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란 나탄즈 핵·군시설 대공습
네타냐후 “이란 독재정권과 싸우려는 것
이란 핵무기 보유 결코 허용해선 안돼”
친형 요나탄, 엔테베작전 유일 전사 ‘충격’
하버드 박사과정 관두고 민간 기업 취직
사업 수완 발휘하다 정·재계 인맥 확장
장기집권하며 ‘적 괴멸·국익 극대화’ 추구
팔레스타인 독립보다 하마스와 전쟁 택해
이란의 핵 제거·정권교체…정치생명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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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2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란 핵시설과 군 수뇌부에 공습을 단행헀다. [AP]
작전명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
지난 13일(현지시간) 새벽, 이란 수도 테헤란이 폭음과 연기에 휩싸였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심장부인 나탄즈에 있는 핵물질 농축시설을 비롯 핵·군시설 수십 곳에 무차별 선제 타격을 퍼부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 군부 ‘투톱(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모하마드 호세인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이 모두 숨졌고 핵 과학자 최소 9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과의 충돌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세계의 화약고’ 중동이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양측의 대규모 미사일 보복으로 전면전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그 한 가운데는 ‘최종 결정자’ 베냐민 네타냐후(76) 이스라엘 총리가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15일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에 “핵 위협 제거를 목표로 한다”면서도 이란 정권 교체 가능성 또한 열어뒀다.
그는 “우리는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했다”며 “두 가지 실존적 위협인 핵 위협과 탄도 미사일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정권 교체도 이스라엘 군사 노력의 일부냐는 질문에 “이란 정권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분명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4월 미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
이란-이스라엘 ‘앙숙’…“이란 핵폭탄 9기 가능”
”앞서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몇년간 이란은 핵폭탄 9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권이 과격한 공격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묵인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공습 계획을 사전에 알았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그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거듭 분명히 했다”며 “꾸준히 우리나라를 지지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중동의 대표적 ‘앙숙’이다. 이란이 ‘이슬람 혁명’ 이후 반(反)이스라엘 성향 단체를 조직·지원하고, 핵 보유를 노골적으로 시도하면서 양국 관계는 돌이킬수 없는 관계가 됐다. 한때는 양국 모두 친미성향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사이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것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다. 혁명 왕조는 반미, 반이스라엘 노선을 공고히 했고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 미국을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으로 여겼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을 ‘악의 축’이라 이에 맞서 “강력한 힘으로 악의 축의 모든 무기를 타격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베냐민 네타냐후(오른쪽) 이스라엘 총리가 17세 당시인 1967년 예루살렘 소재 집 앞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이스라엘 정부 공보실·게티 이미지]
아버지 따라 교수 되려던 둘째 아들, MIT 학석사
1949년 10월 21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3형제 중 둘째로 출생한 네타냐후는 아버지처럼 대학 교수가 되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 요나탄(1946년생), 동생 이도(1952년생)와 위아래로 모두 세 살 터울인 베냐민은 군복무 기간을 빼면 198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계에 데뷔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
부친 벤지온 네타냐후를 따라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67년 고교 졸업 후 이른바 제3차 중동전쟁이 터지자 형과 함께 귀국해 군에 입대했다. 1972년까지 6년여간 크고작은 작전에 투입돼 어깨에 총상을 입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1972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건축학 공부를 시작했다. 1973년엔 이른바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참전했다. 다시 1976년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그해 실시된 엔테베 작전에서 형의 전사 통지를 받고 학업을 더 이어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군복무 시절에는 형 요나탄과 같이 이스라엘군 정예부대 ‘사예레트 마트칼’에서 장교로 근무했다. 사예레트 마트칼은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 10개를 꼽을 때 항상 상위에 랭크되는 부대로, 부대원의 신체 능력은 물론 지능까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미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씰), 영국 특수공수부대(SAS), 프랑스 국가헌병대(GIGN), 독일 특수군사령부(KSK), 러시아 알파그룹, 중국 특수작전부대, 폴란드 해군특수작전단(GROM), 캐나다 특수작전부대, 한국 707특수임무단과 함께 세계 최고의 10대 특수부대로 꼽힌다. 형이 사망한 엔테베 작전 소식이 날아든 1976년, 그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입사한다.
엔테베 작전은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에 납치된 이스라엘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에 특수부대를 투입한 작전이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투입 요원 중 전사자는 단 한 명이었는데, 그 전사자가 작전을 진두지휘한 베냐민의 형 요나탄 중령이었다. 형제이자 전우인 형 요나탄의 전사 소식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베냐민의 적개심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가 됐다.
형 전사에 팔레스타인 향한 적개심 불타
베냐민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BCG에서 훗날 미국의 대통령 후보급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밋 롬니와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롬니는 훗날(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지만,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에게 낙선했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던 베냐민은 1978년 다시 귀국해 형과 자신의 이름을 딴 요나탄-네타냐후 반테러연구소라는 비정부기구를 설립, 운영했다. 1980~1982년에는 ‘림 인더스트리’의 마케팅 국장을 맡아 모셰 아렌스 등 이스라엘 정치인들과 교분을 맺게 된다.
그의 정치적 수완은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아렌스는 자신이 주미 이스라엘 대사로 부임하자 베냐민을 대사관 공관 부국장으로 뽑아 데리고 간다. 베냐민은 1984~1988년 주유엔 대사를 맡으며 두각을 나타낸다. 1988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커리어를 넓혀나갔다. 당시 이츠하크 샤미르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서 각료를 맡기도 했다.
1993년에는 리쿠드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해는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땅과 평화를 교환한다’는 원칙에 합의, 일명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역사적인 해였다. 오슬로 협정은 양측이 최초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십년간 지속된 갈등의 종식을 약속한 합의로 1993년 9월 13일 체결됐다. 이 협정에는 ‘1999년 5월까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영토를 인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양측의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1994년 2월 25일에는 이스라엘 극우층이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지구 최대 도시인 헤브론에서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사원에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수십명이 집단 학살을 당했고, 희생자 측은 다시 이스라엘에 보복을 기도하는 악순환이 일상이 됐다.
1994년 10월에는 그러한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오슬로 협정 체결을 주도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페레스 외무장관, 아라파트 의장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하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1995년 11월 4일 이 협상을 주도한 라빈 총리가 자국의 극우 청년 이갈 아미르에 의해 암살됐다. 자국 극우층이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영토를 떼어주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 자국 총리를 암살하는 도를 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이어 1996년 실시된 총선 전후로 팔레스타인이 배후로 의심되는 테러도 잇달아 발생하고 있었다. 야당 당수인 네타냐후는 극도의 시온주의자이자 팔레스타인을 향한 초강경주의자적 정체성을 확립, 강화해 가고 있었다. 이런 그의 태도는 당시 온건파로 분류되던 현직 시몬 페레스 총리를 1% 포인트 차이로 꺾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47세의 어린 나이로 총리에 당선된 베냐민은 이스라엘 정계에서 새 역사를 쓰며 전성기를 향해 질주했다. 일단 그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 영토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였고, 사상 최연소 이스라엘 총리이기도 했다. 강경주의자인 그는 집권 초기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과 대립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그와 와이리버 협정을 체결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1997년 10월 미국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와이리버에서 미국과 요르단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간에 체결된 와이리버 협정은 4년 전 체결된 오슬로 협정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그 구체적 실행방안을 담은 협정이다.
최연소·최장기 총리…‘전쟁하는 이스라엘’ 계획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 40%의 자치영역을 확보했고, 그 대신 팔레스타인 헌장에서 ‘이스라엘 파괴’ 규정을 삭제한다. 그야말로 오슬로 협정의 정신대로 ‘땅을 주고 평화를 얻은’ 셈이었다. 오슬로 협정으로 라빈 총리가 암살당했다면, 와이리버 협정 이후 응징 대상은 네타냐후가 될 차례였다.
예상대로 베냐민은 이 협정 체결로 극우파의 신임을 잃고,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는 등 불상사까지 겹쳐 1999년 총리 선거에서 노동당의 에후드 바라크에게 패배한다.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그는 아리엘 샤론 정권의 각료로 복귀해 2002년 외무장관, 2003년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다.
2009년 2월 조기 총선에서도 역시 카디마당에 1석 차이로 제1당 자리를 내줬으나, 노동당 등과 연정을 구성해 다시 총리직에 오른다. 이때부터 2021년까지 5연임했고, 2021년 물러났지만 2022년 말 다시 총리에 올라 현재까지 7선째 초장기 집권 중이다.
극우 시온주의자이자 팔레스타인 초강경주의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장기 집권을 통해 얻은 지혜는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해 팔레스타인이 절대로 독립국 지위를 국제사회로부터 승인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타냐후는 이 아이디어를 관철하고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실권을 갖지 못하도록 다양한 꼼수를 썼다. 대표적인 예로 자치정부 대신 이슬람주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실권을 장악하도록 이스라엘이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자금 지원을 비난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막으려면 하마스를 지원해야 한다”는 네타냐후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도 ‘네타냐후가 우리를 재앙으로 내몰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정부는 부담이지만 하마스는 자산’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평화롭게 방관하는 것보다는 하마스에 실권을 넘겨 연일 그들과 무장투쟁을 벌이는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국익에 부합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양측의 적대적 공생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네타냐후 총리가 그린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국경 지역을 공격해 1300여명의 생명을 빼앗고 250여명을 납치했다. 이는 같은해 4월 5일 이스라엘 극우주의자들이 유대교 축일을 기념해 이슬람 모스크를 급습해 35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감금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을 계기로 팔레스타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가자지구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5만3486명, 부상자는 11만2000여명으로 집계됐다.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계획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란도 그의 의도대로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한다는 공식 목표 아래 이란의 정권 교체를 노리고 있다. 아울러 외부의 적을 붕괴시킴으로써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림수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김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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