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사업 '공모지침서' 입수해 봤더니
SPC 청산 시 민간이 출자금·이익률까지 보전
민간 클라우드보다 저가 공급
수익성 확보는 민간 책임
재공고 또 유찰 땐 GPU 확보 일정 차질
[이데일리 임유경 기자] 정부가 민·관 합작으로 2조원을 투입해 ‘AI 3대 강국’ 도약의 기반이 될 ‘국가 AI컴퓨팅센터’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주사업자로 참여를 검토했던 삼성SDS, LG CNS, SK텔레콤, KT 모두 막판까지 고심하다 응찰하지 않았다. 사업 요건이 민간 사업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어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만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공모요건 변경 없이 재공고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재공모 때도 참여 기업이 전혀 없을 경우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첨단 GPU 확보 계획’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1일 본지가 입수한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공모지침서’에 따르면 민관 합작으로 설립할 특수목적법인(SPC)의 청산 시 잔여 재산만으로 출자금 전액 회수가 어려운 경우 공공은 이자를 포함해 출자금 전부에 대해 현금 매수를 청구할 수 있고 민간 참여자는 요구에 응해야 한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SPC가 향후 사업을 종료해 해체될 때 회사에 남은 재산만으로는 양측이 출자한 금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없다면 민간 사업자가 공공이 손실을 입지 않도록 보존해줘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때 민간은 공공의 출자금뿐 아니라 이익률 부분도 함께 지급해야 한다. 공모서에는 공공이 매수청구 시 민간이 지급할 보장수익률을 명시하라는 조건도 포함돼 있다.
IT업계는 이 조항을 이번 사업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는다. 이번 사업은 공공이 51%, 민간이 49% 비율로 출자해 SPC를 설립하고 산업계와 연구계에 충분한 GPU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공공적 성격이 우세한데도 사업 성패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민간에 지우는 구조로 설계했다는 비판이다.
더 큰 문제는 SPC가 사업을 지속할수록 손실 볼 가능성이 큰 구조라는 점이다. 공모지침서에는 참여 기업이 국내외 클라우드제공업체(CSP)와 비교해 합리적인 과금 체계 및 가격 정책을 제시하라고 돼 있다.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보다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참여 기업은 대학·연구소, 중소·스타트업 등에 AI 컴퓨팅 용량을 우선 제공해야 하며 이들에 대한 이용료 할인과 바우처 제공 등의 인센티브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 재정사업과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요금을 할인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공모 요건에 대해 “민간 사업자들은 향후 SPC를 청산할 때 출구전략까지 모두 고려해 사업 참여를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공모 요건 아래에서는 어떻게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최소한의 수익을 내기도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국가 AI 컴퓨팅센터 추진 체계
수익성은 민간이 알아서 확보하도록 한 요건도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공모 요건에는 참여 기업이 서비스 운영 기한(2045년)까지 AI 컴퓨팅 및 부가서비스 중·장기 제공 계획과 지속적인 신규 서비스 수요 발굴 및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게 돼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 사업은 수익성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민간이 알아서 수요를 만들고 수익성 확보하라는 식인데, 그러면서도 정부는 51%의 지분과 배당을 챙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공의 의사결정에 따라 사업 추진이 종료되더라도 민간은 소요된 일체의 비용을 돌려받을 수 없는 요건도 민간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공모지침서에 따르면 공공 참여자의 내부 심의나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등의 결정으로 사업 추진이 종료될 수 있고, 우선협상대상자 이를 따라야 한다. 이 경우 사업자는 공모 준비 등에 소요된 일체의 비용, 기타 손실을 공공 참여자에게 청구할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30일 마감된 사업 공모에 응찰한 사업자가 없어 유찰됨에 따라 오는 2일부터 10일 이상의 기간을 두고 공모 요건 변경 없이 재공고(연장공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같은 요건으로 재공고가 진행되면서 치열한 경쟁 입찰을 기대하긴 어려워졌다. 업계에선 또다시 아무도 응찰하지 않거나, 1개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해 수의계약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재공고에도 참여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첨단 GPU 확보 계획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
정부는대학과 스타트업의 심각한 GPU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2027년 국가 AI 컴퓨팅센터 개소 전 ‘연내 첨단 GPU 1만 장 확보’ 사업을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SPC 사업의 평가 우선순위에 따라 GPU 구매 대행 사업자도 우선 검토할 계획인데, SPC 우선협상사업자 선정이 늦어지면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신속한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추경까지 해서 GPU 확보를 추진하는데 참여 기업을 못 구해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라고 지적했다.
임유경 (yklim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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