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부상에 수익성 악화된 케이블TV업계
매출과 연동된 ‘콘텐츠 사용료’ 산정 기준안 이달 적용
방송채널사업자 “콘텐츠 제작·구매 비용 증가로 힘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견서 보내 중재 요청
일러스트=챗GPT 4o 이미지 생성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케이블TV)들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방송 프로그램 제작사)에 지급하던 콘텐츠 사용료를 낮출 방침이다. PP들은 즉각 반발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중재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대체재’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이동하는 ‘코드커팅’(Cord-Cutting) 현상이 가속화하자, SO와 PP간 갈등도 격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16일 유료방송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SO와 PP 사이에 불거진 ‘콘텐츠 사용료 산정’ 갈등에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유료방송 시장의 공정경쟁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콘텐츠 사용료 협상은 사업자 간 자율을 원칙으로 하되, 갈등이 발생하면 정부의 ‘공정한 조정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공정하고 투명한 대가(사용료) 산정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현재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는 갈등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디어 연구원은 “콘텐츠 사용료 산정 갈등은 5년 넘게 발생한 해묵은 문제이고, 첨예한 부분이 있어 정부가 쉽게 손을 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이 대통령이 공약에 이례적으로 ‘공정한 조정기능’을 언급한 만큼, 그간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 “30년 관행 ‘콘텐츠 사용료 지급’ 계약 전환할 때”
SO와 PP간 콘텐츠 사용료 산정 갈등은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표면에 표출되기 시작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가 ‘콘텐츠 사용료 공정 배분을 위한 산정 기준안’을 각 기업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SK브로드밴드·LG헬로비전·딜라이브·CMB·KT HCN는 물론 아름방송네트워크·서경방송 등 개별 SO 9개 기업은 이달부터 PP와 콘텐츠 사용료 계약을 새로운 산정 기준안을 근거로 맺을 방침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행정지침을 통해 KCTA가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KCTA가 2023년부터 관련 업계와 논의를 시작해 최근 마련한 이번 기준안은 SO와 PP간 계약에 법적 강제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만든 콘텐츠 사용료 기준이 없는 만큼 유일한 ‘바로미터’라 계약 협상 과정에서 마냥 무시하기도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황희만 KCTA 회장은 “30년 된 업계가 관행만으로 지켜오던 시장을 이제는 합리적 기준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KCTA는 SO 매출 규모와 콘텐츠 사용료가 연동되는 구조로 기준을 마련했다. 기본 채널 사용료와 재송신료를 합산한 금액에서 기본 채널 수신료와 홈쇼핑 송출 수수료를 나눈 값을 ‘콘텐츠 사용료 지급률’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SO 지급률이 전체 플랫폼 평균 대비 5%포인트(P) 이상 높다면, 3년간 점진적으로 평균 수준까지 인하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2023년 기준 지급률은 MSO 39.15%, 개별SO 30.46%를 기록했다. 반면 인터넷(IP)TV·위성방송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플랫폼 평균 지급률은 이 기간 27.48%으로 집계됐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마련해 케이블TV 사업자가 6월부터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와의 계약에 적용하고 있는 ‘콘텐츠 사용료 공정 배분을 위한 산정 기준안’의 연도별 대가 책정 예시./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제공
◇ 케이블TV 매출과 연계된 ‘콘텐츠 사용료’ 도입에 PP 반발
KCTA는 이런 지급률 기준이 모든 SO와 PP 사업자 사이 계약에 적용되도록 했다. 다만 콘텐츠 사용료 총액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PP 성과 평가는 채널 성격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지상파·종편·보도채널은 방통위의 ‘방송평가 점유율’을 기준으로, 중소·일반 콘텐츠 기업은 ‘PP채널 평가 점유율’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식이다.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와 한국방송채널사용사업자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이해관계자 협의 없는 일방적 강행”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특히 이들은 기준안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향후 MSO 5개 기업이 지급하는 콘텐츠 사용료가 3년간 약 1200억원 감액될 수 있어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SO 사업자들이 수신료 매출 하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금 인상, 매출 다변화 등의 근본적인 노력보다 콘텐츠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하는 대가 산정 기준을 제시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번 기준안을 마련한 KCTA 내부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KCTA 산하 PP협의회는 “PP 사업자 역시 방송광고 시장 침체와 콘텐츠 제작·구매 비용 증가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료방송 시장의 활성화를 논의할 수 있는 정부 참여 협의체를 신속히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과기정통부에 중재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지난달 제출했다.
◇ OTT에 밀린 케이블TV의 위기… “구조적 해결책 제시돼야”
SO와 PP 사이 콘텐츠 사용료 산정 갈등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유료방송 시장의 위축이 꼽힌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케이블TV(SO와 MSO 가입자 합산) 가입자는 2017년 하반기 1409만명에서 작년 하반기 1227만명으로으로 12.9% 감소했다.
MSO 실적도 하락하고 있다. LG헬로비전은 작년에 매출 1조1964억원, 영업이익 13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0.5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71.5% 감소했다. KT HCN의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3.86% 감소한 2295억원, 영업이익은 54.28% 줄어든 101억원으로 집계됐다.
SO 업계에선 OTT의 등장이 케이블TV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PP에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PP가 만든 콘텐츠를 OTT에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같은 콘텐츠를 SO뿐 아니라 IPTV·OTT에도 공급하고 있어 단일 가치가 떨어져 새로운 산정 기준이 필요했다”며 “SO는 수신료 대부분을 콘텐츠 사용료로 지급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지상파·PP사 프로그램 판매 매출은 2019년 9812억원에서 2023년 1조2623억원으로 28.7% 증가했다. 반면 케이블TV 사업자는 기본 채널 수신료 매출 대비 콘텐츠 사용료 지급 비중이 2023년 96.8%까지 늘었다.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업계에 정부가 개입해 중재가 이뤄진다면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할뿐더러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유료방송은 경직된 성격을 지니고 사양 산업인 데다 다양한 규제도 받고 있어 기형적 시장 구조가 만들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개입이 갈등의 봉합이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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