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영입 나서는데 한국은 내년에나 본격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과 하버드대를 포함한 명문대 외국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압박으로 인해 연구자들 사이에서 미국을 떠나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고 하버드대를 포함한 명문대 외국인 연구자를 압박하면서 과학자들이 미국을 떠나려는 분위기가 확산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이들을 붙잡으려는 움직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미국을 떠나려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대폭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국은 내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유치 전쟁'에 뛰어들 것으로 보여 탈미국 과학 인재들을 적극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전날 종합 과학기술·이노베이션 회의에서 "미국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연구 활동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있다"며 "미국을 포함해 우수한 외국 연구자 초빙 등을 강화해 달라"고 지시했다. 일본은 동맹인 미국을 배려해 미국 연구자를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일본은 문부과학성을 필두로 해외 인재 확보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또 연구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관련 예산을 증액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 국립대인 도호쿠대는 향후 5년간 300억엔(약 285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 약 5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도 탈미국 인재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향후 3년간 5억 유로(약 7856억원)를 투자해 유럽을 연구자들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대학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노출된 일부 미국 내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유치 활동에 나섰다. 호주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호주 출신 연구자들의 귀국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출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도 미국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수백억원의 예산이 포함된 5월 추경 예산 계획을 냈지만 최종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AI 인재 유치 사업 예산만 포함됐다. 과기정통부는 당초 '해외 우수 과학자 유치사업(Brain Poo·브레인풀)' 추가 예산을 150억원 가량 추경 예산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었다. 1994년 시작된 브레인풀은 해외 우수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한 사업이다.
미국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브레인풀 사업 추가 예산은 2차 추경 예산에도 포함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2차 추경은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한 성격이라 브레인풀 사업 예산이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급 인재 유치에 적합하도록 브레인풀 사업 제도를 개선하고 유치 비용을 늘리기 위한 예산을 내년 본예산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에 특화된 인재 유치 사업도 필요하지만 브레인풀 사업을 통해 수학, 물리학, 기하학 등 기초과학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AI를 비롯한 여러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독립적이고 혁신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며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중구난방으로 미국의 고급 인재에 러브콜을 보내기보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인재 유치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현재 과기원,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연구기관은 적극적으로 미국 인재 유치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한 과기원 관계자는 "예산이나 제도의 한계로 기관이 개별적으로 미국 인재를 유치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 이들 기관은 추경을 통해 확보된 AI 인재 유치 사업을 통해 AI 인재 모시기에 나선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연구기관 내에서 지켜야 하는 공개 채용 제도를 무시하고 미국 인재를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다"며 "훌륭한 인재를 데려올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이런 제도가 유연하게 적용되면 좋겠다"고 했다.
포스텍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인 해외연구자 단기방문 프로그램 '익스피리언스 포스텍(Experience POSTECH)' 사업을 확대해 미국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익스피리언스 포스텍은 해외대학 전임교원과 연구자를 포스텍으로 초청해 세미나나 한국 연구자와의 공동연구를 지원하면서 인재 유입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익스피리언스 포스텍을 통해 선정된 총 16명 중 미국 출신 연구자가 6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편 KAIST는 지난해 가을 학기부터 시작된 대학원 편입학 제도를 통해 미국 유학 중 비자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학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으로 이동하는 지도교수를 따라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고자 하는 학생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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