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스코어 0대 2 열세에서 역전승...세계 1위 시너 꺾고 극적인 우승승자의 환희,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클레이코트에 누워 기뻐하고 있다(사진=프랑스오픈 SNS)
[스포츠춘추]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가 테니스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세트스코어 0대 2로 뒤진 절망적 상황에서 야닉 시너(이탈리아)를 꺾고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2연패를 달성한 그는 "마지막 포인트가 끝날 때까지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고 믿었다"며 불굴의 정신력을 강조했다.
알카라스는 6월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의 필립 샤트리에 코트에서 열린 남자단식 결승에서 세계 1위 시너를 4-6, 6-7(4), 6-4, 7-6(3), 7-6(10-2)로 꺾었다. 5시간 29분간 펼쳐진 이 경기는 프랑스오픈 역사상 가장 긴 결승전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극적인 승부로 기록됐다.
4세트에서 알카라스가 3-5, 0-40으로 뒤진 상황이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다. 시너가 3개의 매치포인트를 잡은 순간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지만, 알카라스는 연속으로 5포인트를 따내며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이후 그는 4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따낸 뒤 5세트에서도 10-2로 승리하며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역전승을 완성했다.
경기 후 알카라스는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매치포인트를 살려내고 우승한 선수가 되고 싶었다"며 "한 포인트씩만 생각했다. 그 게임을 살려내고 계속 믿는 것, 그게 내 생각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매치포인트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었다"고 강조했다.승자가 된 알카라스(사진=프랑스오픈 SNS)
이번 우승으로 알카라스는 22세 1개월 3일의 나이로 통산 5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는 그의 우상인 라파엘 나달이 2008년 윔블던에서 5번째 메이저를 우승했을 때와 정확히 같은 나이다. 놀라운 건 이번이 알카라스에게 생애 첫 세트스코어 0대 2 역전승이라는 사실이다.
시너와의 라이벌리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번 승리로 알카라스는 시너와의 맞대결에서 8승 4패를 기록하게 됐으며, 5경기 연속 승리 행진을 이어갔다. 두 선수가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맞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테니스 팬들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경기가 됐다.
경기 양상도 흥미로웠다. 시너는 짧은 랠리에서 108-95로 앞섰다면, 알카라스는 긴 랠리에서 97-84로 우위를 점했다. 결과적으로 시너가 총 득점에서 193-192로 한 점 앞섰지만, 승부의 분수령에서는 알카라스가 더 강했다. 특히 마지막 5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알카라스는 첫 7포인트를 연속으로 따내며 결정적 순간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오늘 경기에선 정말 놀라운 순간들이 있었다"고 알카라스는 되돌아봤다. "상대가 야닉이었는데, 그가 정말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줬다. 가끔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의 움직임은 믿기 어려웠고, 놀라운 샷들을 계속 쳐댔다. 어떤 공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또 알카라스는 "이 대회는 나에게 정말, 정말 특별하다. 매년 여기 오는 것이 기대된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너 역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상대를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회가 많았는데..."라면서도 "하지만 이것도 스포츠의 매력이다. 슬픈 일만 생각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작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밤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경기장 분위기도 역대급이었다. 관중들은 5시간 넘게 숨죽이며 이 역사적 승부를 지켜봤다. 특히 알카라스가 매치포인트를 막아낸 순간과 마지막 우승 포인트를 따낸 순간 필립 샤트리에 코트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알카라스는 우승 직후 클레이 코트에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앞으로 10년 이상 계속될 라이벌리(사진=프랑스오픈 SNS)
이번 우승으로 알카라스는 나달 이후 파리에서 연속 2회 우승을 차지한 최연소 선수가 됐다. 또한 그랜드슬램 결승에서 세트스코어 0대 2으로 뒤진 상황을 뒤집고 우승한 6번째 선수가 됐다. 프랑스오픈에서는 1979년 비에른 보리 이후 처음이다.
시너는 이번 대회에서 오픈 시대 최초로 그랜드슬램 남자단식에서 첫 20세트를 연속으로 따내고도 우승하지 못한 기록을 남겼다. 준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3세트로 꺾으며 결승에 올랐지만, 마지막 고비에서 알카라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날 5시간 29분간의 대장정은 테니스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신들은 일제히 "2019년 윔블던 조코비치-페더러 결승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승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2세와 23세,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든 두 라이벌의 첫 그랜드슬램 결승 대결이 이 정도의 명경기를 선사했다는 사실은 테니스 팬들에게 벼락 같은 축복이다. 빅3(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알카라스와 시너가 열어갈 새로운 황금시대를 향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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