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원자력발전소 전경.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가동 40년 만에 영구정지됐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972년 부산 기장군에 국내 최초로 건설된 상용 원자력발전소(원전) 고리 1호기 원전 해체가 승인됐다. 사용후핵연료 반출과 방사선 오염구역 제염, 철거 완료 후 생태조사까지 올해부터 총 12년에 걸쳐 해체가 진행된다. 이번 원전 해체를 통해 국내 원전 업계가 해외 원전 해체 시장에 나설 역량을 쌓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고리 1호기에서 나올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안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26일 제216회 원안위 회의에서 '고리 1호기 해체 승인(안)'을 심의·의결했다. 해체 승인 신청 이후 약 4년 만이다.
원전 해체는 원전 기능을 영구적으로 정지하고 시설과 부지를 철거해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는 활동을 말한다.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 가동 40년 만에 영구정지돼 2021년 5월 한수원이 해체 승인을 신청했다.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 제품으로 출력은 587메가와트(MW)다. 1000MW가 넘는 최신 원전에 비하면 출력량은 절반 수준이다.
이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한수원이 제출한 고리 1호기 최종해체계획서 등에 대한 심사를 수행하고 심사 결과에 대한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사전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해체 계획이 최종 승인됐다. KINS는 한수원이 원전 해체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확보했고 해체 과정에서 예상되는 작업자의 피폭방사선량이 선량한도 이내라고 심사했다.
계획서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 해체를 위한 108명 규모의 전담조직을 신설해 운영 중이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양성한 한수원 해체 관련 인력은 599명으로 확인되며 지속적으로 육성 중이다. 해체 계획은 총 12년으로 방사선 오염이 적은 부분부터 순서대로 제염과 철거가 진행된다.
한수원은 총 96개로 예상되는 원전 해체 핵심 기술 중 사업관리나 엔지니어링, 방사선 관리 분야 등에서 58개 상용화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나머지 38개 기술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을 통해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해체 계획은 총 12년으로 향후 10년간 방사선 오염이 적은 부분부터 오염지역까지 순서대로 제염 및 철거 작업을 마무리한다. 마지막 1~2년 동안 생태 등 부지를 복원한다.
고리 1호기 해체 비용은 총 1조 713억원으로 평가됐다. 한수원은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원전 해체 비용을 매년 적립해 원전 1개 호기분 해체 비용을 현금으로 보유 중이다. 적립금은 2024년 12월 기준 9647억원으로 올해 중 부족한 부분을 추가 적립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수원은 필요한 경우 회사채를 발행해 외부 자금을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한수원이 고리 1호기 해체를 서두르는 이유는 원전 해체 시장을 의식해 해체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다. 일부 국가에서는 원전을 수십년에 걸쳐 천천히 해체하는 '지연해체' 전략을 쓰기도 한다. 원안위 관계자는 "한수원은 원전 해체 기술력 조기 확보를 위해서 '즉시해체'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인 미국 에너지솔루션 등은 원전 해체를 맡아 해체를 위해 쌓인 적립금을 가져가는 식으로 운영된다. 원전 해체 전문기업은 미국에만 2곳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로정보시스템(PRIS)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영구정지된 전세계 원자로는 22개 국가에서 총 214기로 이중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25기 뿐이다. 아직 해체되지 않은 원전이 189기에 달한다. 미래 원전 해체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다.
해체가 완료된 고리 1호기 부지는 원자력 관련 시설 등 산업 부지로 쓰일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확실치는 않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해체된 원전 부지는 보통 녹지나 가스화력발전, 풍력발전 등 다른 발전원 부지로 활용된다. 해체된 25건 중 절반 이상인 14기 부지가 녹지로 활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 고리 2·3·4호기가 있어 일반인들이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고리 1호기와 동일한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자로 모델은 아직 해체가 완료된 사례가 없다. 미국 케와니(Kewaunee) 원전에 고리 1호기와 같은 원자로가 2013년 영구정지돼 해체가 진행 중이다. KINS 관계자는 "미국 원전 해체 실적이 많기 때문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등과 접촉해 관련 정보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리 1호기에 습식으로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과제로 지목된다. 부지 내 임시 건식저장시설로 반출해 저장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설계나 부지 선정 등이 구체화되지 않아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임시 건식저장시설은 현재 설계 마무리 단계"라며 올해 3월 국회를 통과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는 2050년까지 중간 저장 시설, 2060년까지 영구 처분장을 지을 계획이지만 부지 선정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미국도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시설이 없어 해체된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보관하고 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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