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윤석열과 대립 구도에 세워 보도하며 평등권에 반하는 언동은 외면한 언론
이준석 행보는 '혐오 정치'맥락 위에 있었으나 받아쓰기·무비판적 섭외 이어져
사회학자 "극우의 핵심은 반평등...극우의 화살 맞는 사람들의 고통 다룰 때"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5월27일 대선 TV토론에서 언어 성폭력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이하 이준석)의 대선 TV토론 언어 성폭력 사건은 공론장에서 이를 제재하지 못한 언론의 실패를 보여줬다. 이번 사건은 언론이 이준석식 정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고발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이 수년 간 이준석을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립 구도에 세워 놓고 보도하면서, 평등권에 반하는 그의 언동은 외면해왔다는 진단이다.
시간을 2021년 6월로 되돌려 보자. 당시 신문은 '0선'이자 30대 남성인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반기면서 '이준석 현상', '이준석 돌풍'을 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로 “더불어민주당과 여타 정당들은 이준석 돌풍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게 아니라 쇄신의 자극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그의 선출을 “청년 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젊은 세대는 이 낡은 정치에 신물이 났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혁신 경쟁이 시작됐다”고 풀이했다.
당시 이준석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당대표 경선에서 '남성 역차별론'을 띄우고, '여성할당제 폐지'를 내놨다. 이에 대한 일부 지적이 있었지만 대개는 그가 젊은 당대표라는 점을 들어 '변화의 물결'을 전망했다. 한겨레는 “반페미니즘과 경쟁지상주의 등 이 대표가 내세우는 일부 가치를 두고는 '남녀 갈라치기' 또는 '보수 가치의 퇴행'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면서도 “젊은 정치 리더십의 출현이 한국 정치 전반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오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당시 신문 1면 보도 갈무리
이준석의 이어진 행보는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혐오 정치' 맥락 위에 있었다. 이준석은 당대표이던 2021년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보장 예산을 요구하는 '지하철 타기' 시위를 '비문명'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그가 대표였던 국민의힘이, 지금은 그가 대선 후보로 나선 개혁신당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다. 병원을 자주 찾는 빈곤층과 신체 약자, 장애인 등을 겨냥해서는 '연 120회 진료 초과 시 본인부담률 90%' 정책을 내놨다. 이윽고 대선 생중계 TV토론에서 여성 학대를 전시하는 성폭력 발언에 이르렀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언론은 정치인 이준석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했어야 한다. 일부 언론이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보수언론 중심으로 이준석은 개혁 보수를 대표하고, 윤석열은 구태 올드 보수를 대표한다는 도식에 근거한 시각으로 보도해왔다”며 “이런 도식에 근거한 매너리즘에 젖어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딛고 선 편가르기와 혐오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이는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이준석의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평등권을 요구하는 사회적 약자 집단을 범죄화하는 경향'을 두고서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현하는 극우 정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는 학계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극우의 핵심은 반평등이다. 진보와 보수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왔던 보편 가치와 기본권의 영역을 거스르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며 “어떤 대상이 극우인지 여부를 이해하는 일은 간단할 수 없지만, 이준석의 경우 장애인단체, 페미니즘 등 우리 사회 소수자나 약자 집단이 보다 많은 평등권을 요구하는 지점에서 이들을 범죄화하거나 경멸의 대상으로 만드는 전략의 경향을 공통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준석은 어느 사회 내 집단과 대상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자기 정치 자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삼아온 정치인”이라며 “전형적 극우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언론이 쏟아낸 받아쓰기식 공방 보도는 그의 혐오정치를 대중에 전하는 통로가 됐다. 신 교수는 “이준석의 특징은 지난 TV토론처럼 명백한 폭력적 행동을 했다가, 그렇지 않았다가 하면서 회색지대를 오간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비판적 거리를 갖지 않는 인용 보도는 극우의 대중화를 가능케 한다”고 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도 “해외의 혐오 선동 정치인들도 직접 노골적 혐오 표현을 하진 않는다. '이주노동자 쫓아내자' 말하지 않고 '프랑스의 민족적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고 포장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대중이 이주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 뒤 “언론이 이준석의 언행의 이런 부분을 날카롭게 짚지 못했다. 언론사들이 주로 취하는 보도 방식은 '워딩을 잡는' 일인데, 이는 그 같은 혐오 정치가 내는 효과를 조명하지 않은 채 프레임에 넘어가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의원(왼쪽)과 진행자인 김현정 앵커. 사진=뉴스쇼 갈무리
언론이 저널리즘과 공론장 원칙보다 수익에 몰두하면서 이준석과 거리두기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를 두고 불거진 '정언유착 논란'이 관련 사례로 언급된다. 2023년 조정훈 당시 시대전환 의원을 인터뷰한 뉴스쇼 제작진에게 이준석 의원 측이 '유승민-이준석 신당' 지지율이 '윤석열 신당'보다 높게 나온 여론조사를 전달했고, 실제 조 의원 인터뷰에 해당 여론조사 결과가 활용됐다는 지적이 제기된 일이다. 제작진은 이를 뉴스쇼에 대한 음해라 반박했다. 지난해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사당 담을 넘어 진입하는 대신 계엄군을 향해 호통친 이준석 의원을 CBS가 인터뷰이로 섭외한 일도 유사한 맥락에서 입길에 올랐다.
김민하 평론가는 이를 두고 “라디오 방송이나 대담 프로그램이 어떤 저널리즘을 구현할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패널을 섭외하도록 하는 구조가 있다”며 “무엇보다도 조회수나 화제성, 청취자가 원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 이준석과 같은 캐릭터는 언제나 섭외 우선순위에 놓인다. 그는 윤석열과 대립하는 데다, 현란하게 뉴스를 생산해내는 기술적인 말들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이준석이 펼치는 정치의 본질을 기반으로 언론사 내 공론장이 작동한 사례도 있다. 한겨레TV는 유튜브 프로그램 '공덕포차 시즌2'에 이준석을 고정출연자로 섭외했다가 내부 토론 끝에 취소한 바 있다. 김 평론가는 이를 두고 “높은 수준에서 프로그램과 지면을 어떤 기조로 가져가야 한다는 판단이 작동한 사례다. 다른 기성 언론사에서 기능하지 않았던 모델이 작동한 사례라는 점에서 하나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했다.
신진욱 교수는 언론이 '극우 정치의 화살'을 맞는 희생자들에 대한 조명이 부족하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유대학이 건국대 앞 중국인 상인들 앞에서 도발하고 욕설하는 행위 등 극우가 문제인 이유는 인간에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극우가 살아있는 인간에 어떤 구체적 고통을 주는지를 다루는 담론은 너무나 적다. 이준석 후보가 TV토론에서 어떤 표현을 했을 때 여성에게 어떤 공포와 트라우마로 다가오는지 남성들은 와닿지 않는다. 이 지점이 극우를 대하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극우가 인간에게 어떤 구체적인 결과를 낳는지 풍부한 내러티브로 전달하는 일, 그 폭력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언론의 우선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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