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으로 헌법을 파괴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다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날의 진상을 역사에 낱낱이 기록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계엄 관련자들에게 제대로 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 12.3 비상계엄의 실체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계엄에 동조한 세력 중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뉴스타파는 내란 수사기록 등 방대한 사건 기록을 통해 12.3 내란의 심층부 속,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장면들을 포착했다. 뉴스타파가 새롭게 써내려가는 그날의 범죄 기록. [편집자주]
12.3 비상계엄의 기획자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1월 말,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문상호 정보사령관에게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 하루 전 날을 콕 집어 조기 귀국을 종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노상원-문상호 간 통화 내용을 문상호 전 사령관의 검찰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
통화 시점은 노상원이 극소수 정보사 대령들에게 특수 요원을 포함한 인원 선발을 지시하고 중앙선관위 직원 체포 등의 계엄 계획을 알려준 이후다. 문상호 사령관의 지시 하에 정성욱 정보사 대령이 선관위 직원 체포 작전에 쓰일 물품들을 구비해놓은 이후기도 하다. 이미 비상계엄을 전제로 한 일종의 ‘공작’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노상원이 해외로 출국한 문상호 사령관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한 것이다.
노상원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오물풍선 원점 타격'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파악됐다. 이밖에 여러 북풍 공작을 통해 계엄 명분을 만들려 했다는 이른바 외환 의혹을 뒷받침할 새로운 정황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11월 27일까지 귀국하라"
뉴스타파가 확인한 문상호 전 사령관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계엄 9일 전이던 지난해 11월 24일 일요일, 문 전 사령관은 노상원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문 전 사령관은 노상원에게 자신이 곧 해외 출장을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문 전 사령관은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이 예정돼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노상원이 대뜸 흥분하면서 화를 냈다. 노상원은 문 전 사령관에게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느냐"며 "출장을 당장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문 전 사령관은 황당해하며 "이미 약속된 일"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노상원은 "늦어도 수요일 밤까지는 귀국하라"고 말했다. ‘수요일 밤’은 11월 27일이었다. 11월 27일 하루 뒤인 28일은 북한이 33번째 오물풍선을 부양한 날이었다. 문 전 사령관은 노상원의 지시에 따라 실제 귀국 비행기표를 11월 27일 수요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의 변수가 생기며 27일에 귀국하지 못했다.
노상원이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과 지난해 11월 24일 나눈 통화 내용 중 일부
계엄 기획자가 北 오물풍선을 누차 언급해야 했던 이유
노상원은 계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북한 오물풍선을 '한 묶음'처럼 언급했다. 이미 지난해 10월과 11월 무렵, 정보사 대령들에게 '오물 풍선 원점 타격' 필요성을 언급한 사실도 확인된다. 취재진이 확인한 정보사 김봉규 대령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노상원은 지난해 10월 김 대령에게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대령은 검찰 조사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도 오물풍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하고 해야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11월 초, 노상원은 김 대령과 문상호 사령관을 안산 상록수역으로 불러 앞서 지시한 인원 선발이 다 됐는지를 확인했다. 노상원은 이때도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리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하고 지원세력을 타격할 수 있어서 너희가 임무 수행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 관련해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중앙선관위에 가야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노상원은 '우리 군인이 왜 그런 사람들을 잡아와야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계엄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계엄 선포시 할 일'이라고 적힌 A4 용지 10장 분량의 문건을 김봉규 대령에게 전달했다. '북한 오물풍선 대응'과 '부정선거',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두 사안은 오직 '계엄'이라는 상황이 발생해야만 한 데 묶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문상호에 대한 때아닌 '귀국 종용' 배경에 '북한 오물 풍선'과 맞물린 계엄 임무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
노상원의 뒷배 자처한 김용현
여기에 또 다른 계엄 기획자 김용현의 행적을 조합하면 의혹은 한층 더 짙어진다. 지난해 10월 무렵, 노상원이 정보사 김 대령에게 '북한 오물풍선 원점 타격' 관련 얘기를 전했을 당시, 김용현도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곽 전 사령관은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조특위에 나와 "10월 정도에 김용현 전 장관이 북한 오물풍선 쓰레기 상황이 발생하면 '원점을 강력하게 타격하겠다', '합참 지휘통제실에 직접 내려가서 지휘하겠다'는 얘기를 비화폰으로 직접 했다"고 말했다.
김용현 전 장관은 노상원이 정보사를 가동하는 데에도 배후를 자처했다. 문상호 전 사령관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또는 11월 문 전 사령관에게 "노상원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문상호가 노상원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시기였다. 이때 노상원은 자신을 믿지 못하냐는 취지로 물었고, "좀 있으면 장관이 너에게 전화를 할 것”이라고 문 전 사령관에게 말했다. 문 전 사령관은 이후 검찰에 나와 “그 후 실제로 10분 뒤에 김용현 장관의 전화가 왔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의 32번째 오물풍선 부양이 있기 하루 전인 11월 17일 지상작전사령부에 "오물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시 경고 사격을 하고, 북한이 화기 도발을 하면 지체 없이 원점을 타격하도록 대응 계획을 세우라"는 지시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방첩사 박모 대령의 진술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계엄 기획자 김용현과 노상원 모두, 특히 노상원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할 권한이 없는 예비역 민간인 신분임에도 오물풍선 원점 타격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윤석열 -> 김용현 -> 노상원 연쇄 지시?
이런 노상원과 김용현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도 마주하게 된다.
노상원이 해외 출장 문제로 문상호 사령관에게 화를 냈다던 지난해 11월 24일은, 김용현 전 장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상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던 날이기도 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계엄) 전 주 일요일(11월 24일)에 (윤 대통령과) 티타임을 했다"며 윤 대통령이 '국회 패악질' 등을 언급했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은 이때 "이 패악질에 대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날, 노상원은 문 사령관에게 화를 내며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냐", "출장을 당장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김용현이 노상원과도 공조하고 있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이들이 만약, 북한 오물풍선 부양을 기다린 게 맞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작전을 구상했던 걸까. 노상원이 화를 냈다던 날로부터 이틀 뒤인 11월 26일, 우리 측이 날려보낸 대북 전단이 북한에 떨어졌다. 다시 이틀 뒤인 11월 28일에는 북한이 보낸 오물풍선이 서울 용산 등 남측 상공에 떨어졌다.
이 무렵, 남북의 군사적 긴장도가 이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느낀 영관급 장교는 당시 상황을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취재진이 확인한 방첩사 이재학 대령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그는 11월 28일 "상황이 위중하니 부대에 위치해 있으라"는 얘기를 사령부로부터 들었다. 그는 '그전까지 북한 오물풍선이 30여회 정도 떴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다'는 취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는 또 이날 '오물풍선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 사령관이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문상호 사령관 역시 검찰 조사에서 "돌이켜보면 그 무렵부터 일을 벌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내란 일당, '평시 계엄'으로 경로 틀었나
다행히도 11월 28일 국지전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날인 27일까지 귀국하기로 했던 문상호 사령관은 인천공항 기상 악화로 28일 이후에 귀국했다. 합참 역시 김용현의 오물풍선 원점 타격 계획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미심장한 것은, 김용현 등 계엄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했을 때, 윤석열 내란 일당이 계엄 선포를 위한 실무 작업 등을 본격적으로 수행한 시기가 11월 28일 이후였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북한과의 충돌을 유도해 준전시 상황을 명분으로 계엄을 준비했다가 '오물풍선 원점 타격' 등이 무산되자 계획을 바꿔 '평시 계엄' 형태의 계엄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용현 장관은 11월 30일 토요일.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조만간 계엄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정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확보한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김용현 장관은 11월 28일로부터 이틀 뒤인 11월 30일 토요일, '조만간' 계엄이 있을 것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여 사령관이 김 장관의 공관에서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김 장관이 "조만간 계엄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정하실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 사령관이 "무슨 말이냐. 계엄은 안 된다고 수도 없이 말씀 드렸고, 트럼프 취임 이후를 살펴보겠다고 하시지 않았냐"고 따지자 김용현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결심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는 '평시 계엄'을 하겠다는 명확한 시그널이었다. 여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그때 "비상계엄이 임박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군사법원에서 증언한 내용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곽 전 사령관은 계엄 당시 자신의 머릿 속에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첫째, 오물풍선과 상황이 연결돼서 상황이 에스컬레이트 되는 것, 즉 준전시 상황에서 비상 계엄이 선포되는 것이었다. 둘째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지 않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평시 상황에서 비상 계엄이 선포되는 것이었다. 곽 전 사령관이 말한 첫번째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않았고, 결국 세 번째 시나리오가 채택된 셈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노상원은 이날(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매일 김용현 국방장관의 공관에 방문했다. 검찰은 이 무렵 노상원이 계엄 선포문과 포고령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수사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외환 의혹 철저한 수사 필요
내란 세력이 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풍을 유도했다는 이른바 '외환 의혹'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민간인 노상원은 어떻게 오물풍선 타격과 같은 우리 군의 대응 방침을 알고 있었는지, 노상원이 왜 문상호 사령관에게 11월 27일까지 귀국하라고 종용했는지,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노상원은 김용현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
국회 내란 국조특위 위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내란 일당은) 전시·사변을 유도해 자연스럽게 계엄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하려고 했으나 실패하다 보니 평시 비상계엄으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확신에 가깝게 그렇게 생각한다"며 "군은 전두환에 의한 전국 비상계엄 확대 등의 트라우마가 있다.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이 따를 수밖에 없는 유일한 상황이 바로 '북한 변수'라는 것이다.
부 의원은 "북한이 도발을 했으면 그때가 계엄 당일이었을 것"이라며 "그런 상황이 안 벌어진 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검을 통해서든 뭐든, (의혹을) 전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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