 상승할 경우 금리 인하도 어렵다는 점에서 확전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란이 실제 봉쇄에 나서더라도 장기화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쟁 중 스스로 보급선을 끊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유가는 당장 연고점 돌파를 시도하겠으나 전쟁의 기본과 과거 사례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면서 “실질적인 공급 차질 부재와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증산 등으로 다시 안정권인 WTI 75달러 내외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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