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디스커버리’, 수년 걸릴 실험·분석을 200시간 만에
인공지능(AI)은 과학 연구 속도를 얼마나 빠르게 앞당길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5월 19일(현지 시간)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MS 빌드(Build) 2025'에서 새로운 AI 기반 과학 연구 플랫폼 'MS 디스커버리'를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AI 에이전트와 슈퍼컴퓨팅 기술을 결합해 실험 설계부터 분석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고 가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MS는 공식 발표를 통해 "MS 디스커버리는 연구자들의 과학적 지식 추론, 가설 수립, 후보물질 생성, 시뮬레이션 및 분석 전반에 걸쳐 전문 AI 에이전트가 협력하는 구조로 설계됐다"며 "이를 통해 속도, 규모, 정확성을 모두 갖춘 연구 성과를 더 빠르게 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S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데이터센터 침지 냉각에 적합한 새로운 냉각수를 단 200시간 만에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후보물질 약 36만7000개를 검토한 끝에 유망한 물질을 실제 파트너사에 전달하고, 후속 합성까지 진행했다. 기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리던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것이다.
발굴된 냉각 유체는 기존 침지 냉각 방식(기기를 전기적으로 안전한 특수 유체에 담가 열을 식히는 방식)에서 널리 사용되던 PFAS(과불화화합물)를 배제하고도 유사한 수준의 열전달 성능을 보인다. PFAS는 냉각 매체로 자주 활용되지만 환경과 인체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영구 화학물질'이다. MS의 제품 혁신 담당 수석 프로그램 매니저인 존 링크는 기조연설장에서 이 기술을 직접 시연하며 "AI를 통해 환경 부담 없이 고성능 시스템의 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MS 디스커버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 프로그래밍 지식 없이도 슈퍼컴퓨터와 복잡한 과학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자연어로 명령을 입력하면 'AI 포닥(Postdoc)'으로 불리는 AI 에이전트들이 문헌 검토, 실험 설계, 계산 시뮬레이션 등 각 단계를 자동으로 수행한다. 이 구조는 계획을 담당하는 기반 언어모델과 물리·화학·생물학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모델로 구성된다. 여기에 그래프 기반 지식 엔진이 결합돼 다양한 이론과 실험 결과의 관계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AI 구성은 MS의 대화형 AI 인터페이스인 코파일럿(Copilot)을 통해 하나의 통합된 가상 연구 환경으로 구현된다. 코파일럿은 사용자의 자연어 요청을 분석해 어떤 AI 에이전트를 활용할지 결정하고, 전체 작업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연구 플랫폼은 향후 양자컴퓨팅으로 확장돼 더욱 복잡한 과학 문제 해결에 적용될 계획이다.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산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제약사 GSK는 신약 개발을 위한 예측·테스트 플랫폼에, 에스티로더는 화장품 개발 속도 향상에 MS 디스커버리를 활용하고 있다. 또 MS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소재·생명과학 연구를 위한 ALCHEMI 및 바이오네모(BioNeMo) NIM 마이크로서비스를 MS 디스커버리 플랫폼에 통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연구 플랫폼 ‘MS 디스커버리’를 비롯해 AI 기술이 실험실에 도입되면서 과학 연구의 반복적인 과정이 자동화되고 있다. 사진은 생성형 AI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이종림 제공
AI를 활용한 과학 연구 자동화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미 1950년대부터 과학적 발견의 자동화를 향한 시도는 이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자동 통계학자'나 실험과 물질 합성이 가능한 '로봇 화학자'가 개발됐다.
최근에는 2023년 구글이 개발한 신소재 탐색용 AI 모델 구글놈(GNoME)이 수많은 신소재 후보를 탐색했지만, 외부 검토 결과 일부 한계가 드러났다. 이후 발표된 알파폴드(AlphaFold)는 단백질 구조 예측에 특화된 AI 도구로, 2억 개 넘는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백신 개발과 질병 연구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를 빠르게 제공했다. 알파폴드를 개발한 딥마인드 연구진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어 구글은 'AI 공동 과학자(Co-Scientist)' 프로젝트를 통해 논문 2500만 편을 학습한 AI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의 재활용 가능성을 제안했다.
일본 스타트업 사카나(Sakana) AI 역시 연구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AI 과학자'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 시스템은 아이디어 생성부터 실험 설계, 코드 작성, 시각화, 논문 작성, 피어 리뷰 응답에 이르기까지 연구의 전 주기를 수행한다. 연구진은 이 시스템에 대해 "박사 과정 초반 학생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최근 등장한 생성형 AI, 특히 거대언어모델(LLM)은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과정을 자동화해 연구 속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AI는 수많은 물질 반응을 분석하거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뮬레이션해 실험 기회를 넓혀준다. 또한 논문 심사 같은 후속 과정 자동화를 통해 신약 개발, 재료 과학, 기후변화 대응 등의 연구 속도도 높일 수 있다.
일각에는 화학·생물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후보물질을 제안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알고리즘의 예측 기준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이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면 과학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르겐 바요라트 독일 본대 생명과학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셀 리포트 물리 과학(Cell Reports Physical 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AI는 통계적 상관관계에 기반해 작동할 뿐, 화학이나 생물학에 대한 본질적 이해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며 "AI의 추천을 수용하기 전에 반드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타당성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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