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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 어떻게 지배하는가
엘리트의 대중 지배가 방식
90년대 진보 집권층도 수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LA 반이민 시위에 해병대와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을 투입하면서 9일 밤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사진 | 뉴시스]
# 9일(현지시간) 밤 11시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는 미군 해병대 700명,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4100명이 실전 배치됐다. 지난 6일 이민세관단속국이 LA시 불법이민자 40여명을 체포한 후 시작된 반이민 시위 진압이 목적이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를 "도발 행위"라고 비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전을 원치 않는다"고 응수했다.
# 트럼프와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6년 전에도 주 방위군의 멕시코 국경 배치 문제로 충돌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하나의 미국이 또 다른 미국과 싸운다"고 평했다. 반복되는 충돌을 이해하려면, 트럼프식 자유주의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더박스·2024년)」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번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혈사태로 저자들은 개정판 집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책 곳곳에서 미국과 칠레가 신자유주의적 내전의 전형으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저자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르, 오 게강은 2018년 결성된 '신자유주의와 대안 연구그룹' 소속이다.
"신자유주의는 애초부터 내전이라는 근본적인 선택에서 출발했다 … 칠레와 미국 두 예시를 통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지하철 운임 인상에 항의하며 폭동이 발생한 지 이틀 후인 2019년 10월 20일,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주저 없이 전쟁 상태를 선포했다 …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포틀랜드와 오클랜드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반인종주의 시위자들이 격돌했을 때만큼 (미국에) 내전의 위협이 거세진 적은 없었다(13쪽)."
이번 캘리포니아주 유혈사태 책임은 상당 부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과격하고 편법적인 대량 체포에 있다. 심지어 ICE는 지난 8일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연방법 집행관인 보안관보를 일시적으로 구금했다(NBC). 불법체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일단 체포했다는 얘기다. 이번 단속이 일종의 폭력 도발 행위였을 수 있다는 의심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백악관에서 "나는 내전을 원치 않는다"며 "(하지만 상황을) 방치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군대 투입 정당성을 주장했다. 트럼프는 정말 내전을 원하지 않는 걸까. 2019년 10월 제리 브라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이번과 같은 문제로 부닥쳤던 전례를 고려하면, 쉽게 믿기 힘든 말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ICE 출신으로 "(단속 방해시) 주지사와 시장을 체포할 수 있다"고 말한 톰 호먼 국경 문제 총괄을 싸고돌았다. 트럼프는 "내가 톰이라면 그렇게(체포) 할 것이다"며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트럼프와 그 지지세력의 이런 당당함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혼재된 트럼프 정권은 자신들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 | 「내전, 대중 혐오, 법치(원더북스·2024년)」]
"모든 신자유주의자에게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떻게 '대중'으로 이해되는 인민의 권력을 제한할 것인가? 루이 루지에의 답은 명확하다. 새로운 '귀족'에게 권력을 양도해야 하며,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정치적 권력기관을 세울 수 있는 '통치의 기술'을 정립해야 한다(73쪽)." 루지에는 1930년대 프랑스에 신자유주의를 소개한 철학자다. 점차 인종 문제에 관심을 보이며 프랑스 극우세력과 연계됐다.
192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공공 지출 삭감, 공무원 대량해고, 공기업 민영화, 복지 중단, 임금 감소라는 신자유주의 수단을 이미 시험해 본 학자(오스트리아학파) 루트비히 폰 미제스도 "엘리트 독재, 이를테면 소수가 힘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모든 이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핵심은 시장의 순수한 자유를 위해서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믿음에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일까. 우리나라 보수 인사들이 즐겨 인용하는 온건파 신자유주의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말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안전의 보장이 모두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주는 데까지 확대돼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일부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려다가 나머지 사람들의 경제적 불안을 초래하고, 다른 이들의 자유를 박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45쪽)."
우리나라에도 최저임금 인하나 폐지를 주장하고,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시위에 날선 반응을 보이는 정치·경제 인사가 적지 않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미제스의 말처럼, 상대적으로 돈이 많고, 상대적으로 몸이 건강한 사람들, 즉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를 말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오래되고 거대한 현상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 정도로 이해한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신자유주의적 현상이 주로 보수진영에서 많이 관측되지만, 1990년대 이후 영국과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진영 집권층은 자유무역·세계화·민영화·탈규제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거 받아들였다. 이른바 '제3의 길'이다. 최근 재집권한 영국 노동당의 정책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9일 미국 LA 시내에서 경찰들이 시위대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군주제, 봉건제, 민주제처럼 인류 패권을 노리는 새로운 정치 체제 중 하나로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신자유주의는 이미 100년 이상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경쟁했다. 아직 완전히 권력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마가렛 대처 총리를 제외하면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체제 장악에 가장 근접한 인물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어느 시기의 '자유'를 가장 그리워하는 걸까. 향수의 기원은 가장 생산적인 엘리트 산업 체제일 것이다.
"미제스는 노예제와 자유주의 원칙이 대립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자유로운 노동이 노예 노동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화된 설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노예제도의 폭력성을 부정했다. 심지어 '일반적으로 주인들이 노예를 다루는 방식은 인간적이고, 부드러웠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177쪽)." 노예제가 생산적이라면, 기꺼이 노예제를 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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