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장악=산업 주도권’ 노리는 빅테크
"세금은 내기 싫고 데이터만 원하는 것"
로이터연합 제공
구글에 이어 애플까지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에 나서며 빅테크들의 국내 지도 데이터 확보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고정밀 지도를 확보하면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모빌리티, 공간정보 등 미래 산업을 좌우할 핵심 데이터까지 손에 쥘 수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빅테크가 고정밀 지도까지 확보하면 국내 기술 생태계가 외국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지도 확보 나선 구글·애플= 16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국내 대형 로펌에 고정밀 지도 반출과 관련한 자문을 의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지난해에도 국토지리정보원에 1대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신청했지만 불허 통보를 받은 바 있다.
구글 역시 이미 국내 고정밀 지도 반출을 추진 중이다. 구글은 지난 2월 국토지리정보원에 1대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신청한 상태다. 구글의 국내 지도 반출 요청은 2011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길찾기나 내비게이션 등에 활용되는 1대2만5000 축척 지도는 이미 해외 기업에 제공되고 있다.구글과 애플이 요구하는 고정밀 지도는 1대5000 축척 데이터다. 50m 거리가 지도상 1㎝로 표시될 만큼 세밀해 골목길이나 건물 단위까지 상세한 파악이 가능하다. 보안시설 등 민감한 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1대5000 지도는 국토부 심사를 거쳐야만 반출된다.
최근 미국 빅테크들이 잇따라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은 정밀 지도가 단순한 길찾기 기능을 넘어 첨단 산업의 핵심 데이터로 꼽히기 때문이다. 고정밀 지도에는 도로, 건물, 산과 강 같은 지형 정보가 담기며 자율주행·스마트시티·디지털트윈 등 차세대 산업 구현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된다. 특히 자율주행 과정에서 수집되는 다양한 위치·환경 정보는 인공지능(AI) 학습에도 쓰이며 빅테크의 미래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자산이 된다.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 편의 증진 등을 내세워 고정밀 지도 확보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또 고정밀 지도에는 단순한 도로·건물 위치 외에도 상점명, 입주업체, 업종, 영업시간 등 세부 정보까지 포함된다. 이 데이터를 확보하면 빅테크는 국내에서 위치 기반 광고, 쇼핑, 관광, 물류, 배송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길찾기 목적에는 2만5000 축척으로도 충분하다"며 "이들이 노리는 건 자율주행·산업용 로봇·AR·VR 등 차세대 사업 확장을 위한 관심정보(POI) 데이터 확보"라고 말했다.
◇"데이터는 얻고 법인세는 피하려는 전략"= 국내에서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기술 생태계가 외국 플랫폼에 종속될 가능성 때문이다. 빅테크가 국내 지도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시장에 진입하면 기업들은 이들의 지도 플랫폼 위에 사업을 얹을 수밖에 없다. 한 번 종속되면 이후 구글 지도 API 이용료 인상 등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실제 구글은 2018년 지도 API 이용료를 14배가량 올린 전례가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API 가격이 올라가면 그 영향을 받는 산업이 너무 많다"며 "지금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지도도 있지만, 고정밀 지도에서 구글이 주도권을 쥐면 소상공인이나 스타트업, 정부기관 모두 지도 서비스를 운영할 때 구글 API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가격이 국내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고 우려했다.
빅테크들이 국내 고정밀 지도 정보를 얻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구글이 국내에 서버를 두면 고정밀 지도 제공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도 네이버·카카오처럼 국내에 서버를 둔 업체에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애초에 구글과 애플이 한국에 서버를 설치하면 해외 반출 없이 국내 정밀 지도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국내에 서버 설치를 피하는 이유는 세금 문제와 직결된다. 구글은 이미 검색 엔진과 유튜브 등을 통해 한국에서 매년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면서도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서버를 국내에 두면 사업장이 생긴 것으로 간주돼 법인세 부담이 커진다"며 "법인세는 내고 싶지 않으면서 데이터는 확보하려는 게 이들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구글·애플이 실질적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도 고정밀 지도 확보에는 적극 나선다고 지적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구글과 애플 모두 모빌리티, AI, 자율주행 산업 확장을 위해 고정밀 지도 확보가 필수인 상황"이라며 "빅테크들이 그동안 국내 사회적 책임이나 기여에는 소극적이면서도 우리 세금으로 구축한 국가 데이터를 가져가려 하고 있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꼬집었다.유진아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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