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게임정책'을 주제로 제22회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술대회 발제자와 토론자를 비롯해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했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게임산업에 대한 정책 전환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정기 학술세미나에서도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 이후 혼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 이용자 보호의 현실적 한계를 중심으로 규제 중심 패러다임을 넘는 새로운 정책 방향이 제시됐다.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는 23일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게임정책'을 주제로 제22회 정기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3개 세션에 걸쳐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는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 1년의 평가와 전망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현재와 미래 △게임이용자 보호의 한계와 개선방안을 주요 의제로 삼았다. 박동진 연세대 교수와 유병준 서울대 교수가 각각 좌장을 맡아 열띤 토론을 이끌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 속도·방식 재검토 해야
첫 세션 발표를 맡은 서종희 연세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1년을 돌아보며 “국내 게임사는 수년간 세계적으로도 앞선 자율규제를 시행해 왔음에도 몇몇 이슈로 이를 실패로 단정하고 법제화한 것은 성급했다”며 “지금은 정보 과잉 제공이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주체 간 혼선도 문제로 지적됐다. 서 교수는 “게임산업법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지만 행정처분을 비롯한 실무적으로는 공정위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은 모순적”이라며 “관할 부처 간 중복·충돌 규제를 해소하고 규제 실효성을 갖추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나현수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국장은 “지금은 거의 모든 유료 BM에 대해 확률 공개를 요구하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범위까지 규제가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나 국장은 “낚시게임처럼 확률이 재미의 본질인 게임은 제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본질은 '정보 비대칭 해소'인데 정작 이용자가 원하지 않는 정보까지 제공하는 건 본말전도”라고 꼬집었다.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수석전문위원도 “현재 규제는 소비자 보호 명목 아래 게임산업 전체를 '사행성' 프레임에 묶어두고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은 이미 '게임'으로 분류돼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다시 도박으로 다루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용자를 소비자 아닌 '게임의 일원'으로 볼 시각 전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병기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확률형 아이템 정보제공 강화법'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게임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데이터 요구”라는 반발이 제기됐다. 서 교수는 “현행 규제 집행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포인트 법률안이 또 나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율규제의 회복과 이용자 중심 정보 설계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게임=도박 낙인 우려... WHO 질병코드, 국내 조정 가능
두 번째 세션에서 발표를 맡은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게임 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이 WHO 기준이긴 하지만 각국이 자율적으로 도입 여부를 정할 수 있다”며 “문제는 통계청과 보건당국이 마치 '수정 불가한 의무사항'처럼 해석하며 논의의 균형을 잃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강 변호사는 “ICD-11 내에서 게임이용장애(Code 6C51)는 도박장애 옆에 위치해 있어 자칫 '게임=도박'이라는 낙인을 줄 수 있다”며 “WHO 저작권(CC 라이선스)의 어댑테이션 금지 조항은 논란 여지 많은 해석인데 이를 이유로 국내 조정이 불가하다는 주장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통계청이 표준 분류를 만들 수는 있지만 개별 코드 삭제를 막는 규정은 없다”며 “국내 사정에 맞춰 게임이용장애 코드를 제외하는 조정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전응준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WHO의 CC 라이선스 해석상 코드 삭제가 어댑테이션에 포함될 수는 있지만, 국가 입법권과 행정권이 우선”이라며 “공식 유지보수 플랫폼을 통한 조정 시도가 정공법될 수 이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도 “게임이용장애 코드 하나를 삭제했다고 해서 전체 분류체계가 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라며 “일부 인용이나 발췌는 어댑테이션이 아니라는 것이 저작권법 및 CC 라이선스의 일반적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KCD 자체가 이미 WHO ICD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어댑테이션인 만큼 향후 논의에서도 별도 협의를 통해 유연한 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게임 이용자 보호, 시혜성 아닌 시장 기반 신뢰로
“1984년, 4명이 1000원씩 내 고스톱을 쳤다고 도박이냐는 판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오락'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판돈이 지금 가치로 치면 5만원 넘는 셈인데 기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세션 발표를 맡은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발제 서두에서 과거 판례를 예로 들며 이용자 보호 정책이 시대 변화에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이 아닌 이용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자율적 참여 중심의 보호 모델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교수는 특히 미성년자 결제, 과도한 몰입, 불공정 운영, 그리고 이용자 정보 유출 등을 주요 쟁점으로 꼽으며 “게임은 더 이상 청소년만의 영역이 아닌데 제도는 여전히 '10대 중심의 통제'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임 사용자층의 고령화, 문화 향유권에 대한 사회적 수요 증가 등을 고려할 때 이제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기반의 여가 산업으로서 게임을 다시 조망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최승우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은 “정부 주도의 규제가 시장 신뢰를 저해하고 있다”며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나 해외 게임사 대리인 제도 도입 등 최근 정책들이 실효성보다 상징성에 치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수석전문위원은 “게임물관리위원회, 소비자보호기구, 공정위 등 보호 주체가 중첩돼 있어 오히려 이용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통합적인 이용자 보호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박종현 국민대 교수는 “자율 규제야말로 게임산업에 적합한 보호 방식”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게임은 이용자들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산업”이라며 “정부가 강제 규제를 먼저 들이밀기보다 자율 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기회를 먼저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가 자율규제를 시혜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주체성과 시장의 자율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게임정책, 신뢰 회복이 관건
마지막 종합 토론에서는 차기 정권을 만들어갈 주요 대선 후보에 대한 제언이 이뤄졌다.
서종희 교수는 “우리 게임정책은 늘 사건 발생 이후 사후적 대응에 매몰돼 있다”며 “다수의 건전한 이용자까지 포괄하는 일괄 규제로 이어지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자율규제를 '방임'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자율규제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게 아니라, 효율적이고 적합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주체를 민간에 맡기는 정책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전성민 “게임 이용자의 다양성과 주체성을 정책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며 “게임은 단순 오락이 아닌 차세대 플랫폼이고 정책은 민원 중심이 아니라 기술 생태계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기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은 “정부는 자율규제를 여전히 '믿지 못하는 제도'로 보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규제 원칙과 철학의 부재”라고 꼬집었다. 황 회장은 “자율규제가 규제의 일환이라는 기본 인식이 없다면 게임산업에 맞는 유연한 정책은 불가능하다”며 “이용자 보호와 기업의 자유라는 두 가치의 균형 없이 한쪽으로 기운 정책은 결국 산업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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