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등 투자금만 챙기고 빠지는 ‘먹튀 경영’ 후폭풍
해당 기업들 적자전환 잇따라…제2의 홈플러스 사태 우려
(시사저널=이석 기자)
마트 업계 2위인 홈플러스의 기습적인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 신청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이 회사를 인수한 지 불과 10년 만에 사실상 껍데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인수 회사의 자산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모펀드의 엑시트 전략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9월 홈플러스를 품에 안았다. 인수 자금만 7조2000억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이 중에서 MBK파트너스가 실제 지불한 돈은 3조원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4조3000억원은 은행권 차입으로 조달했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할 때 주로 사용하는 차입매수(LBO) 방식을 이용한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막대한 이자 비용과 투자금 회수를 위해 홈플러스의 알짜 자산을 매각했다. 부천 상동점과 부산 가야점, 서울 강서점 등 14곳의 점포와 부지를 내다 팔았다. 대부분 매출 상위권이었던 점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홈플러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실제로 MBK 인수 직전 8조9298억원이었던 이 회사 매출은 지난해 6조9315억원으로 22.2%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4842억원 흑자에서 5743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 지부 회원들이 4월14일 서울 종로구의 MBK 사무실이 있는 D타워 앞에서 '홈플러스 기업회생 MBK가 책임져라'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 자료 입수
홈플러스는 3월4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신용등급이 A3에서 투기등급 바로 윗단계인 A3-로 강등된 지 4일 만이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는 지난 4월말과 5월 중순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와 대주주인 MBK파트너스 서울사무소, 김병주 회장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매각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현재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대규모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국세청도 현재 MBK파트너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MBK파트너스 측은 "2015년과 2020년에도 세무조사를 받았다"면서 "이번 세무조사 역시 5년마다 진행하는 정기조사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의 시각은 달랐다. MBK파트너스는 2020년 세무조사 때도 1000억원 규모의 역외탈세 혐의가 드러나면서 400억원을 추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세무조사의 주체 역시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기 때문에 뒷말이 나오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홈플러스 외에도 사모펀드 인수 후 실적이 곤두박질한 기업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약정액 기준으로 국내 5대 사모펀드(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트, IMM프라이빗에쿼티, IMM인베스트먼트)가 한때 최대주주였거나 현재 주인인 국내 기업은 58곳이다. 홈플러스를 포함해 쌍용C&E(옛 쌍용양회), 한온시스템, 남양유업, 코웨이(옛 웅진코웨이), DN솔루션즈(옛 두산공작기계), 골프존카운티, 롯데카드, 신한생명(옛 오렌지라이프), 동원시스템즈(옛 테크팩솔루션즈), 한샘, 하나투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업이 즐비하다.
이들 회사 중에서 18곳이 매각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40곳이 사모펀드 소유다. 이들 기업의 매출을 더하면 37조6920억원으로 사모펀드 인수 전(30조1786억원)보다 24.9% 증가했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1조7608억원에서 2086억원으로 88.2%나 감소했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후 외형은 커졌지만 실속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재계에서 제2, 제3의 홈플러스가 나올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사모펀드 시장, 외형만큼 질적 성장 안 돼
실제로 조사 대상 40개 기업 중에서 매출이 상승한 기업은 25곳이다. 매출이 하락한 기업(15곳)보다 많다. 하지만 순익이 상승한 기업은 19곳으로 하락한 기업(21곳)보다 적었다. 오히려 사모펀드 인수 후 적자로 전환됐거나 적자가 확대된 기업이 전체의 20%인 8곳에 이르고 있다. 순이익 감소율이 90% 이상으로 사실상 적자 기업인 6곳을 포함할 경우 실적 악화 사례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국내 1위 가구·인테리어 업체인 한샘이 대표적이다. 한샘은 2021년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에 인수된 후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모두 급감했다. 인수 이듬해인 2022년에는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모두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주가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사모펀드 인수 전 10만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4만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2021년 말 2조원대였던 시가총액도 현재는 9000억원대에 머물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업황 악화가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샘의 주력인 인테리어 공사와 가구 판매가 동시에 줄면서 영업이익률은 3년 연속 1%대 밑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IMM PE는 고배당 정책을 이어왔다. 실적 악화에도 매년 10% 이상의 배당률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한샘이 주주에게 배당한 돈은 23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사옥까지 팔았다. 1조5000억원의 인수 자금 가운데 1조1500억원을 차입금으로 충당하면서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한샘 역시 사모펀드의 무리한 인수와 서툰 경영의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에이치라인해운·루트로닉(한앤컴퍼니), 드림라인·GS ITM·에코매니지먼트코리아·이피에스솔루션(IMM인베스트먼트) 등의 순이익이 사모펀드 인수 후 90% 이상 하락했다. 코아비스(한앤컴퍼니), 네파(MBK파트너스), 쿠프마케팅(스틱인베스트먼트), 펫프렌즈(IMM PE), 팜에이트·드림마크원(IMM인베스트먼트) 등은 사모펀드 인수 이후 적자로 전환됐거나 적자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역시 사모펀드의 현재 경영 방식에 대해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곪은 게 터졌던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 이후 관련 토론회도 잇따르고 있다.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체질을 개선한 후 되파는 게 사모펀드의 본질이다. 하지만 일부는 현금이나 유형 자산이 풍부한 기업을 인수한 뒤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이른바 '먹튀성' 엑시트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으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136조40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03년 관련 제도를 도입한 지 20여 년 만이었다. 하지만 커진 외형과 달리 질적 성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용린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PEF)가 투자한 135건을 조사한 결과, 매출은 증가했지만 이익률 감소로 기업 가치는 9.5%나 감소했다"면서 "해외와 비교할 때 국내 사모펀드가 과도하게 성장성에 의존하면서 수익성 개선은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엑시트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카드는 2019년 MBK파트너스에 매각된 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영 효율성을 끌어올린다는 명분하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영업점 통폐합을 진행해 왔다. 덕분에 실적은 개선됐지만 좀처럼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22년 매각을 시도했지만 잠재적 인수 후보로 꼽혔던 기업들과의 의견 차이로 무산됐다.
국내 모바일 쿠폰 시장의 독보적인 1위 사업자인 쿠프마케팅의 경우 지난해 적자로 전환됐다. 쿠프마케팅은 2017년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됐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토스 등 제휴 브랜드의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을 발급·유통하는 게 주력이다. 2017년 스틱인베스트먼트 인수 후부터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이 처음으로 역성장하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티몬·위메프(티메프) 미정산 사태의 영향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엑시트를 노리던 스틱인베스트먼트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5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사모펀드 규제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규제 일변도 조치, 약보다는 독"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롯데카드나 쿠프마케팅처럼 사모펀드에 인수됐다가 엑시트에 실패한 기업이 적지 않다. 통상적으로 엑시트 시기는 3년 전후다. 자산 매각이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인 후 되파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이전에 사모펀드에 인수됐다가 아직까지 매각하지 못하는 기업도 전체의 60%인 24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규제 일변도의 조치는 오히려 약보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태원 법무법인 해광 변호사는 "빚을 내서 M&A를 하는 LBO 방식은 기업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과도한 부채 부담과 단기 이익 추구로 인해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면서 "회사를 소유한 사모펀드뿐 아니라 주주, 채권자, 종업원,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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