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결합에 의한 분자 궤도 에너지 준위 감소 현상(왼쪽)과 전자상자성공명(EPR) 분석에 의해 생성이 최초로 관찰된 텅스텐-하이드록사이드 화학종(오른쪽).
광주과학기술원(GIST·총장 임기철)은 서준혁 화학과 교수팀이 금속이 전자를 많이 잃은 고산화 상태에서 수소 발생 반응(HER)이 일어나는 새로운 반응 원리와 경로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고산화 상태는 금속 원자가 일반적인 산화수보다 더 높은 산화 상태를 가지는 것을 말하며, 이는 금속이 더 많은 전자를 잃은 상태를 의미한다. 고산화 상태의 금속은 강한 전자당김 성질을 나타내며, 전기화학 반응에서 독특한 반응성이나 촉매 활성을 보일 수 있다.
HER은 물이나 수소 이온(H⁺)으로부터 전자를 공급받아 수소 기체(H₂)를 생성하는 전기화학 반응으로, 수소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핵심 과정이다. HER와 같은 전기촉매 반응에서 고산화 상태는 새로운 반응 경로를 유도하거나 반응 효율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수소 발생 반응은 수소 가스를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다. 기존에는 촉매 중심에 있는 금속 전자 구조에 주로 관심이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금속 주변에 붙어 있는 분자들이 금속 성질을 바꾸고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디티올렌은 금속 이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는 리간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산화 상태의 텅스텐 화합물에서 이 분자가 수소와 결합하고 양성자 전달까지 돕는다는 사실은 실험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었다.
서 교수팀은 텅스텐(W) 금속에 디티올렌이라는 독특한 리간드 분자가 결합된 착화합물을 이용해 수소 결합이 수소 발생 반응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입증했다. 특히 촉매가 작동할 때 금속 자체뿐 아니라 금속 주변에 결합한 리간드와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 분자들이 실제 반응 효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규명했다.
서준혁 교수와 이원중 석박통합과정 학생(왼쪽부터).
연구팀은 텅스텐 착화합물 내에서 약산성 물질이 금속에 결합된 산소(W=O)와 디티올렌 분자의 황(S) 원자 두 곳에 동시에 수소 결합을 형성하며 전자와 양성자가 함께 이동해 수소 발생 반응이 원활히 일어나는 전자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단결정 X선 구조 분석으로 약산성 물질인 트라이에틸암모늄을 화합물에 첨가했을 때 금속의 산소(W=O)와 디티올렌 분자의 황(S) 원자에 동시에 수소 결합이 형성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전자상자성공명(EPR) 분석으로 수소 결합 이후 생성된 W(III)-OH 중간체를 직접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전자와 양성자가 함께 이동하는 '전자-양성자 동시 전달(PCET)' 메커니즘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촉매 성능도 입증했다. 텅스텐 착화합물은 99%에 달하는 패러데이 효율과 함께 초당 약 12만2277회의 턴오버 빈도(TOF·촉매 1분자가 단위 시간 동안 몇 번의 화학 반응을 수행하는지를 나타내는 값)를 기록해 뛰어난 수소 생산 능력을 나타냈다.
이번 연구는 고산화 상태의 금속을 이용한 수소 발생 반응의 작동 원리를 밝혀낸 것으로, 차세대 촉매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촉매가 작동할 때, 금속 자체뿐 아니라 금속 주변에 결합한 리간드와의 상호작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 분자들이 실제 반응 효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서준혁 교수는 “금속 주변에 결합된 분자가 단순히 금속을 안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자와 양성자의 이동을 실질적으로 돕는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했다”며, “인공광합성, 이산화탄소 전환, 수전해 기술 등 차세대 에너지 전환 반응의 기본 원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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