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폐지 앞두고 되살아난 보조금 전쟁…'호갱' 재현 조짐
SKT 사이버 침해 사고 이후 통신시장 격랑…정부·기업 모두 시험대
서울 시내에 위치한 통신사 대리점. ⓒ뉴시스
"17만원에 못사면 호갱."
2012년 9월, 출고가 99만원4000원짜리 스마트폰이 유통망에서 80% 이상 싸게 팔리며 이른바 '갤럭시S3 대란'이 벌어졌다.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통신사들은 보조금 경쟁에 뛰어들었고, 정보에 밝은 일부 소비자는 흔히들 말하는 '성지'에서 신형 스마트폰을 헐값에 샀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가입자는 제값을 주고 사는 '호갱'이 됐다.
시장 과열, 소비자 차별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2014년 10월 시행했다. 지원금 과열경쟁을 막고 소비자 간 형평성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통사 지원금 상한을 30만원으로 제한해 가격 경쟁이 축소되면서 오히려 휴대폰 실구매 가격이 오르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기업들은 규제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번호이동, 장려금 수준에 따라 과징금 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올해에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이유로 11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소비자 이익 감소, 부처간 규제 충돌, 행정력 낭비'라는 오명 속 단통법은 결국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오는 7월 폐지된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통신업계는 통신 보다는 AI, 데이터센터에 기업들이 관심을 쏟고 있고, 방통위·공정위 규제 칼날이 어디를 어떻게 겨냥할지 모르니 출혈 경쟁은 더 이상 펼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단통법 폐지를 앞둔 지금,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4월 19일 SK텔레콤 사이버 침해 사고부터 5월 5일 SKT 직영·대리점 영업중단, 6월 24일 영업재개까지 66일간 국내 통신 시장 전체가 흔들렸다. 공고했던 SKT 점유율 40% 붕괴는 기정사실이다. 경쟁사들은 갤럭시 신제품을 앞세워 타사 고객 번호이동에 100만원대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물 들어 올 때 노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T의 반격은 더 거셀 전망이다. 잃어버린 만큼의 가입자 규모를 확보하려면 이 보다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 커진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퍼주기식 보조금 살포에 고객들은 신나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에게 일괄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번호이동이 아닌 기기 변경 시 할인 혜택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마저도 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는 100만원대 보조금 같은 파격 혜택에 접근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폐지되면 대리점, 판매점 마다 보조금이 제각각 책정돼 정보 비대칭, 형평성 논란, 불법 리베이트 등 각종 부작용이 재현될 수 있다. 이미 시장은 곳곳에서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단통법 폐지를 계기로 알뜰폰과 자급제폰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신비 세액공제도 신설하는 등 정보취약계층 피해 방지에도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전반적으로 통신 시장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로 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SKT 사이버 침해 사고 이후 통신시장이 돌연 격랑 속으로 빠지면서, 정부도 이에 맞춘 대응이 시급해졌다. 그렇다고 통신사들을 다 불러모아 경쟁 자제를 압박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단통법 폐지 이후 출혈 경쟁이 심화될 경우,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막을 필요는 있다.
그러려면 기업들의 자율과 혁신을 지향하되 자정 작용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통신사들도 과도한 점유율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법이 사라졌다고 해서 도를 넘는 판촉 행위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도 하니까 우리도 해야한다" 식의 접근은 기업에게는 수익성 악화, 소비자에게는 정보 격차의 불평등을 키우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이제 통신 정책은 일부 ‘정보 강자’가 아닌, 전 국민에게 보편화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호갱'이 두려운 소비자들은 여전히 통신업계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신뢰 없는 성장은 어떤 기업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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