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수아크 발림빙 관측소(Suaq Balimbing monitoring station)에서 암컷 수마트라오랑우탄 시시(Cissy)가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들고 낮잠을 자고 있다. Natasha Bartalotta/SUAQ 제공
오랑우탄도 사람처럼 자기 전에 나뭇가지를 엮어서 나무 위에 침대 같은 둥지를 만들고 밤잠이 부족하면 낮잠 시간을 늘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앨리슨 애쉬버리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MPI-AB) 연구원팀과 독일 콘스탄츠대 공동연구팀은 14년간 오랑우탄의 수면 행동을 분석하고 연구결과를 2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공개했다.
인간과 영장류, 코끼리, 거미와 해파리까지 동물 대다수는 거의 매일 시간을 할애해 잠을 잔다. 동물이 잠을 자는 이유와 진화적 기원 등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영장류의 수면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클루엣(Kluet) 습지에 있는 수아크 발림빙 관측소(Suaq Balimbing monitoring station)에서 수마트라오랑우탄(학명 Pongo abelii) 53마리의 수면 행동 데이터를 14년 동안 총 455일치 확보하고 분석했다.
오랑우탄은 보통 나뭇가지를 엮어서 나무 위에 마치 침대처럼 둥지를 만들고 그 위에서 잠을 잔다. 관찰 결과 오랑우탄은 밤잠을 자기 전에 10분 정도 시간을 들여 둥지를 만들었다. 젖먹이 새끼가 있는 어미 오랑우탄은 새끼와 둥지를 함께 사용하지만 대다수의 성체 오랑우탄은 혼자 잔다.
나무 위에서 자는 야생 오랑우탄의 수면 패턴을 지상에서 카메라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은 어렵다. 대신 연구팀은 오랑우탄이 잠을 자는 동안 둥지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활용해 둥지가 조용한 시간을 '수면 시간'으로 봤다. 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과 실제로 잠들어 있는 시간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다른 영장류인 야생 개코원숭이(바분)을 관찰한 선행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데이터 분석 결과 오랑우탄은 밤잠과 낮잠을 합쳐 하루 약 13시간 잠을 잤다. 오랑우탄을 한 마리씩 집중 관찰한 적어도 1번 낮잠을 잔 경우는 455일 중 41%에 달했다. 낮잠은 하루 최대 4번까지 자는 것으로 기록됐다. 평균 낮잠 시간은 76분이다.
오랑우탄은 낮잠을 잘 때도 둥지를 짓는다. 낮잠용 둥지를 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분 미만으로 밤잠용 둥지보다 단순하게 짓는 것으로 분석됐다.
나무 위 둥지에서 자고 있는 암컷 수마트라오랑우탄 리사(Lisa, 왼쪽). 바로 뒤에서 새끼 수컷 오랑우탄 로이스(Lois)가 장난치고 있다. Zakir/SUAQ 제공
밤잠과 낮잠 시간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밤잠이 1시간 줄어들 때마다 낮잠은 5~10분씩 늘어났다. 낮잠을 통해 부족한 밤잠을 보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동저자인 메그 크로풋 MPI-AB 소장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랑우탄도 낮잠을 통해 생리적·인지적 회복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밤잠 시간은 직전 낮에 섭취한 열량이 적거나 먼 거리를 이동했을 때, 밤 기온이 낮거나 비가 올 때 짧아졌다. 둥지 근처에서 다른 오랑우탄이 잠을 잘 때도 밤잠이 짧아졌다.
애쉬버리 연구원은 "사람들이 전날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거나 룸메이트가 아침에 코를 크게 골아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며 "주변 오랑우탄의 유무가 밤잠을 줄이는 현상도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수면 행동의 기원을 밝히는 데 기여한다. 크로풋 소장은 "인간과 영장류, 거미, 해파리 등 여러 동물이 왜 삶의 상당 부분을 취약한 무의식 상태로 지내도록 진화했는지 알아내려면 수면 연구를 실험실 밖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면이 진화한 사회적·생태적 조건인 야생에서 수면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수면의 진화적 기원과 궁극적인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016/j.cub.2025.05.053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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