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피해입은 이공계 대학원생
시약 아껴가며 실험하고, 서로 눈치보기도
최저시급도 안 되는 인건비에 아르바이트
대선캠프에 구체적인 10가지 질문 던져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30일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 대화’를 열고 각 대선캠프에 과학정책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왼쪽부터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문지숙 개혁신당 공약개발단 부단장, 손의범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생. [최원석 기자]
“연구개발의 자율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과학자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연봉은 얼마여야 하는가?”
20대 청년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 정책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30여 명의 청년들 앞에 앉은 정치인들은 “정치가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아 미안하다”며 차근차근 질문들에 답했다.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은 30일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 대화’ 행사를 열었다. KAIST, DGIST, UNIST 학생들이 함께 준비한 이날 행사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중요 쟁점을 대선캠프 측에 직접 묻고 답변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문지숙 개혁신당 공약개발단 부단장(차의과학대 교수)가 참여해 이들의 질문에 답변을 내놨다.
KAIST 측은 지난 12일 ‘2025 대통령을 위한 10가지 과학 질문’을 만들어 공개했다. KAIST 대학원생들 20여 명이 만든 이 질문에는 청년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구체적인 불안과 걱정이 담겨있다. 과학기술인 처우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구 자율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등이 주로 다뤄졌다.
이는 지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서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피해 규모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실험을 많이 진행하는 분야의 학생들이다.
화학을 공부하는 한 박사과정생은 “갑자기 연구비가 줄어 시약도 아껴 써야 했다”며 “시약도 편하게 못 쓰는 현실이 처량했다”고 했다.
갑자기 어려워진 상황에 민망한 상황도 종종 벌어졌다. 한 학생은 “하고 싶은 연구가 있어도 교수에게 말을 못 한다”고 했다. 교수에게 말하면 “그래. 내가 노력해볼게”라는 답이 돌아오지만 줄어든 연구과제 탓에 서로 불편한 상황만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원생도 교수도 불쌍한 건 매한가지”라며 “연구비 삭감으로 좋아진 게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노수한 DGIST 대학원생 대표는 세 대선캠프를 향해 “지난번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 자율성에 우려가 커졌다”며 “자율성과 일관성을 확보할 구체적 방안을 말해달라”고 질문했다.
각 대선캠프 측은 모두 전폭적인 R&D 투자와 함께 “현장 연구자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달랐다.
황 의원은 “현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연구자 중심의 개방형 R&D 체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과학자들이 주도적으로 R&D 과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최 의원은 정치와 국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구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며 “비례대표에서 과학자 비율을 높이거나 연구자가 많이 들어올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속적인 정책을 위해서는 국회가 중요하다”며 “국회에서 연구자들과 많이 소통하겠다”고 했다.
문 부단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학술단체 추천을 받아 임명하거나 직접 출마해 선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잘 대표하는 장관을 두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권에 가보니 과학과 정치의 언어가 너무 다르다”며 “연구자도 조금의 시간을 할애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향한 부족한 지원도 문제다. 안순형 UNIST 대학원생 총학생회장은 “대학원생도 직장인만큼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처우나 삶의 질을 개선할 구체적 방안을 말해달라”고 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연구과제에 참여해 인건비를 받는 ‘노동자’의 성격을 갖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는다. 주 52시간은 바라지도 않지만,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실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실마다 편차도 커서 유연근무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9to9’(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10to10’(오전 10시 출근, 오후 10시 퇴근)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인건비는 부족하다. 현재 대학원생 인건비의 최소 금액은 박사과정생 월 110만원, 석사과정생 월 80만원이다. 기숙사비와 식비만 내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한 박사과정생은 “주변에서 잠을 줄여가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며 “지도교수한테 들키면 안 되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세 캠프 측은 대학원생 처우에 관한 질문에 “당연한 지적이고 무조건 처우를 개선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황 의원은 “지금 대학원생이 받는 금액이 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며 “예산을 늘려 대학원생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최 의원 역시 “현재 연구생활장려금을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문 부단장도 “특히 여성의 경우 열악한 대학원생 처우에 직접 피해를 받는다”며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행사장 앞에는 최근 이준석 후보가 3차 TV 토론회에서 한 성추행성 발언을 비판하는 대자보도 붙었다. 대자보를 작성한 서주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생은 “이준석을 위한 질문은 없다”며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문 부단장은 “이준석 후보가 말실수를 했다. 죄송하다. 하지만 개혁신당을 믿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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