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반도체로 구현된 원형 편광 녹색광을 방출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자를 확대해 촬영한 사진. Richards group 제공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나아가는 빛인 '원형 편광(CPL)' 구현 기술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양자컴퓨팅 등 혁신적인 기술에 응용될 수 있어 주목받는다. 영국과 네덜란드 공동연구팀이 원형 편광을 방출하는 유기 반도체를 구현하고 이를 활용해 밝고 효율적인 녹색광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자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리처드 프렌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 교수와 베르트 메이어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과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전자가 나선형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해 효과적으로 원형 편광을 내는 유기 반도체를 개발하고 연구결과를 13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전자기파인 빛은 진동하는 파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햇빛 같은 자연광은 보통 모든 방향으로 진동하는 '무편광' 상태다. 편광은 특정 각도로만 진동하는 빛을 말한다. 편광판을 사용하면 빛의 일부를 걸러내거나 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OLED는 디스플레이 패널 내부의 전극이 외부에서 유입된 빛을 반사해 화면이 마치 거울처럼 보이게 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편광판을 사용한다. 편광판은 외부에서 들어온 빛을 차단하지만 동시에 OLED에서 생성된 빛도 흡수하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효율을 떨어뜨린다. 디스플레이 구현에 필수적이지만 비효율적인 편광판을 대체하려는 기술이 꾸준히 연구되는 이유다.
연구팀은 편광판에서 OLED의 빛이 손실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원형으로 편광된 빛을 방출하는 유기 반도체를 설계했다. 실리콘 등으로 구현한 무기 반도체의 내부 구조는 대칭성을 띠기 때문에 전자가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기 어렵다. 탄소 기반의 유기 반도체로 편광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유기 분자로 정밀한 나선형 구조를 만드는 것이 난제였다.
나선 모양으로 쌓인 트리아자트룩센(TAT) 구조체. 자외선이나 청색광을 조사하면 전자가 나선형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해 원형으로 편광된 녹색 빛이 방출된다. Rituparno Chowdhury 제공
연구팀은 트리아자트룩센(TAT)이라는 물질을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정렬된 나선 모양으로 조립하는 데 성공했다. 나선 모양으로 쌓인 TAT 구조체는 전자가 마치 나사의 나사선을 따라가듯 나선형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했다. TAT 구조체에 자외선이나 청색광을 조사하자 밝은 녹색을 띠는 원형 편광이 방출됐다.
연구팀은 기존 OLED에 TAT 구조체를 통합해 녹색광 OLED 소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험 결과 녹색 원형 편광 OLED는 기존 OLED와 비교해 같은 밝기에서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기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전자의 스핀을 활용해 정보를 저장·처리하는 스핀트로닉스 분야와 양자컴퓨터 구현에도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핀은 전자의 물리량 중 특정 방향을 나타내는 고유한 자기적 성질을 말한다.
연구팀은 "오랜 시간 유기 반도체 난제였던 원형 편광 LED를 만들 수 있는 실용적 방법을 제공했다"며 "딱딱한 무기 반도체와 달리 유기재료는 놀라운 유연성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126/science.adt3011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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