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 들여 RFP 제작 외주…수치 오기에도 정정 없어
의견서 낸 업체엔 "원칙대로 진행" 원론적 답변만
이데일리 시험평가 현장 방문 요청도 번복
[이데일리 최연두 기자] 총 4600억원 규모의 ‘최전방 경계부대(GOP) 과학화 경계시스템 성능개량 사업’(GOP 사업)을 둘러싸고 주관기관인 방위사업청의 전문성 부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사업 초기 단계에서 핵심 문서인 사업 제안요청서(RFP) 제작을 민간 업체인 A사에 위탁한 데 이어, 문서에 포함된 기술 오기를 정정하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했다.
GOP 사업은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경계부대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감시·감지 시스템을 도입해 감시 효율과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최전방 경계부대(GOP) 관련 이미지(사진=생성형AI 서비스)
22일 업계에 따르면 방사청은 이번 GOP 사업의 RFP 작성 등 절차를 통신 설계·감리 업체 A사에 위탁했는데, 이 과정에서 총 60억원에 달하는 용역비가 투입됐다. 업계는 군 전력화에 직결되는 사업 RFP를 방사청이 아닌 외부에 전담시킨 것은 문제라는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기계 납품이 아니라 전방 군사 작전의 ‘눈’이 되는 감시시스템을 다루는 사업인데, 이 정도 수준의 RFP로 사업이 진행된다는 건 군 전력화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방 전문가도 “RFP는 원칙적으로 사업 발주처가 직접 작성해야 하며, 필요시 외부 자문을 받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외주로 제작한 RFP에서 오기가 발견됐는데, 사실상 이를 그대로 방치한 것도 논란을 키웠다. GOP 사업 RFP에는 감시·감지용 광망(光網) 장비의 평균고장간격(MTBF)이 ‘34년’으로 기재돼 있는데, 실제 광망 장비의 MTBF는 3~4년 정도다. MTBF(Mean Time Between Failures)는 제품이나 장비가 고장 없이 작동하는 평균 시간을 나타내는 기술 지표다.
이에 올 초 한 업체가 방사청에 관련 설명을 요청했지만 방사청은 “원칙대로 진행했다”는 일괄 답변만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 전문가는 “(광망 MTBF 34년은) RFP상 오탈자로 보인다”며 “중요한 수치에 오기가 있으면 통상 정정 공지를 하는데, 방사청이 이를 인지하고도 적극적인 정정이나 해명을 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도 “MTBF 34년은 사실상 불가능한 수치”라며 방사청의 사업 수행 조직에 대해 “기술 전문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불충분한 대응이 단순한 소통 부족을 넘어 사업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데일리는 1차 서류평가를 통과한 SK텔레콤, KT, 에스원 등 3개 업체의 시험평가 장소가 평지 위주의 9사단 자유로 구간으로 확정됐으며, 해당 지형이 실제 배치될 GOP 지역의 산악 환경과는 크게 다르다는 논란도 보도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시험평가 환경이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설정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이데일리는 관련 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험평가지 현장 방문을 요청했고, 방사청은 당초 오는 7월 방문 일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방사청은 “다른 사업의 시험평가 장소도 공개된 적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한편, 방사청과 군 등 GOP 사업 주관 기관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업 관리를 위해 단계별 감독·검증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며 “사업자 선정 과정에는 다수 관계기관이 참여하며, 시험평가와 종합평가를 모두 거치게 되므로 현 방위사업 추진 시스템상 특정 기업이 내정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시험평가를 총괄하는 군 관계자도 “구체적인 시험평가 기준이나 운영 방안은 군사기밀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시험평가를 수행한 뒤 방사청이 주관하는 종합평가에 그 결과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연두 (yondu@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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