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 헝가리에 유럽 최대공장
中정부 '이중 상장' 등 지원
건설자금 11조 중 6조 마련
韓 3社 점유율, 60% → 37%
투자금 지원 못받아 발동동
지난 19일 헝가리 제2 도시 데브레첸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0분을 달리자 초대형 공사판이 나왔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80%(221만㎡) 부지에 유럽 최대 규모(100GWh·기가와트시)로 들어서는 이 공장의 주인은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이다. CATL은 공장 건설자금 11조원 중 6조원을 ‘이중 상장’으로 마련했다. 중국 정부가 CATL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상하이증시에 이어 최근 홍콩증시 추가 상장을 허용한 덕분이다.
< 중국 배터리의 ‘유럽 굴기’ > 중국 배터리 기업이 유럽에 대규모 공장을 잇달아 짓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은 헝가리 제2 도시 데브레첸에 유럽 최대 규모(100GWh) 공장을 건설 중이다. EVE에너지도 첫 유럽 공장 건립을 위해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 데브레첸 북서쪽 EVE에너지 유럽 공장 공사 현장에서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데브레첸=성상훈 기자
다음날 방문한 SK온 헝가리 이반카 공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30GWh짜리 1공장 옆에 마련한 2공장 부지에는 수풀만 가득했다. 전기차 캐즘 여파로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이중 상장도 안 되고, 정부 보조금도 없다 보니 투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201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텃밭이었던 유럽 배터리 시장이 하나둘 중국 손에 넘어가고 있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체력을 쌓은 중국 기업들이 중국에 이은 ‘넘버2’ 배터리 시장인 유럽 총공격에 나서면서다. CATL, BYD, EVE에너지 등 중국 업체가 유럽에 지었거나 건립 중인 공장 규모는 약 500GWh로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합산 177GWh)를 압도한다. 2023년 한국 배터리 3사는 유럽 시장의 60.4%를 차지했지만, 올 1분기에는 점유율이 37.2%로 추락해 CATL(43%) 한 곳에도 밀렸다. CATL, EVE, CALB, 고션 등의 유럽 투자가 마무리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37조원에서 2035년 259조원으로 일곱 배 커질 것으로 내다본 ‘황금 시장’이 중국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현지 생산을 늘리라고 요청하지만 투자 여력이 마른 상황”이라며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이 없으면 유럽 시장을 중국에 다 내줄 판”이라고 말했다.
"유럽 싹쓸이 하겠다"…CATL, 축구장 310개 규모 '배터리 허브'
"이미 수년치 일감 쌓아놨다", '포스트 캐즘' 준비…유럽에 올인
지난 19일 찾은 CATL 헝가리 데브레첸 배터리 공장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차로 부지 바깥을 도는 데만 5분 넘게 걸릴 정도였다. CATL은 축구장 310개를 합쳐 놓은 이곳에 100GWh(기가와트시)짜리 공장을 짓고 있다. 매년 전기자동차 120~160만 대에 적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국내 공장을 모두 합친 생산량(46GWh)의 두 배가 넘는다. 공장 안에는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 첨단 로봇 생산 시스템(CATL 4세대 인더스트리)이 들어간다. 규모의 경제와 제조 효율화를 통해 품질은 끌어올리고, 생산단가는 내려 유럽 자동차 메이커를 품겠다는 전략이다.
◇ 유럽 ‘원톱’ 된 CATL
중국 ‘배터리 굴기’의 무대가 유럽으로 옮아가고 있다. 중국에서 만든 배터리를 수출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유럽 현지 생산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면서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로 도약한 CATL이 대표적이다. 헝가리 공장이 올 하반기 부분 가동을 시작으로 2028년 풀가동에 들어가면 CATL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현지에서 만난 페테르 카데리악 헝가리배터리산업협회장은 “CATL 헝가리 공장은 이미 수년 치 일감을 수주해 놨다”며 “BMW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이 CATL 배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CATL의 유럽 장악 프로젝트는 헝가리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스페인에 짓고 있는 50GWh짜리 공장은 내년부터 가동에 들어가고, 14GWh 규모인 독일 공장도 헝가리와 똑같이 100GWh로 증설하기로 했다. 유럽 전기차 메이커와 50GWh 규모의 합작 공장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 더하면 300GWh에 달하는 유럽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생산능력(177GWh)을 압도하는 규모다.
유럽 전기차 메이커 관계자는 “CATL이 현지 생산능력 확대에 발맞춰 유럽 전기차 회사를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며 “한국 배터리 3사와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서 CATL로 갈아탄 업체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CATL 뒷배는 중국 정부
CATL이 수십조원을 투입해 동시다발적으로 유럽에 공장을 세울 수 있던 배경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 반중(反中) 정서와 환경오염 가능성 탓에 불거진 현지인의 반발을 무마해준 게 중국 정부였다.
한 CATL 납품업체 관계자는 “데브레첸에서도 환경오염 등으로 지역사회 배터리 공장 건립 반대 여론이 컸다”며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은 CATL이 데브레첸에 각종 방식으로 돈을 뿌린 것과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헝가리 정부 인사를 만나 꼬인 실타래를 풀어준 덕에 공장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헝가리 정부에 10억유로 차관을 비밀리에 줬다. 현지 언론이 이를 보도했을 때 헝가리 정부는 부인했지만 증거가 나오자 결국 시인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고전하던 CATL에 조(兆) 단위 투자금을 마련해 준 것도 중국 정부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에 따르면 중국은 연간 40조~60조원의 보조금을 전기차 및 배터리 분야에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 보조금뿐 아니라 저리 대출도 해준다. 연구개발(R&D)에 쓴 돈은 175%를 세액 공제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R&D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는 얘기다. CATL은 이런 식으로 작년에만 2조~3조원가량을 보조금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만으론 부족하자 CATL과 중국 정부는 증시로 눈을 돌렸다. 상하이증시에 상장된 CATL을 홍콩증시에 ‘이중 상장’시키는 식으로 신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준 것. 그 덕분에 CATL은 헝가리 공장 건립자금 11조원 중 6조원을 홍콩증시 상장을 통해 확보했다. CATL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후발 주자들도 유럽 생산기지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EVE에너지는 데브레첸 북서쪽에 30GWh 공장을 짓고 있다. 투자금 2조원은 CATL과 마찬가지로 이중 상장을 통해 마련한다. 상하이증시에 상장된 EVE에너지는 이르면 연내 홍콩증시에도 이름을 올릴 계획이다.
BYD는 4조원을 들여 헝가리 세게드와 포트 지역에 각각 전기차와 배터리팩 공장을 건립 중이다. 신왕다 파라시스 고션 CALB 등 다른 중국 배터리사도 헝가리 슬로바키아 튀르키예 등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공장 설립에 나섰다.
데브레첸=성상훈/김우섭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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