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이 문제인 이유... 나치는 거듭된 의회해산 덕에 무럭무럭 자라나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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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 강남역 유세 개혁신당 이준석 대통령 후보가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e스퀘어 앞에서 유세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고 있다. |
ⓒ 이정민 |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지난 27일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에 나와서 다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성폭력을 묘사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렸다. 이 일은 다음날 오전 내내 뉴스로, 친구들의 카톡방에 올라오더니 점심시간 화제까지 잠식해버렸다.
정책 토론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최악의 대선 TV토론으로 끌고 가버렸기 때문에 젊은 정치인 이준석이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다만,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이 후보에게 국회해산권(일반적으로는 의회해산권)에 대해 물어보면서, 단편적이나마 그의 정치제도에 대한 식견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준석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그 권한이 있었다면 계엄은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후보가 이 대목을 인용하며 "국회 해산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때인 독재정권 때 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국회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 게 왜 독재냐"고 되물었다. 권 후보는 차분히 설명해줬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에게 의회해산권이 있고, 의회에는 내각불신임권이 있어서 서로 견제기능으로 작용하지만, 대통령제를 하는 한국에서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주면, 독재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권 후보의 설명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다음날 개혁신당은 국회해산권에 대한 이 후보의 주장이 맞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도 냈다.
하지만, 권 후보 말이 맞다.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주지 않은 것은 독재의 경험 때문이다. '윤석열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었으면 계엄은 안 했을 것'이라는 이 후보의 말은 이런 역사적 인식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고, 계엄이 아니라면 다른 형태의 독재는 괜찮다는 이야기로 들리기 충분하다. 한편으론 '야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엄했다'는 계엄 옹호론과도 정서적으로 가까운 이야기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현대 대통령제 국가는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이 없다. 다만 지난 세기의 역사를 봤을 때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이 있었던 경우가 있다. 바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마지막 몇 년은 '국회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선거를 다시 하는 게' 독재로 이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좌파와 자유주의 배제한 대통령의 의회해산 남발
1933년 1월 30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아돌프 히틀러를 내각 총리로 임명했다. 하지만 내각을 구성하는 나치당(NSDAP)와 국가인민당(GNVP)의 의석은 42.5%에 머물렀다. 중앙당을 끌어들여야 의석 과반을 차지하는데 무산됐고, 대통령은 의회해산권을 발동했다.
3월 5일 총선을 앞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 2월 27일의 국가의회 방화사건이다. 증거가 없는데도 히틀러는 공산당의 범행으로 단정짓고 대통령에게 요청해 긴급명령을 내렸다. 여러 헌법적 권리들을 침해하는 이 긴급명령을 근거로 나치 돌격대와 친위대가 공산당(KPD)과 사회민주당(SPD) 탄압에 나섰다.
이같은 상황에서 치러진 국가의회 선거에서 나치는 전체 의석의 44.5%를 차지, 국가인민당과 연합해 겨우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히틀러가 내각의 총리로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후 의회의 권한을 정부에 양도하는 수권법 제정, 사민당을 반역불법단체로 규정, 신규 정당 설립 금지, 국가인민당 해산, 나치당 단일 후보 총선 실시, 주의회 폐지 등 민주주의 제도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된 지 1년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통치는 제왕적 대통령의 비상대권에 의존했다.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을 혐오했던 힌덴부르크는 다수당과 안정적인 정치를 하려하지 않았고, 상황타개책으로 의회해산권을 자주 행사했다. 그 결과 총선이 수시로 열리게 되면서 성장을 거듭한 세력이 바로 히틀러와 나치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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