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이재명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봉황기가 게양돼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공식 취임하면서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로 위축된 과학기술계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연구자 중심'으로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대하고 R&D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과학기술 현장은 이 같은 민주당의 공약을 두고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 과학계 원로들은 구체적이고 세심한 실현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후보 시절 이 대통령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선임직 이사에 연구자를 포함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 정책·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공공기관 기관장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겠다는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과학기술 공약을 소개했던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국회의원)은 지난 1일 열린 KAIST 과기정책대학원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대화'에서 "R&D 정책 수립부터 기획평가까지 R&D 전 과정에 연구자의 전문성을 반영하는 연구자 중심 개방형 R&D 체계로 대전환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5월 28일 한국과학기자협회가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과 주최한 ‘제21대 대선 후보 과학-보건의료 공약 토론회’에서도 황 위원장은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과학자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예산을 기반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하겠다"며 "현장연구자 중심으로 R&D 정책을 만들고 기초과학 R&D 예산을 늘리면 과제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 중심 R&D 공약에 대해 과학계 석학들은 "무조건 R&D 정책과 평가에 연구자가 참여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며 "기초과학에 대한 '풀뿌리 연구' 투자 확대를 시작으로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연구자 중심 R&D"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정부의 R&D 예산 삭감 여파로 개인 기초과학 연구자의 발판으로 꼽히는 '생애 첫 연구', '기본연구' 등 R&D 예산이 지난해 사라지며 풀뿌리연구의 생태계가 망가졌다는 지적이다.
현택환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 단장(서울대 석좌교수)은 "R&D는 정부 주도, 연구자 주도로 내용과 상황에 맞게 정책이 주도돼야 한다"면서 "다만 기본적으로 연구자 중심 R&D가 잘 진행되려면 지난 정부에서 없애 타격을 입은 5000만원~1억 규모의 풀뿌리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려 망가진 생태계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로 꼽히는 또 다른 석학도 "연구자 중심 R&D가 항상 '바텀업(Bottom-up) 방식'일 필요는 없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어젠다는 국가가 끌고가야 한다"면서도 "전망이 불확실하지만 혁신 가능성이 있어 장기적으로 투자할 분야를 찾기 위해서는 풀뿌리 연구에 정부가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AI 선진국도 AI의 핵심 연구인 기초과학에 불확실하지만 꾸준히 투자해왔기에 오늘날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풀뿌리 연구를 기획하고 풀뿌리 연구에서 발전할 가능성을 엿보고 지원해주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고려해야 할 때다"고 조언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 후보들이 후보 시절 모두 강조한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구체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자가 즐겁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래야 이공계 인재 유출을 막고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단장도 신진 연구자가 세계적인 과학자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도 강조했다. 그는 "이공계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은 한국이 수십 년 쌓아 온 과학기술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자 국력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신임교수, 조교수, 선임연구원 등 신진연구자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예측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줘야 인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과학기술계가 제대로 관심을 받고 성장할 수 있을지는 이제부터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이어 "과학기술 투자가 AI 투자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며 "AI의 기반인 기초과학을 어떻게 투자할지를 세심하게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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