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 두고 정치권 논쟁 불거져
/그래픽=비즈워치
'6·3 장미 대선'을 앞두고 대선 공약이 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원화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이 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실효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명한 한 가요 제목처럼 '달의 몰락'으로 불렸던 '테라·루나 사태'까지 끌려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알고리즘형과 담보형의 차이?
스테이블코인은 말 그대로 가격 변동성을 최대한 줄여 설계된 안정적인(stable) 코인을 말합니다. 보통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법정화폐, 국채 등 실물자산과 가격을 연동(pegging·페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달러를 담보로 한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와 USD코인(USDC)이 가장 널리 쓰이고 있지요.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보다는 점유율이 한참 떨어지지만 가상자산을 담보로 한 스테이블코인도 존재합니다. 이더리움 기반 담보를 예치한 스카이(옛 메이커다오)의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에스USDS(엣 DAI·다이)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솔라나를 기반으로 한 에스유에스디(sUSD) 등 여러가지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자매코인이나 알고리즘을 활용해 페깅하는 방식입니다. 2022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들었던 테라(UST)·루나(LUNC)가 대표적입니다. 테라·루나는 충분한 준비자산 없이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유지하는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드러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테라·루나 사태 후 무담보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각국 규제기관의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세계 최초의 가상자산 규제안인 유럽연합(EU)의 미카(MiCA)는 이러한 알고리즘형을 스테이블코인에서 배제했습니다. 미국하원에서도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원화 주권 위협하는 테더·USD코인
사실상 현재 스테이블코인 대부분은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테더, USD코인을 비롯한 미국 달러,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의 점유율은 90%에 달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데다 송금이 빠르고 수수료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들어서면서 '달러 패권'을 유지하겠다며 스테이블코인에 더욱 힘을 쏟고 있습니다. 테더나 USD코인과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널리 쓰일수록 미국 달러와 국채 수요를 확대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입니다. 테더가 준비자산으로 사들인 미국 국채는 약 1116억달러에 달하는데, 한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1249억달러)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널리 쓰일수록, 각국 법정화폐의 경쟁력이 줄어든다는 우려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원화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8일 진행된 경제 채널 유튜버들과의 라이브 토크쇼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조성해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권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요건과 관리기준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는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은 자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고, 최소 50억원 이상 지급준비금을 갖추고 실시간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美, 스테이블코인 규제 입법 코앞
스테이블코인 논쟁에 불이 붙은 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테라·루나 사태를 언급하면서부터입니다. 이 후보는 "테라의 KRT(테라KRW)는 한국 원화와 1:1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 자산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산담보는 무엇인지, 시장 리스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죠.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과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은 성격이 다소 다릅니다. 김병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준석 후보는 알고리즘형과 담보형의 구조적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일반화해 정책 논의 전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했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민주당이 검토 중인 스테이블코인은 테라·루나와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적으로 페깅이 가능한지, 발행사를 신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쓰이는 테더의 경우, 지금과 달리 초반에는 지급준비금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2016~2018년 테더의 지급준비금이 부족했다며 41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적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연방통화감독청(OCC)이 승인한 비은행 기관, 비보험 국립은행 및 연방기관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도록 하는 법안 입법을 앞두고 있습니다. 1대 1로 지급준비금을 보유, 유지해야 하며 현금·단기 국채·은행 예금 위주로 구성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이른바 '지니어스 액트'라고 불리는 법안인데요, 미 상원의 클로처(cloture) 표결을 통과해 하원에서의 승인만 남겨둔 상태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 공감
다수의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원화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담보자산을 제대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장경필 쟁글 리서치센터장은 "제안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완전 담보형으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과 비례해 원화를 전액 보유한다는 걸 의미하며, 명확한 담보자산을 통해 가격 안정성이 크게 향상돼 과거 알고리즘 모델과 같은 붕괴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지급준비금을 원화 예금이나 국채와 같은 고신용 상품으로 구성하고 사전·사후 감사를 의무화하며, 담보 비율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며 "발행사에 대한 라이선스 요건을 강화하고 금융 당국에 분기별 운영현황, 리스크 관리보고서를 의무화하는 규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윤승식 타이거리서치 선임 연구원도 비슷한 의견을 냈습니다. 그는 "원화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은 금융 대체보다는 원화 금융주권 강화와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대 방어수단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며 "이미 시장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어 외환관리에도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윤 연구원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액수보다는 발행된 양에 비해 100% 담보자산을 마련했는지를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습니다.
편지수 (pjs@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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