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성체세포 역분화한 줄기세포 주입
21일 동안 생존…심장 박동 확인
‘이종 장기이식’ 대안기술로 주목
중국 연구진이 돼지 배아에서 인간 심장이 자라 박동까지 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픽사베이
과학자들은 만성적인 이식용 장기 부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돼지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하는 ‘이종 장기이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동물 중에서 돼지를 선택한 이유는 돼지 장기의 크기와 해부학적 구조, 생리적 특성이 인간 장기와 매우 비슷한 데다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장, 신장, 간 등 다양한 장기에 대한 이식 연구와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초 제약업체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UT)가 신청한 돼지 신장이식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 신장이 사람 몸 안에서 4개월간 정상 기능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종 장기이식의 또다른 방법은 동물 몸에서 인간 장기를 배양한 뒤 사람한테 이식하는 ‘키메라’ 기술이다.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으로 이뤄진 그리스신화 속의 괴물 키메라에 비유해 붙인 이름이다. 이 방법은 사람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라서 면역 거부 반응 문제를 해소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임상시험 단계에 돌입한 돼지 장기 이식에 비해 기술 개발 초기 단계에 있다.
중국 광저우 생물의학건강연구소 연구진이 돼지 배아에서 인간 심장이 자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홍콩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학회(ISCR)에서 발표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돼지 배아 속에서 인간 심장은 21일 동안 생존했고, 그 시점에서 심장도 박동을 시작했다.
키메라 기술의 핵심은 사람 장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자 중 일부를 제거한 동물 배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사람 줄기세포를 동물 배아에 주입한다. 그러면 동물 몸에서 사람 장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여러 연구진이 이 방법으로 돼지 배아에서 사람 근육 세포와 혈관 세포를 배양한 바 있다. 이 연구진도 2023년 돼지 배아에서 초기 단계의 사람 신장을 배양한 적이 있다.
중국 과학자들은 2023년 돼지 배아에서 사람 신장 세포가 자라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Cell Stem Cell(2023)
심장 전체가 사람 세포인지는 몰라
연구진은 우선 사람의 성체 세포를 역분화시켜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만들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란 각기 신체 특성에 맞게 분화된 세포를, 다시 모든 유형의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린 것을 말한다. 연구진은 이 줄기세포가 돼지 몸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세포 사멸을 예방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를 추가했다.
연구진은 이어 12개 세포로 이뤄진 상실배(뽕나무열매 모양의 배아) 단계의 돼지 배아에서 심장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2개를 제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했다. 그런 다음 배아를 대리모 돼지의 자궁에 이식했다.
돼지 배아는 21일 동안 자라다가 죽었다. 연구를 이끈 라이랑쉐 박사는 네이처에 “인간 세포가 돼지 심장의 기능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배아가 자라는 동안 심장을 지켜본 결과 해당 발달 단계의 사람 심장과 같은 크기, 즉 손가락 끝 만한 크기로 커져 박동하고 있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람 세포엔 형광 표지물질 부착돼 있어 식별이 가능했다.
연구진은 심장 세포 중 어느 정도가 사람 세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돼지 배아에서 신장을 자라게 한 실험에선 신장의 40~60%가 사람 세포였고, 나머지는 돼지 세포였다.
키메라의 장기를 면역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이식용 장기로 쓸 수 있으려면 100% 인간 세포로 이뤄져 있어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줄기세포 생물학자 나카우치 히로미츠 교수(줄기세포생물학)는 학회에 참석해 “키메라의 일반적인 문제점은 인간 세포주가 다른 종의 세포로 오염되는 것”이라며 “심장 세포가 확실히 인간 세포인지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를 더 자세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이식을 위한 키메라 기술은 환자 자신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면역 거부 반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아직 기술적으론 갈 길이 멀다. 동물 몸에서 자란 장기이므로, 동물 유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동물의 몸을 인간 장기 배양을 위한 ‘생체 공장’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