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2025 대한민국 '자영업' 보고서(上)
[편집자주]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가 얼어붙은지 오래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3중고까지 맞물리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폐업률이 급증하고 있다. 영업난으로 가게 문을 닫는 이들에게 남는 건 빚 뿐이다. 줄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이재명 정부에 생존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 자영업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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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IMF보다 힘들어" 여기저기 임대 딱지…폐업자 100만명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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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11일 서울 시내의 한 폐업 식당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경기가 악화되고 소비가 줄면서 내수와 밀접한 업종인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6만 7000명 줄며 15개월 만에 감소로 전환했다. 감소폭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1년 11월(-8만 6000명) 이후 최대폭으로 줄었다. 2025.06.11./사진=김근수
최악의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늘고 있다. 커피와 제과 등 주요 업종에서만 최근 1년간 점포 8600개가 줄었고, 지난해 폐업을 신청한 개인·법인 등 모든 업종의 사업자는 사상 처음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16일 머니투데이가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을 전수조사한 결과 올해 4월 기준 간이주점·기타외국식·기타음식·분식·일식·제과·중식·커피음료·패스트푸드·한식·호프주점 등 전국 11대 외식업종의 매장수는 75만9916개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점포수(76만8492개)와 비교하면 1년만에 8576개 감소한 것이다.
신규 창업보다 폐업한 점포가 그만큼 더 많았단 얘기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년 동안 하루 평균 23곳의 식당이 문을 닫은 셈이다. 지난해 12월 기준(76만3057개)으로 보면 그간 3141개의 점포가 없어졌다.
업종별로 보면 일식점·제과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9개 외식업종이 모두 전년 동기 대비 매장 수가 줄었다. 특히 호프주점 매장 수는 전년 동기 대비 7.8% 줄어든 2만2089개로 감소폭이 가장 컸다.
외식업종 중 한식점 다음으로 전국 매장 수가 많은 커피음료점(9만5250개)의 경우 1년간 1050개가 사라졌다. 커피음료점은 개인 카페 창업붐, 저가커피 브랜드 확산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7년 이후 매년 매장 수가 늘었지만 올해 처음 감소했다. 1분기 기준 2017년 3만8944개, 2018년 4만5574개, 2019년 5만3806개, 2020년 6만3537개, 2021년 7만3950개, 2022년 8만6805개, 2023년 9만4423개, 2024년 9만6117개 등으로 매년 증가해왔다. 하지만 올 1분기(9만5274개)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전국 커피음료점 매장 수 추이/그래픽=최헌정
이외에도 기타음식점과 분식점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4%, 4.7% 줄어들었다. 치킨·피자·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점도 4만7667개로 매장 413개가 폐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세청이 빠르면 이달말 발표할 예정인 '국세통계연보 사업자현황'에서 지난해(2024년) 폐업한 전체 사업자 수가 역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직전연도인 2023년 폐업 신고한 개인과 법인 사업자는 모두 98만6487명으로, 200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많았다. 폐업을 신청한 사업자는 대부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다.
이와 관련해 올 1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1112조원으로 2019년말 738조원에서 50%넘게 증가했다. 빚이 있는 자영업자 수는 335만명으로 전체 자영업자(570만명) 3명 중 2명이 대출을 받은 셈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개인사업자의 지난해 은행 연체율도 0.71%로 전년보다 0.17%포인트(P) 상승했다. 고금리·고물가 상황 속에서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여력이 크게 악화했단 의미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내수침체로 장사가 힘들어지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며 "가게 문을 닫는 폐업 사업자가 100만명이 넘는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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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은 공실, 먼지 쌓인 커피머신…"국가적 재난" 사장님들 절망[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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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신촌역 왼편에 바로 보이는 공실./사진=유예림 기자
"코로나19 유행할 땐 배달이라도 많이 시켜 먹었지만...지금은 주문 자체가 없어 곧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음식점 사장)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신촌역을 나와 연세대학교 방향으로 10분간 걸으며 마주친 텅 빈 점포(공실)는 19곳. '젊음의 거리'로 활기가 넘쳤던 신촌 상권은 적막감이 흘렀다. 신촌역 바로 앞 이른바 '역세권' 건물엔 공실 3곳이 연이어 있고, 4층짜리 건물의 매장이 모두 빈 곳도 눈에 띄었다. 청춘과 낭만의 상징과도 같았던 신촌(新村)은 이미 구촌(舊村)이 됐다.
주변 상인들은 새로운 매장이 들어오지 않는 탓에 공실로 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비어있는 점포의 문 앞에 '매매'라고 적힌 현수막은 노랗게 색이 바랬다. 떨어진 전단지 테이프 흔적 등은 오랜 시간이 흘렀단 사실을 방증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 있는 공실. 4층짜리 건물 전체가 비어 있다./사진=유예림 기자
신촌역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정모씨는 "10년 전만 해도 공실이 나오기 무섭게 새 계약이 이뤄졌는데 요즘은 순환이 안 된다"며 "신촌역이랑 가까운데도 1년 넘게 공실인 곳도 여러 개 있고 임대 문의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상권이 위축되자 폐업을 고민하는 상인들도 많아졌다. 신촌에서 4년째 18평짜리 개인 카페를 운영해온 안모씨는 폐업을 준비 중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는 "코로나도 이겨냈는데 불황은 못 피했다"며 "하루라도 빨리 폐업해야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 권리금 6000만원을 더 낮추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0년째 디저트 카페를 운영해온 박모씨도 신촌 상권은 이미 죽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예전엔 대학생 방학 기간이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오는 손님이 많아서 타격이 없었는데 요즘은 방학에 손님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매출은 하루 평균 100만원 이상 꾸준하게 나왔지만, 지난해부터 25% 넘게 급감하면서 아르바이트생 1명을 줄였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박모씨의 근무 시간은 더 늘어났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 일대. 매장 앞, 길거리, 창고에 중고 주방기기가 가득하다./사진=유예림 기자
다음날(12일)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는 '자영업자 폐업'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중고 주방기기가 계속 들어오고 있지만 잘 팔리지 않고 있어서다. 매장 안뿐만 아니라 골목과 대로변 여기저기에 식기세척기와 전기 그릴, 살균 소독기 같은 기기부터 앞치마·그릇 등 식자재 기구들이 널려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매장용 나무 의자 30여개는 뒤엉킨 채 3~4겹씩 쌓여 있었다. 특히 주방거리 일대 매장 10여곳에선 사장이나 직원들만 보였고 구매를 문의하거나 제품을 보러온 손님은 1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20년 넘게 주방거리를 지켜온 정모씨는 커피머신 위에 있는 먼지를 작은 솔로 털며 "커피머신·제빙기 등 카페 제품은 사용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제품들도 많다"며 "견적을 보러 오는 손님 자체가 없어 들어온 지 1년 넘은 중고 제품도 많다"고 설명했다.
인근 창고엔 팔리지 않은 물건들이 넘쳐났다. 김모씨는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어 곧 문을 닫으려고 한다"고 털어놓은 뒤 "창고 유지 비용은 계속 들어가는데 올해는 프랜차이즈든 개인 매장이든 계약이 별로 없어 더 힘들다"며 "월급 주기 힘들어 직원 1명도 나갔다"고 하소연했다.
가격을 낮춘 업체도 속속 나왔다. 한 점원은 "중고 의자를 빨리 처분하려고 새거나 다름없는데도 가격을 1만원대까지 낮췄다"면서 "그런데도 반년 넘게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 일대. 매장 앞, 길거리, 창고에 중고 주방기기가 가득하다./사진=유예림 기자
비교적 장사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대표 오피스 밀집지역인 광화문과 을지로 등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임대 푯말이 붙어 있는 공실들도 눈에 띄게 늘었고,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저녁엔 문을 일찍 닫는 등 불황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인근 한 식당 주인은 "손님이 줄면서 테이블이 차지 않아 인건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라며 "저녁엔 회식하러 오는 단체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엔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통계청의 숙박 및 음식점업 생산지수 자료를 보면 2023년 2월 이후 22개월째 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는 마이너스다. 2000년 지수 집계 이후 역대 최장의 부진 기록이다. 소매판매액지수도 21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업종별 폐업사업자 수/그래픽=최헌정
이처럼 경기 부진과 고금리 장기화, 누적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높은 인건비 등 영향이 지속되면서 사업자들은 경영난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속 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2013년 대비 2023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97.9% 뛰었고, 물가상승률도 같은 기간 20% 상승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폐업한 개인사업자가 100만명이라고 가정하면, 소상공인 창업자금이 평균 1억원 투입됐을 경우 연간 100조원의 사회적 비용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라며 "지금 불황은 매년 천문학적인 돈이 매몰되는 국가적 재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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