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33)씨는 매달 미국 S&P500 상장지수펀드(ETF)를 조금씩 사 모으고 있다.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할 수 있어 일상생활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직접 고른 종목보다 수익률이 높아 지금은 ETF로만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연모(34)씨는 생애 첫 미국 국채 투자를 위해 ETF를 매수했다. 증권사 모바일 앱만 있으면 어느 종류의 채권이든 간편하게 매매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ETF 순자산총액은 121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재작년 말 78조5000억원에서 1년 만에 54% 급증했다. 지난해 ETF 상장 건수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한 해에만 160개 ETF 상품이 출시되며 재작년 134개에 이어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매매 방법이 주식 거래와 같은 데다 운용보수도 일반 펀드보다 낮아 투자자들에게 인기다. 국가별 대표 지수에 투자하는 ETF는 물론,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인기 테마형 ETF 상품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ETF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자산운용사들의 속내는 까맣게 타고 있다.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수수료 인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다. 지난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월배당형 리츠(부동산투자신탁) ETF 총보수를 0.29%에서 0.08%로 인하했다. 삼성자산운용이 비슷한 ETF 상품을 0.09%로 내놓자 이보다 더 낮춘 것이다. 지난해 출시된 미국 배당주 ETF는 총보수가 0.01%까지 내려갔다. 순자산총액(AUM)이 100억원이라면 연간 수익은 100만원에 불과해 인건비도 챙기기 어려운 수준이다.
펀드 관련 수익은 실제로 감소 추세다. 지난해 운용사들의 펀드 관련 수수료 수익은 3조2170억원으로 전년보다 922억원(2.8%) 줄었다. 2021년 3조6788억원과 비교하면 14.4% 급감했다. ETF 운용보수는 일반적으로 일반펀드보다 낮은데 수수료 인하 경쟁까지 붙은 탓이다. 유사한 ETF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상품 구조보다는 수수료가 경쟁력이 된 상황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35개의 ETF가 신규 상장했는데, 글로벌 비만치료제 관련 기업을 담은 테마형 ETF만 3종류였다.
투자자로선 반가운 일이지만 과도한 수수료 경쟁은 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수료 인하 여력이 있는 대형사를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동종업계 내에서도 동업자 정신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중소형사의 주력 ETF 구조를 베껴 더 낮은 수수료를 제시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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