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공정한 등반 방식 아냐"
에베레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영국 등반가 4명이 마취제로 쓰이는 제논(Xenon) 가스를 이용해 5일 안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제논 가스는 세계도핑방지위원회(WADA)의 금지약물 리스트에 포함돼 있어 등반 때 제논 가스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 BBC에 따르면 영국 전직 특수부대원 4명이 제논가스를 흡입해 고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없이 단 5일 만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히말라야 원정대행을 돕는 오스트리아 등반가 루카스 푸르텐바흐 씨가 제논 가스를 이용한 이들의 등반을 도왔다.
보통 등반가들은 정상에 오르기 전 에베레스트의 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근처 베이스캠프에 머물며 베이스캠프와 베이스캠프보다 높은 고도의 지점을 오가며 최소 6~8주 고산 환경 적응 기간을 거친다. '죽음의 지대'로 불리는 고도 8000m 이상에서는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3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국 원정대는 이같은 고산 환경 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았다. 16일 오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등반을 시작해 21일 아침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착했다. 약 4일 18시간이 걸렸다.
영국 원정대는 등반 2주 전 독일의 한 병원에서 제논 가스를 흡입했다. 이들은 고산 환경에 적응하는 데 제논가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무색무취의 가스인 제논 가스는 과학계에서 적혈구를 만드는 에리트로포이에틴(EPO) 생성을 증가시켜 적혈구 수를 늘리고 산소 운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제논 가스를 흡입하면 고산 환경처럼 산소가 적은 상황에서 사람의 운동 능력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제논가스의 기능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여전히 효능이 불분명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제등반산악연맹은 1월 "연구에 따르면 제논을 흡입하는 것이 산에서의 등반 성능을 향상시킨다는 증거는 없으며 부적절한 사용은 위험할 수 있다"며 "고산 환경에 적응하는 생리는 뇌, 폐, 심장, 신장, 혈액 등 다양한 생체 시스템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과정이며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논 가스를 둘러싼 윤리 논란도 일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돕는 등반가인 에이드리언 밸린저 씨는 BBC에 “고산 환경에 대한 적응 과정 없이 정상을 노리는 지름길이 흔해지면 등정의 공정성은 무너진다”고 비판했다.
담버 파라줄리 네팔 탐험가협회 회장도 “제논 가스 이용 방식이 확산되면 관광산업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정부가 제논 가스를 이용한 등반객에게 정식 에베레스트 등반 인증서를 발급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푸르텐바흐 씨는 "에베레스트 등반 기능이 짧을수록 자연에 끼치는 등반객들의 영향이 적고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도 적어진다"며 "제논 가스를 이용하면 건강하게 산에 오를 수 있고 산악 사고 위험과 고산 환경 사고에 노출되는 시간이 짧아진다"고 말했다.
현재 에베레스트에 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고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저산소 환경을 구현한 텐트에서 잠을 자거나 등반 중 인공산소를 이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제논가스 이용은 등반에 윤리적인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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