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철강, 새정부에 바란다④] 탄소집약 산업에 유상할당 도입, 탈탄소 지원으로 돌아온다
철강 산업 위기론이 팽배하다. 정부와 산업계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저탄소 고부가가치 철강으로 전환’에서 찾는다. 산업계에 대한 단기 지원이나 당장의 통상 대응을 넘어서 철강 산업의 탈탄소는 막대한 투자와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과제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철강 생산국이지만, 저탄소 철강 생산에 대한 정부 정책과 지원은 주요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21대 대선을 앞두고 기후환경단체로 구성된 녹색철강네트워크는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새정부가 직면한 철강 산업의 이슈와 정책 과제를 다섯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기자말>
[이지언 기자]
'저공비행'을 이어가던 탄소 배출권 가격이 1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현재 상태로는 배출권 거래제가 기업들의 탄소 감축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 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21일 기준, 배출권 가격은 톤당 8,940원 수준을 나타내 1만원대 회복 기대에서 멀어져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처음 도입된 2015년보다 현재 배출권 가격이 더 낮아진 상태다. 2015년 배출권 평균 거래가격은 톤당 1만1,013원이었다.
지난 3월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공개한 '2024 배출권거래제 운영결과보고서'에 2020년 배출권 거래가격은 3만원대까지 올랐지만, 이후 현재까지 계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8,000원대까지 떨어진 한국의 배출권 가격은 톤당 1만 원에서 1만2천 원 가량인 유럽 배출권 가격에 비해 10배 이상 낮은데다, 2021년 시행된 중국 배출권의 현재 가격인 1만5천 원에도 밑도는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탄소 가격으로 2030년에 톤당 75달러(약 10만 원) 수준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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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별 온실가스 배출권 평균가격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발표한 '2024 배출권거래제 운영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배출권 가격은 1만원 미만으로 하락해 배출권 거래제가 시작한 2015년 평균가격보다 낮게 나타났다. |
ⓒ 기후넥서스 |
한국 배출권 가격, 배출권거래제 도입 국가 중 가장 낮아
배출권 거래제는 탄소 배출량에 가격을 부과해 에너지와 산업 시설의 오염 배출을 줄이도록 하는 제도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는 국가 목표에 맞춰 정부가 사업장에게 연간 배출 허용량을 할당한다. 할당량 이내로 배출한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고, 할당량보다 초과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한다.
'오염자 부담 원칙'을 추구하면서도, 시장 제도를 통해 비용 효과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현재 국가 배출량의 74%를 관리하는 배출권 거래제는 가장 핵심적인 온실가스 감축 제도로 불린다.
배출권 가격이 비쌀수록 기업은 배출권 구매보다는 탄소 감축 기술에 투자하는 요인이 생긴다. 배출권 가격 하락의 요인은 배출 총량을 느슨하게 설정하는 한편 배출권을 대부분 무상할당하는 데 있다.
환경부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기준 정부는 735개 업체에 총 579만 톤의 배출권을 할당했다. 이 중 무상 할당량은 99.0%인 573.2백만 톤, 유상 할당량은 1.0%인 5.9백만 톤에 해당했다.
현행 배출권거래제에서 유상할당 비율을 10%로 정했지만, 사실상 기업들에게 대부분 '공짜' 배출권을 나눠주는 셈이다. 산업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0.48%로 더 낮다. 게다가 철강이나 석유화학을 비롯한 다배출 기업들은 유상할당에 예외를 둬 100% 무상할당을 적용하고 있다. '산업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를 반영해서다.
내년부터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는 가운데 낮은 배출권 가격로 인해 국내 산업의 부담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철강업계, 탄소관세로 유럽에 3조원 부담 전망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는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가 유럽연합에 내야 할 비용을 10년 동안 최소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상의가 낸 'CBAM 도입이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국경조정제도가 도입되는 첫 해인 2026년에만 국내 철강 부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851억 원 수준이다. 비용은 계속 증가해 2034년부터 5,5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유럽연합에 들어오는 수입 물품의 탄소 배출량만큼 인증서를 구매하도록 의무화하는 무역 관세다. 우선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 수소 등 여섯 개 분야의 품목에 적용된다. 유럽에서 생산된 제품과 수입품간의 탄소 배출량 차이와 유럽의 배출권 가격에 비례해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한국의 배출권 거래제와 같이 수출국에서 이미 지불한 탄소비용이 있다면 그만큼 차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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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 부문 EU 탄소국경제도 인증서 부담비용 전망 대한상공회의소는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가 유럽연합에 내야 할 비용을 10년 동안 최소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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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은 탄소 누출 방지와 공정 경쟁을 내걸고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한 만큼 배출권 무상할당 폐지를 핵심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유럽 배출권거래제는 무상할당을 2026년부터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기 시작해 2034년까지 100% 유상할당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철강과 같은 다배출 업종에도 무상할당 폐지는 예외없이 적용된다.
국내 탄소 가격을 강화해 해외 탄소 관세 비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늘어나는 정부 세수를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최근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집약 산업에 대한 100% 무상할당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유상할당 수입 부족으로 기후대응기금 예산 '허덕'... 탈탄소 지원 동력 약화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2026~2030년)에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을 '대폭 상향'하겠다면서도, 철강을 비롯한 탄소누출 업종의 유상할당 전환 방안은 2030년 이후로 유예했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와 환경부는 이와 같은 내용의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에서는 '유상할당 수입금을 기업의 감축활동에 재투자'하겠다고 제시했지만, 탄소집약 산업에 100% 무상할당을 계속 고수한다면 기업에 대한 지원 명분이나 재원 마련 측면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탈탄소 전환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을 지원하기 위한 '기후대응기금'이 탄소중립 기본법에 따라 설치됐지만, 실제 수입이 감소하는 등 안정적 재원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낸 '기후대응기금 평가' 보고서를 보면, 기금 설치 첫해인 2022년과 다음해인 2023년 계획액 대비 수입액이 각각 43.6%, 21.3%로 연간 약 3~4천억원의 수입이 감소했다. 기금의 주요 재원은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에 따른 수입과 교통에너지환경세 전입금인데, 배출권 가격 하락이 기금의 수입 감소로 이어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낮은 배출권 가격은 기후대응기금의 자체 수입 감소 문제와 함께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저하"시킨다면서 "정부는 현재의 가격 수준이 적정한지 평가하여 배출권거래시장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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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 탄소 배출권 그만" 2024년 11월 27일 빅웨이브, 기후솔루션, 석탄을넘어서, 플랜1.5,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앞에서 배출권거래제 제4차 기본계획 공청회 공동 대응 기자회견을 한 후 정부의 느슨한 할당으로 인해 발생한 잉여 배출권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환경운동연합 |
철강 업계는 탄소중립 이행에 약 4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올해 산업부가 8,800억 원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실증 사업에 대한 지원을 검토 중이며, 환경부는 기업의 탈탄소 기술 투자를 보전하는 탄소차액계약제도 시범사업에 100억 원을 편성했다.
탈탄소 전환을 위한 정부 지원 확대를 호소하면서도 배출권의 유상할당 전환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를 요구하는 산업계가 자가당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집약 산업에 유상할당 도입하고 확충된 재원으로 탈탄소 지원해야"
기후솔루션, 플랜1.5,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지난 2024년 11월 기자회견에서 "산업 부문에 대하여 배출권의 99% 이상을 공짜로 나눠주는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국내 산업의 탈탄소 전환은 계속 뒤쳐질 수밖에 없고 우리 기업은 막대한 탄소 관세를 해외에 갖다바쳐야 할 것"이라면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의 개편을 요구했다.
이들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산업 부문의 무상할당을 폐지하고, 철강, 석유화학 등 다배출 업종에 대한 유상할당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상할당을 확대해 배출권 가격을 정상화하면, 에너지 전환 촉진과 기후대응기금 재원 확충의 선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상반기에 '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 계획' 수립이 예고되어 있다.
21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 확대 등 기후대응기금 확충'을 약속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인 '기후정의세' 마련을 공약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지언은 기후넥서스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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