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영화제 전환 선언한 부산영화제, 프리미어 확보 '난항' 예상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
지난 5월 개최된 2025년 78회 칸영화제에서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심플 액시던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아시아영화가 최고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아시아 영화인들이 자부심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될 수 있어 보인다. 30회를 맞는 올해부터 아시아 최고 영화를 선정하겠다며 경쟁영화제 전환을 선언했으나, 칸 수상으로 사실상 올해 최고의 아시아영화로 자리매김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이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경쟁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4월 2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냉정하게 말하면 칸영화제 경쟁 작품을 가져오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쟁영화제 전환의 첫해가 일찍부터 김빠지는 모양새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산영화제가 경쟁영화제 전환에 대한 주요 기조를 제시하고 있으나 영화인들의 시선에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적지 않게 엿보인다. 박광수 이사장은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서 30회를 맞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아시아영화 평가나 비평이 많지 않았기에 경쟁부문에 주목해서 비평을 유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시아 신인감독 발굴'에서 '아시아 최고영화 경쟁'으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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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9일 열린 부산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광수 이사장과 정한석 집행위원장 |
ⓒ 부산영화제 제공 |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로 보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갈 때는 다르다. 일부 영화인들은 "영화제의 위상은 프리미어가 결정하는데, 자칫 프리미어 확보가가 약해져 영화제의 위상만 떨어뜨릴 수 있다"며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프리미어는 영화제를 통한 첫 상영을 의미한다. 작품을 완성 후 전 세계 처음으로 상영되는 월드프리미어나, 자국 상영 이후 해외에서 첫 공개 하는 인터내셔날 프리미어, 각 대륙에서 첫 상영하는 아시아, 유러피안, 북미 등 프리미어는 영화제의 대외적 위상을 나타내고 있다.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 경쟁은 월드 프리이머가 기본이다. 갓 완성된 신작의 첫 공개 장소라는 의미 때문에 일반 개봉일이 늦춰지기도 하는데, 일례로 2월 국내 개봉한 지난 봉준호 감독 <미키 17>도 베를린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이후 개봉했다.
부산영화제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비경쟁 영화제다.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뉴커런츠 경쟁이 있지만, 최고의 영화를 결정하는 경쟁과는 다르기에 '부분 경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비경쟁 성격상 부산영화제는 초창기 한국영화 외에는 프리미어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프리미어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비례해서 영화제의 위상도 높아졌다. 2005년대 10회를 지나면서 프리미어 경쟁에서 해외의 영화제를 누르기 시작했고. 이후 신인 감독을 대상으로 한 경쟁 섹션은 월드프리미어나 인터내셔날 프리미어가 기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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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
ⓒ 성하훈 |
부산영화제 창립의 주역이기도 했던 고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생전 프리미어 경쟁에서 부산영화제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자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2008년 13회 영화제 당시 "장편이 107편이나 되는 133편의 월드, 인터내셔날 프리미어 숫자는 세계 정상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부산보다 프리미어가 많은 영화제는 토론토, 로테르담 영화제 정도로 이들 영화제는 공통적으로 비경쟁 영화제이면서도 3대 메이저 영화제의 턱 밑까지 그 위상이 올라가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었다.
이듬해인 2009년 14회 영화제 때도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홍콩영화제를 완전히 제쳤다"며 "아시아 영화제들의 경쟁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다"고 여유를 나타냈었다. 2011년 16회 당시에는 도쿄영화제 개막작의 경우 아시아 프리미어는 부산영화제가 먼저였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는 뉴커런츠 선정작들은 월드·인터내셔날 프리미어가 기본이 됐다. 한국영화 신작의 경우는 당연히 프리미어가 기본이고, 국내 다른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작품은 부산영화제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영화제 위상이 높아진 필연적인 결과였다.
부산영화제가 급성장하면서 경쟁영화제로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으나, 비경쟁 기조가 그대로 유지된 데는 방향이 맞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김동호 전 이사장은 저서와 기고 등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짧은 기간에 아시아 정상의, 세계적 영화제로 급성장한 건 무엇보다 아시아의 신인 감독을 발굴하고 그들의 영화제작을 지원한다는 일관된 목표와 이를 뒷받침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인 감독의 영화를 소개하고 시상하는 '뉴 커런츠' 부문을 운영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홍상수 감독(1회), <초록물고기>) 이창동 감독(2회), <소무> 중국 지아장커 감독(3회) 등 역량 있는 아시아 감독들의 첫 영화를 소개한 뒤 세계로 진출시키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프리미어 경쟁 이길 가능성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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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0회를 맞아 변화를 꾀한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
ⓒ 부산영화제 제공 |
하지만 올해 30회를 기점으로 한 경쟁영화제 전환은 이런 기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핵심은 아시아 최고 영화를 선정하겠다는 포부에 맞는 작품이 올 수 있느냐다. 예를 들어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중국 지아장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아시아 거장 감독들이 신작을 유럽의 칸 베를린 베니스가 아닌 부산에 출품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경쟁부문 기준은 별다른 게 없다. 월드 프리미어를 기준으로 하고 아주 예외적으로 아시안 프리미어"라고 밝혔다. 다만 물음표가 붙는 이유는 그 가능성을 약하게 보는 인식이 많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13년 간 월드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이수원 평론가(전남대 교수)는 "자칫 경쟁 작품 선정에서 프리미어 확보가 안 되면 영화제 위상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아시안 프리미어도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어 "30회를 맞아 변화는 필요하다고 보기에 방향을 바꾸는 것은 찬성하지만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어야 할 것 같다. 안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해외 영화계 동향에 밝은 한 복수의 영화관계자들은 "2월 베를린과 5월 칸영화제가 끝나면 아시아 주요 작품들이 공개되는 게 8월 말 개최되는 베니스영화제다. 여기에 아시아의 주요 작품들이 나간다. 결과적으로 부산이 칸·베를린·베니스와 프리미어 경쟁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며 "아시아 프리미어가 최선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영화제 정책모임 공동대표인 김조광수 감독은 "유럽 주요 영화제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약해지면 부산영화제 위상만 낮아지게 될 수 있다"며 경쟁영화제로 바뀌는 게 부산의 입지만 약화시킬 수도 있어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젊은 영화감독들 역시도 해외영화제와 부산을 갈 수 있을 때 어디를 선택하겠냐는 물음에 해외를 선택하겠다는 답변이 다수였다. 이들 대부분이 "부산보다 다소 위상이 약한 영화제라도 인지도 있는 해외영화제 초청이 온다면 먼저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한 유영식 감독은 "젊은 감독들의 해외영화제 우선 선호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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