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화 이화여대 약대 연구교수
전경화 이화여대 약대 연구교수가 4월 17일 이대 약학관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세영 기자.
<편집자 주>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은 과학자로 발돋움 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평생 가져갈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출산과 육아를 하는 과학자에게는 가장 가혹한 시기입니다. 밤낮없이 육아와 연구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육아지원에서 배제된다는 점입니다. 법적인 휴직 기간, 보육시설 이용 가산점뿐 아니라 육아휴직비를 지원받지 못합니다. 생계의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현장에서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육아하는 아빠 과학자'를 연재한 동아사이언스는 올해에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연구현장에서 연구와 육아를 함께하는 청년 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이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연구의 어려움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박사 과정 졸업을 준비할 때 메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었어요. 어린이집을 보낼 땐 부부가 '맞벌이'어야 아이의 입소 순위가 높이지는데 박사 과정 정규 등록이 아닌 논문 등록 또는 연구 등록일 땐 재학생이 아닌 제적 상태가 돼 재학 증명서를 받을 수 없었어요. 인건비 형태로 월급을 받고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적 신분이라 맞벌이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만난 전경화 이화여대 약대 연구교수는 박사 과정 중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과 마찬가지로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이라는 신분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불편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액면'으로만 보면 박사급 연구자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 연구교수의 사례처럼 '육아기'와 '임시직'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시직 연구자들은 정규직 연구자들보다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육아기 연구자의 근무 여건은 상당 부분 지도교수의 재량에 따라 달라진다. 전 연구교수는 실험 데이터가 쌓인 뒤 논문이나 보고서 등을 작성할 땐 재택근무를 하는 등 지도교수의 배려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연구교수는 합성 저분자 물질 또는 천연 저분자 물질을 기반으로 약물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는 약학 연구자다. 물질의 메커니즘을 살피고 새로운 약물 타깃을 찾기 위해 세포와 동물을 이용한 실험실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있다.
임신기와 육아기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주변 도움이 컸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두 아이를 둔 엄마인 전 연구교수는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배려와 남편 및 친정의 도움을 받았다. 전 연구 교수는 “육아를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놨다”며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처럼 백업요원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연구교수는 원만한 육아를 위해 개인적으로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남편이 육아에 함께 참여하고 있고 친정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전 연구교수는 “모든 연구자가 육아 시 주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안정적인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연구자들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유연해진 근무 시간, 줄어든 행정 업무 부담 등 개선된 부분이 있지만 지원이나 시설 등에선 아직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의 양육 수당이나 아동 수당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10~20만원 더 지원받는다고 연구자들이 아이 낳는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아이가 훌쩍 자라 초등학생이 됐지만 전 연구교수가 육아기에 겪었던 어려움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건에서 전 연구교수가 연구자 길을 가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얘기는 “아이들이 클 때까지 잘 버티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전경화 이화여대 약대 연구교수가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문세영 기자.
다음은 전 연구교수와의 일문일답.
Q. 실험실에서 약품을 많이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임신기 연구자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임신부에게 해로운 약이 굉장히 많지만 의약품에 대한 제반 지식이 있고 연구실에서의 배려가 있어 조심할 수 있다. 가령 동물실험을 할 땐 흡입 마취제를 사용한다. 흡입 마취제를 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이지만 실험을 하는 연구자도 일정 부분 노출된다. 임신 중이던 박사 과정 때 동물실험을 진행해야 했지만 출산 이후로 미뤘다.”
Q.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과학자에게 제도 측면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방학이 제일 무섭다. 학기 중에는 시간표에 따라 아이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방학 때는 다르다. 방과후학교나 늘봄학교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급식을 안 하는 학교가 많아 도시락을 싸야 한다. 방학 때 아이들을 돌봐주는 제도에 아쉬움이 있다.”
Q. 상대적으로 순탄한 육아기를 보냈다고 했지만 주변에선 험난한 육아기를 보낸 연구자들이 많을 듯하다.
“결혼을 하면서 연구를 떠난 친구들이 많다. 주변 도움이 없으면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기 쉽지 않다. 여대임에도 불구하고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곳조차 제대로 없어 어떤 박사는 화장실에서 울면서 모유를 짰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유가 나오는 것을 멎게 하는 ‘단유’ 과정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연구실로 복귀한 건데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Q. 육아 휴직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 고용 불안을 느끼지는 않나.
“연구자들은 최근 3~5년간 실적으로 평가를 받는데 육아 휴직 3개월을 쓰고 나면 데이터를 다시 쌓아야 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 기간이 3개월 이상의 긴 공백처럼 느껴진다. 아이가 어릴 땐 물리적으로 케어해야 하는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이가 좀 더 큰 뒤 실적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연구교수를 하면 전임교원을 목표로 두는 경우가 많지만 연구교수를 10년 정도 한다고 해서 전임교원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대학에 티오(TO)가 났을 때 전임교원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고용 불안을 크게 느끼는 연구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지도교수께서 육아기에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현재의 연구 환경이 편한 부분들도 있지만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인가 하는 우려스러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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