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강하고 정밀 가공 가능해
반도체 유리기판/ 그래픽=이철원
삼성전기는 다음 달 세종사업장에 유리 기판 시범 라인을 새로 구축하고 생산을 시작한다. 이 기판은 반도체 칩을 정밀하게 쌓을 수 있는 매우 얇고 평평한 유리판이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열에 강하고 휘어짐 현상이 적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기존 기판보다 40%가량 빠르다. 표면이 매끄러워 더욱 미세한 회로를 더 많이 그릴 수 있어 전력 효율이 뛰어나다. 또 실리콘 기판에 비해 가격이 싸기 때문에 고성능 그래픽저장장치(GPU) 등이 다수 들어가는 AI 데이터센터에 꼭 필요한 제품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발열에 강하고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유리 기판이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한 AI 시대 ‘게임 체인저’ 기술이 됐다”고 했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급 추론·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AI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덩달아 유리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유리 기판은 물론이고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는 광섬유에도 유리 기술이 쓰인다. 데이터센터의 안정적 운영에 필요한 건축 자재로도 유리가 사용된다. 다른 소재에 비해 열에 강하고, 정밀한 가공이 가능하다는 유리의 특징 때문이다.
그래픽=이철원
◇AI 데이터센터 ‘핵심 소재’ 유리
유리 기판 사업엔 삼성전기뿐 아니라 국내외 주요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전력 소비를 크게 줄이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어서 차세대 기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SKC 역시 반도체 유리 기판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미국 조지아주 커빙턴시에 세계 최초 유리 기판 양산 공장을 만들고 시운전에 들어갔다. LG이노텍은 설비 투자를 거쳐 올해 말부터 유리 기판 시제품 양산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인텔과 AMD 등 빅테크도 뛰어들고 있다. AMD는 2026년까지 CPU에 유리 기판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유리 기판 시장 규모는 2023년 71억달러에서 2028년 84억달러로 18%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할 때도 유리의 일종인 광섬유가 쓰인다. 광섬유는 빛 신호를 전달하는 가느다란 유리로, 구리선에 비해 손실 없이 더 많은 양을 빠르게 보낼 수 있다. 원래도 광섬유 기술이 있었지만, 최근엔 더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 더 얇고, 고밀도의 광섬유 개발이 한창이다.
미국 특수 유리 제조업체 코닝은 기존 광섬유보다 40% 가는 ‘컨투어 광섬유’, 기존 광섬유 커넥터 대비 36배 고밀도인 ‘MMC 커넥터’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반 홀 코닝 한국 총괄사장은 “AI 발전을 위해선 유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통신 기업 루멘 테크놀로지는 코닝과 차세대 광섬유 케이블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루멘은 미국 전역에 있는 AI 데이터센터를 연결할 계획이다. 데이터센터용 광섬유 케이블 수요가 급증하면서 코닝과 일본 후지쿠라 등 광섬유 전문 기업의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열·환경에 따른 변화 적어
데이터센터 건축 자재로서 유리도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센터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외부 태양광이나 열 등을 차단하는 건축 자재 ‘스마트 글라스’ ‘스마트 윈도’ 개발이 활발하다. 자동으로 유리의 투과율을 조절해 태양광을 차단해 냉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프랑스 최대 건축 자재 기업 생고뱅, 일본의 소재 기업 아사히글라스 역시 AI 데이터센터에 적합한 유리 자재를 개발해 납품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서 중요한 요건은 온도와 습도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오작동이나 데이터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등 다른 소재와 비해 열과 환경에 의한 변형이 적고, 민감하지 않다. 이 때문에 깨지기 쉽다는 단점에도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에 유리를 핵심 소재로 여기고 기술 개발을 이어가는 것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소비량을 절감하면서 현재 데이터센터의 열을 식히는 데 드는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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