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론,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SK하이닉스·삼성 추격
‘6세대 D램’ 세계 첫 출하 이어
‘HBM4’ 12단 제품 샘플 공급
기술 격차 빠르게 좁혀가는 중
차세대 메모리 모듈서도 약진
엔비디아 첫 공급사로 선정돼
‘트럼프 美우선주의 수혜’ 분석
美생태계 공고해져 대책 시급
미국 반도체·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힘을 합치는 ‘팀 아메리카’ 전략으로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자국 기업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AI)향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들도 바짝 긴장한 채 연구·개발(R&D)과 시장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최근 6세대 ‘HBM4’ 36기가바이트(GB) 12단 제품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출하했다.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만드는 HBM은 AI 가속기에 탑재돼 AI가 더 빠르게 연산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현재까지 상용화한 최신 제품은 5세대 ‘HBM3E’다. 마이크론은 HBM4의 성능이 이전 세대 대비 60%, 전력 효율성은 20% 이상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그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주도하는 메모리 시장에서 ‘만년 3위’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공급망에 경쟁사보다 먼저 진입하고, 10나노급 6세대 공정 기반의 저전력 D램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하하는 등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움직임으로 마이크론이 수혜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5’에서 AI 가속기 ‘블랙웰’의 그래픽더블데이터레이터(GDDR)에 마이크론의 GDDR7을 적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엔비디아가 세계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고 마이크론의 제품을 밀어준 배경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마이크론 6세대‘HBM4’샘플.
‘차세대 HBM’으로 꼽히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소캠(SoCAMM·저전력 D램 기반 AI 서버 특화 메모리) 분야에서도 마이크론의 추격은 거세다. CXL은 중앙처리장치(CPU)와 시스템온칩(SoC), 그래픽처리장치(GPU), 저장장치 등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반도체 기술이다. 기술력이나 고객사 인증 속도 측면에서는 2021년 5월 업계 최초로 CXL 기반 D램 기술을 개발한 삼성전자가 선두다.
하지만 마이크론은 2023년 CXL 2.0 기반 메모리 확장 모듈을 내놓고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AMD의 플랫폼을 활용해 호환성 시험을 진행, 개방형 생태계를 내세워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 모듈인 소캠 역시 마이크론의 기술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신 저전력 D램을 쌓아 제작하는 소캠은 ‘제2 HBM’으로 불릴 정도로 주목받는 제품이다. 엔비디아도 최근 소캠 첫 공급사로 마이크론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캠은 내년에 출시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들어갈 예정이다.
업계는 마이크론이 HBM·CXL·소캠 등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이어간다면 글로벌 시장 판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동시에 SK하이닉스의 1위 자리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250억 달러(약 34조 원)를 투자해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첨단 메모리 공장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자동차·데이터센터·AI 분야에 필요한 첨단 메모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가 공고해지는 만큼, 한국도 특단의 대응책이 절실하다”며 “반도체특별법 통과 등 법·제도적 지원과 함께 경제외교 차원에서 다른 나라와도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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