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기업 수요지에 지어야 의미
원전만 늘린다고 AI 전력 해결될지 의문
직접 개발? 기업 독려? 정부 역할 어떻게
GPU 5만 장? '글쎄' vs 산업 활성화 전략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온 19일 경기 수원시의 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제21대 대통령선거 책자형 선거공보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인공지능(AI) 대전환을 공약했다.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고,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5만 개 이상 확보하겠다는 약속이다. 전문가들 반응은 엇갈린다. AI 산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구상이라는 긍정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현실적인 실행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거라는 우려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일 경기도 김포시 구래역 문화의거리에서 유세하고 있다. 김포=고영권 기자
AI 고속도로는 전국 곳곳에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고속도로망처럼 연결해 모든 산업에 AI를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AI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선 △인프라 △데이터 △예산 △인력의 네 가지 요소가 필수라고 본다. AI 고속도로는 인프라와 데이터를 아우르는 만큼 학계와 업계로선 환영할 만한 공약이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기업 수요에 맞는 지역이 아니라 지방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다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AI 데이터센터를 유지·보수하려면 기업들과 전문 인력이 근처에 상주해야 해 전략적인 수요 지역에 건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를 국가가 나서서 짓는 게 적절한지 의구심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 AI 데이터센터를 짓도록 사업 환경과 제도를 개선하는 게 정부의 더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일본과 싱가포르에는 각각 미국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
AI 데이터센터 운영에는 적어도 1기가와트(GW)급 전력이 필요하다.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대략 10배는 더 전기를 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AI 산업의 필수 인프라 중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초점을 맞췄다. 대형 원자력발전소 6기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고, 원자력 발전 비중을 확대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를 추진해 전기 공급 능력을 확충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원전만 늘린다고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건 아니다. 전력망 확충이 필수지만, 김 후보 공약에는 담기지 않았다. 하정우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공동대표는 “전력 수요 증대에 대한 세부 대응 방안은 차후 구체적인 정책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며 "AI 데이터센터를 원전 같은 전력원 근처에 짓는 것도 송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20일 경기 하남시 스타필드 앞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100조 원'이란 액수는 이 후보뿐 아니라 김 후보 공약에도 등장한다. 이주석 연세대 AI반도체학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이미 1,000조 원 이상 투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100조 원이 큰 금액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규모는 같지만 조성 방식은 두 공약에 차이가 있다. 이 후보는 민간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고, 김 후보는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펀드를 100조 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가령 100조 원을 5년간 민간 50조 원과 공공 50조 원으로 나눈다면, 정부가 책임지는 건 연간 10조 원 정도가 된다. 연구개발(R&D)에 한 해 약 30조 원을 쓰는 걸 감안하면 10조 원이 비현실적인 숫자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투자 주체가 누구든 액수가 얼마든,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미흡하다는 점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짚었다.
AI 기술 격차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할 거란 우려가 크다. 이 후보의 '모두의 AI’는 이를 염두에 둔 공약이다. 하정우 공동대표는 “정부가 우수한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해 오픈소스로 공개하면, 국내 스타트업들이 그걸 기반으로 다양한 AI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며 “국민은 부담 없이 AI를 쓰며 활용 역량이 높아지고, 스타트업은 성장동력을 키워 AI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임종인 교수는 “생성형 AI는 한번 만들기는 쉽지만 성능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소버린(주권) AI를 앞세우기보다 정부는 민간기업을 격려하는 마중물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물_후보별 AI 과학 공약 비교
GPU 확보는 현 정부도 추진을 여러 차례 약속했다. 그러나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주 미국까지 가 엔비디아를 만났는데도 원활한 도입 업무협약을 맺는 데 그쳤다. 새 정부가 출범한다고 엔비디아가 한국에 GPU를 더 많이 보낸다는 보장은 없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민간이 GPU에 확신을 갖고 투자를 못 했기에 정부가 나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5만 개를 확보하겠다는 건 단순 구매를 넘어 민간의 투자 촉진을 유도해 산업을 활성화시키려는 견인 전략의 의미”라고 해석했다.
반면, 이주석 교수는 “GPU 확보는 필요하지만 5만 장이라는 숫자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라며 “LG가 GPU 수천 장 정도로 세계 10위 권의 대형언어모델(LLM)을 만든 걸 보면, 결국 GPU 수보단 효율적인 데이터 활용과 시스템 최적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