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건을 수사할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진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검찰과 경찰에 검사와 수사관 73명을 파견 요청한 데 이어 특검보 6명의 명단도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내란 특검의 수사 대상은 내란과 외환, 사후 은폐 의혹 등 11개에 이릅니다. 법조계에선 벌써부터 특검 수사가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은 물론 검찰 출신의 법무부 장관, 민정수석 등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입니다.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조은석 특검 등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삼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서지영 원내대변인은 이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국민의힘을 수사하는 특검을 추천했다. 지난 정부와 갈등을 빚거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인사로 임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특검이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취지로 논평했습니다.
조은석 특검팀, 내란·외환 등 11개 의혹 수사… 국힘도 수사 대상
조은석 특검은 검찰 특수부 출신의 법조인으로 검사 재직 시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일부 언론은 그를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보도했지만, 정치적 편향 시비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오히려 그는 특수부 검사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처럼 정치인을 비롯한 권력층과 수차례 갈등을 빚거나 충돌했습니다. 조 특검이 법무연수원장 시절 저술한 <수사감각>이라는 책에는 그가 정치인 수사 과정에서 겪은 상부의 외압과 수사 방해 정황이 적혀 있습니다.
<수사감각>은 조 특검이 자신의 검사 경력을 회고한 책으로 시판되지 않는 법무연수원 보조교재입니다. 검사가 수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몇몇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 특검은 2019년 6월 쓴 책의 서문에서 “필자의 경험이 범죄대응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검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습니다.
조은석 특검은 지난 2019년 6월 자신의 검사 경력을 회고한 <수사감각>이라는 책을 펴냈다.
‘특수통 출신’ 조은석, 정치인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와 충돌
<수사감각>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건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소속 이승훈 전 청주시장의 뇌물 사건입니다. 2014년 선거기획사 대표 박모 씨가 이 전 시장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청주시로부터 수천만 원대 용역계약을 따냈다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당시 청주지검장이었던 조 특검은 2015년 9월 이 사건에 대한 수사계획을 대검찰청에 보고하면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국회 국정감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국정감사 이후로 수사를 미루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조 특검은 “국정감사와 C시장 수사가 어떻게 연계되는지 납득되지 않아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대검찰청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감각, 297쪽)
실제, 청주지검은 국회 국정감사가 끝난 그해 11월 초 청주시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조 특검은 이후에도 검찰 상부의 수사 방해가 있었다는 취지로 서술했습니다.
<수사감각>에 따르면, 청주지검은 2015년 11월 이 전 시장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그에게 뇌물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법률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대검찰청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대검찰청은 ‘보고 내용을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사건 처리를 미룬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 특검은 아래와 같이 적었습니다.
보고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하거나 상부의 자체 내부에 대한 보고를 하지 못하였다는 사유로 상부는 답을 미뤘다. 수사진행이 정체되었다. 재차 상부의 이견이 잘못되었음을 설명하는 보고서를 만들어 송부하고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였다. 명쾌한 답이 없이 기다리라는 지시만 반복되었다.
- 수사감각, 297쪽
나아가 조 특검은 검찰 상부가 사건 처리를 미룬 배경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그는 “수사논리외적 영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집권당 소속인 C시장이 금품수수 비리로 구속되면 2016년 4월에 있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되었다. 충주시를 비롯한 충청북도 전체 선거에 집권당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었다”고 썼습니다. (수사감각, 297쪽)
결국, 조 특검은 사건을 매듭짓지 못한채 인사발령을 통해 사법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의 후임자인 송인택 당시 청주지검장은 이듬해 2월 이 전 시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만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조 특검이 보고한 뇌물죄로는 기소하지 않은 겁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던 김주현 전 민정수석은 12·3 내란 연루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 됐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 상부였던 그가 10년 만에 거꾸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은 꽤나 극적입니다. 김 전 수석은 사법연수원 18기로 19기인 조 특검의 1년 선배입니다.
‘국힘’으로 수사 정보 유출?... 1년 넘게 사건 처리 지연 의혹
청주시장 사건과는 연관이 없지만, 당시 서울고검장이었던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역시 내란 연루 의혹으로 수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조 특검은 수사 보안을 이유로 박 전 장관이 거쳐간 서울고검을 내란 특검 사무실로 선택했습니다.
조 특검이 유독 수사 보안에 신경쓰는 이유는 그가 검사 시절 겪은 ‘수사 정보 유출’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조 특검은 <수사감각>에서 대표적인 수사 정보 유출 사례로 신지호 전 국회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했던 조 특검은 신지호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불법적인 기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신 의원이 대기업을 움직여 자신의 지역구 양로원에 전자제품을 기부했다는 혐의였습니다. <수사감각>에서 조 특검은 “여당 국회의원을 검찰이 강도 높게 수사할 것이라고 기업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고 적었습니다. (수사감각, 205쪽)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은 관련 임원들을 조사한 데 이어 신 의원 측 관계자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그러자 검찰 조직 밖에서 압력이 들어왔고, 검찰 상부 역시 영장 집행을 며칠간 미루라고 지시했다는 게 조 특검의 설명입니다. <수사감각>에는 당시 상황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대기업이 양로원에 전자제품을 기부하는 데 관여하여 이를 잘 알고 있는 국회의원 측의 핵심 인물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하여 발부받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후 집행을 위한 사전보고를 상부에 하였는데, 수사내용을 보고받을 수 있는 검찰조직 외부의 다른 곳에서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체포영장 집행을 며칠만 보류하여 달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못하고 며칠이 소요되었다.
- 수사감각, 205쪽
이렇게 체포영장 집행이 늦춰지는 사이, 신 의원 측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피해 잠적했고, 조 특검은 검찰 정기인사에 따라 다른 검찰청으로 인사 이동을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조 특검은 “정보가 수사대상자에게 누설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수사감각, 205쪽)
이로부터 1년 넘게 처리되지 않던 사건은 신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2012년 10월에야 재개됐습니다. 검찰은 신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 벌금형을 구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하여 대기업 임원에게 지역구 경로당에 전자제품을 기부하게 한 것은 죄질이 불량하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당시 검찰이 집권 여당이었던 현재의 국민의힘을 위해 수사 정보를 유출하거나 봐주기 기소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감각>에서 조 특검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최선을 다해 조치하여야 한다. 시간이 흘러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고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이번 내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결의에 조직적으로 불응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이들이 또다시 수사 정보를 빼내거나 외압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그 창구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이 활용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이 같은 수사 방해 시도를 누구보다 많이 겪은 검사가 조 특검이라는 사실은 이번 특검에 거는 기대를 높입니다. 정치적 탄압을 주장하는 ‘수사대상자’들의 변명은 12·3 내란의 실체적 진실을 감추려는 또 다른 수사 방해 시도에 불과합니다.
지난 12일 조 특검은 내란 특검에 임명되면서 “사초를 쓰는 자세로 세심하게 살펴가며 오로지 수사논리에 따라 특별검사의 직을 수행하겠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내란 2인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추가 기소로 포문을 연 조은석 특검팀이 내란의 전모를 온전히 규명해 내란 세력을 엄중히 심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뉴스타파 강현석 kh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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