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겔라다가 두 암컷을 공격하자 암컷들이 비명과 이 드러낸 얼굴 표정으로 반응하고 있는 모습. Credit: Alice Galotti and Elisabetta Palagi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겔라다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가 갈등 상황에서 주고받는 음성 신호를 듣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친사회적 의도를 구별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겔라다 원숭이가 단순히 소리를 감지하는 수준을 넘어 다른 원숭이들의 상호작용을 제3자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는 고차원적 사회 인지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겔라다 원숭이의 이러한 능력이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진화적 특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루카 페드루치 프랑스 렌대 연구팀은 낯선 암컷이 공격을 당한 뒤 내는 비명과 수컷이 발신하는 친화적 울음소리를 조합해 들려주는 실험을 수행해 이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에 1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겔라다 원숭이는 공격 이후 피해자를 달래는 '삼자 친화 행동' 등 정교한 음성 교환 방식으로 인간과 유사한 사회적 특성을 보이는 종이다. 연구팀은 겔라다 원숭이의 이러한 사회적 특성에 주목해 제3자의 음성 상호작용을 듣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실험은 성체 수컷 겔라다 원숭이 10마리를 대상으로 총 40회에 걸쳐 실시됐다. 연구팀은 낯선 암컷이 공격을 받아 내는 비명과 수컷의 친화적 울음소리를 결합한 네 가지 종류의 음성 자극을 제작했다.
이 중 절반은 ‘비명-친화음’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정상적 순서를 따랐다. 나머지는 ‘친화음-비명’이라는 역순으로 구성돼 기대를 위반하는 자극으로 구성했다. 친화음은 감정적 수준이 낮은 '그런트(grunt)'와 더 높은 수준의 감정을 담은 '모안(moan)'으로 나눠 감정 강도의 차이를 고려했다.
겔라다 원숭이의 반응은 자극이 재생된 뒤 시선이 스피커를 향하는 시간, 처음 주목한 이후 고개를 돌려 원래 행동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 자극 전후의 평균 응시 시간 등 세 가지 지표를 중심으로 측정됐다.
분석 결과 겔라다 원숭이들은 자극의 순서와 정서 강도에 따라 명확히 다른 행동 반응을 보였다. 사회적 맥락에 어긋난 자극 '친화음-비명' 자극에서는 더 오래 스피커를 바라보고 반응을 지속하며 놀람이나 주의 집중 행동을 나타냈다. 특히 정서적 강도가 높은 ‘모안’이 포함된 자극은 ‘그런트’보다 더 강한 반응을 유도해 감정적 함의까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겔라다 원숭이가 단순히 특정 소리에 조건반응하는 것이 아닌 음성 간의 순서와 감정적 뉘앙스를 바탕으로 상황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제3자의 사회적 교류를 청각 정보만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장류의 음성 기반 사회 인지 능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간주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겔라다 원숭이는 실제로 제3자의 갈등 상황을 음성만으로 파악하고 감정과 친사회적 신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며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졌던 타인 간 상호작용의 '청각적 이해'가 실제로는 진화적으로 공유된 능력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 doi.org/10.1371/journal.pone.0323295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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