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미래 먹거리' 영토를 넓혀라
[1] 실증에 발목 잡힌 K로봇
상용화 규모 中에 밀리는 순찰로봇
여전히 초기 단계 머무른 물류로봇
中이 언제 추격할지 모르는 AI의료
"보안 중심, 우위 기술 산업 집중을"
편집자주
다음 세대의 삶을 책임질 미래 첨단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추격자였던 중국이 선도국으로 변모하는 사이 한국 기술은 규제와 정쟁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을 했다.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2부에선 미래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분석했다.
19일 서울 마포구 마포농산물시장에서 열린 소방기관 합동훈련에 선보인 화재 순찰로봇이 초기 화재 진화를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화재 발생! 출구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19일 서울 마포구 농수산물시장. 점포들이 늘어선 골목을 자율주행하며 순찰하던 로봇이 RGB와 열감지 카메라로 연기와 불꽃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렸다. 동시에 화재 발생 위치와 시간, 현장 상황이 담긴 메시지가 관리자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이후 로봇에 장착된 고체 에어로졸 소화기가 발화점을 조준하더니 "펑" 소리와 함께 분사됐다. 불길이 더 거세지기 전 초기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 로봇은 스타트업 이롭의 '피로에프'(PIRO-F). 2023년 서울 전통시장 4곳에서 실증을 거친 뒤 2월 서울소방재난본부와 협약을 맺고 본격 도입됐다. 오후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심야 시간대에 순찰을 돌며 화재 위험요인을 분석해 보고한다.
국내에서도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순찰, 물류,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 들어오고 있지만, 일찍이 시장에 진입해 풍부한 실증 데이터를 축적한 중국산보다 점유율이 크게 뒤진다. 충분한 데이터 학습과 실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거란 우려가 높다. 한국 기술의 여전한 강점으로 꼽히는 정밀 제어와 안전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국내 순찰로봇은 자율주행이나 AI 인식 같은 핵심 기술에선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스타트업 도구공간이 개발한 '패트로버'는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고 침입자를 감지하고 인구 밀집도를 파악할 수 있어 경찰 업무에 투입돼 시범 운영 중이다. 중국과 비교해 기술 수준은 크게 밀리지 않지만, 상용화 규모에 차이가 크다는 게 문제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지자체와 공공 시설에 대규모로 배치하는 반면, 한국은 협약 맺은 공공기관 같은 제한된 공간에 도입하는 데 그친다.
경기 군포시 CJ대한통운 군포 스마트 풀필먼트 센터에서 로봇청소기와 비슷한 형태의 고정운송로봇(AGV)들이 물건이 놓인 선반을 옮기고 있다. CJ대한통운 제공
물류로봇은 기술과 상용화 모두 중국에 밀린다. 분류, 운반, 포장, 출고까지 전 과정을 AI 로봇으로 자동화한 중국과 달리, 한국은 특정 업무 영역에 한정해 일부 물류센터에서만 도입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일부 센터에 고정운송로봇(AVR)1을 도입해 상품을 옮기고 분류하는 작업을 맡겼다. 출고 처리 능력이 40%가량 향상됐지만, 전 공정 자동화에 미치지 못해 아직 초기 단계다. 서빙이나 배달로봇도 하드웨어 성능이 중국에 밀리는 데다 일부 부품들은 중국산이 쓰인다.
의료AI 기업 '뷰노'의 입원 환자 심정지 감시 솔루션 '딥카스'가 작동하고 있는 화면. 혈압, 맥박, 호흡, 체온 같은 활력 징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정지가 발생할 위험도를 예측한다. 뷰노 제공
기술이 중국보다 우세하다고 보는 분야는 의료다. 국내 AI 의료기기 기업들은 90%에 달하는 판독 정확도로 미국, 유럽으로 인증을 확대하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뷰노는 생체 신호나 의료 영상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유럽과 영국 인증을 획득했다. 한국 수술로봇도 정밀도가 중국보다 높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이 빠르다. 대규모 플랫폼 연계, 의료 데이터 확보가 쉬운 중국 특성상 이대로라면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중국에선 로봇이나 AI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현재의 기술'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인포메이션은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가 올해 719억1,000만 달러(약 98조1,000억 원)에서 2030년 1,754억6,000만 달러(239조3,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확대에 발맞춰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국내 기업과 연구자들은 실증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걸 산업화가 더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기술의 성능과 품질을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신뢰성 확보는 물론 상용화 속도도 끌어올릴 수 있다. 신용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정책연구본부장은 "실증 단지를 만들어 여러 테스트베드(성능시험장)를 구축하고, 실증을 통과한 기술에 인증을 부여해 바로 산업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것 역시 원인이다. 구현모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겸임교수는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라며 "법과 규제를 정비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중국의 상용화 규모를 따라잡기 어렵다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술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업계는 호소한다. 순찰이나 보안처럼 신뢰도가 중요한 분야에선 중국 기술 도입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 도구공간 관계자는 "중국 순찰로봇은 대부분 내수시장에서 활용 중"이라면서 "로봇이나 AI의 보안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추세가 국내 업체에 기회"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산업 현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 지원을 받아 기술을 개발해도 지원이 종료되면 활용할 길을 찾기 어렵다. 황동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기술이 현장에 흡수되느냐는 개발 지원과 별개의 문제"라며 "산업화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1 고정운송로봇(AVR)
사전에 설정된 경로를 따라 자동으로 운행하는 로봇. 자율이동로봇(AMR)과 달리 주변 환경을 감지하거나 장애물을 피하진 못한다.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