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주기별 소득체계 의료·주거·교육까지
대세론에 정책도 자신감, 전통 이슈 챙기기
李 "성장-분배 동전의 양면, 경시할 수 없어"
지난 대선과 달리 수치 없이 구체성 떨어져
수십 조 재원 필요하지만 재원 대책도 없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2일 경남 양산워터파크공원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발언하고 있다. 양산=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선 공약에서 뒤로 빼놓았던 '기본사회'를 다시 꺼내 들었다.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출생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주기에 맞춰 의료·돌봄·주거·교육 등 사회 전 분야의 복지 기본 서비스를 실천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대선 때 내놨던 기본소득 구상보다 넓은 전방위 개념이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재원 조달 방안은 물론 구체적 실현 방식에 대한 타임스케줄도 제시하지 못했다. 당장 국민의힘에선 "국가를 포퓰리즘 실험장으로 만들려는 것" "현금 박치기 진보"라고 맹공했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국가전담기구 설치를 공약했다. 전 생애주기별 의료, 돌봄, 주택, 교육 분야에서 소득보장 체계를 구축해 복지의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이재명표 기본사회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사회는 이 후보 사회정책의 근간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전 국민 보편기본소득, 기본대출·기본저축 등 ‘경제적 기본권 보장’이 ‘10대 공약’ 세 번째에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10대 공약 세부 목표 중 하나로 ‘기본이 보장되는 사회’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성장론에 힘을 실으면서 분배 정책에 가까운 기본사회는 뒤로 미루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날 다시 기본사회를 입에 올린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이재명 대세론에 따른 자신감이란 분석이 나온다. 성장을 전면에 내세웠던 우클릭 행보가 어느 정도 먹힌 만큼, 전통적 지지층인 진보진영이 바라는 이슈도 챙기면서 이재명 본색을 드러내려는 속내가 깔렸다는 것이다. 이 후보 역시 이날 경남 양산에서 기자들과 만나 "분배와 성장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지금은 회복과 성장에 집중할 때지만, 분배도 경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당은 23일 사회 분야 토론에 대비한 정책 비전 발표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경제분야 토론회를 앞두고 성장 전략을 발표한 만큼, 사회분야 토론회 전 기본사회를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문화벨트 골목골목 경청투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강진오감통시장을 찾아 인사를 하고 있다. 강진=고영권 기자
이 후보가 야심 차게 띄웠지만, 재원 대책도 로드맵도 부재한 장밋빛 구상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지난 대선 때와 비교해도 기본사회 분야는 크게 넓어졌지만, 구체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 대선의 경우 △연 25만 원을 시작으로 임기 내 100만 원까지 올리는 전 국민 보편 기본소득을 추진하겠다고 구체적 숫자까지 못 박았지만, 이번엔 이 같은 수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재원 대책도 전무했다. 이날 이 후보가 밝힌 구상의 일부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수십조 원의 예산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당장 농어촌기본소득의 경우 연평균 17조4,000억 원 가까이 필요하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추산이다. 여기에 고용보험 확대, 지역화폐 확대, 공공주택 공급 등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다른 정책까지 더하면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다는 건 자명한 계산이다.
하지만 이 후보나 민주당 누구도 관련해 뾰족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은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이행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 대선 당시 기본소득 재원 대책으로 탄소세와 국토보유세 신설 등을 띄웠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것을 의식해 민감한 돈 이야기는 쏙 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후보는 이번엔 'K엔비디아' 모델을 재원 충당 방안으로 띄우려는 모습이다. 이날 양산 유세에서 기자들과 만나 "AI시대로 전환되면 노동의 몫이 줄어들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데, 이를 반드시 조세로만 조달하기는 쉽지 않다"며 "앞으로는 대규모 투자에 민간과 함께 공공과,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성장의 몫을 함께 누리는 게 조세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민들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양산 = 구현모 기자 nine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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