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전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 본원에서 만난 조영훈 기계연 산업기계DX연구실 박사후연구원. 이채린 기자
<편집자 주>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은 과학자로 발돋움 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평생 가져갈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출산과 육아를 하는 과학자에게는 가장 가혹한 시기입니다. 밤낮없이 육아와 연구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육아지원에서 배제된다는 점입니다. 법적인 휴직 기간, 보육시설 이용 가산점뿐 아니라 육아휴직비를 지원받지 못합니다. 생계의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현장에서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육아하는 아빠 과학자'를 연재한 동아사이언스는 올해에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함께 연구현장에서 연구와 육아를 함께하는 청년 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이 겪는 현실 육아, 필요한 육아지원 제도, 연구의 어려움 등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들여다 봅니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육아'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기계연에서는 비정규직인 박사후연구원도 출연연 직원과 똑같이 사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고 휴가를 쓸 수 있습니다. 유연근무제도 쓸 수 있어서 육아를 하면서 급한 일이 있을 때 크게 도움 받았어요. 누군가에게 당연할 수 있는 제도가 다소 낯선 박사후연구원에게는 연구와 육아를 이어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됐습니다."
대전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 본원에서 만난 조영훈 기계연 산업기계DX연구실 박사후연구원은 육아와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KAIST 토목 및 환경공학과를 졸업한 조 연구원은 지난해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사후연구원 1년차이면서 4년차 아빠다. 같은 학교 연구자를 만나 2020년 석사 과정 중 결혼해서 박사과정생이던 2022년 1월 아이를 낳았다.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에게 조 연구원 사례와 같은 '이른' 결혼과 출산은 흔하지 않다. 조 연구원은 "친구들은 대부분 불확실성을 안은 채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보통 대학원생은 박사 학위를 따거나 직업을 갖는 등 불확실성이 조금씩 사라질 때마다 결혼한다"며 "불확실성은 어느 시기에나 존재할 것 같아서 학업을 이어가면서도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 가정을 빨리 이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혼과 육아를 일찍 꿈꿀 수 있었던 데에는 조 연구원 부부의 각 지도교수 성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은 근로자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휴가, 단축근무, 재택근무 등 받을 수 있는 근로 혜택이 지도교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 연구원 부부의 각 지도교수는 지도학생의 결혼과 육아를 권장하는 편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육아가 어려웠던 만큼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아이가 밤낮 없이 깨고 기저귀를 수시로 갈면서 육아에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면서 빨리 졸업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조 연구원은 "박사과정 졸업 후에 저와 아내의 직장에 따라 아이의 어린이집을 자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는 안정적인 직장을 빨리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직장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 연구원은 졸업 직후 기계연에 자리를 잡았다. 기계연에서 2024년부터 자율주행 로봇용으로 실시간 라이더 기반의 위치추정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계약직이라 2026년까지 근무예정이다. 다행히 기계연은 박사후연구원에게 정규직 직원과 똑같은 근로 제도를 적용하고 육아 혜택을 지원한다. 사내 어린이집 지원 혜택은 물론 육아를 위한 단축근무, 유연근무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조 연구원은 "육아는 예측할 수 없어 갑자기 시간을 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석박사과정생, 박사후연구원은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없어 육아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기계연에서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상관 없이 육아를 위해 급히 근무시간을 조절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최근에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회사에 2시간 휴가를 쓴 다음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병원을 간 뒤, 일찍 퇴근한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시 회사를 출근해 나머지 근무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조 연구원은 연구자들이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때 자녀를 못 낳는 이유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조 연구원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박사 과정 지도교수와 기계연의 육아에 대한 배려와 제도가 가정친화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컴퓨터를 주로 이용하는 연구라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과제 수급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조 연구원은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은 저와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과제 수급이 어려워 대학에서 연구비를 거의 받지 못하거나 직장 분위기가 가정친화적이지 않아 휴가 하루를 쓰기조차 어렵다면 육아와 출산을 꿈꾸기 당연히 어렵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 부부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와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창 연구를 하는 청년 연구자도 육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비슷한 꿈을 꾸는 연구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여행을 많이 가는 등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편이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고 대부분 연구자들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주변에 저희 부부를 보며 육아를 생각한다는 연구자들이 많아져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들이 우리 부부를 보며 '역시 육아와 연구는 병행하기 힘들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매일 아이를 재운 뒤 컴퓨터를 켜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 이채린 기자
다음은 조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Q.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인가.
"크게 두가지다. 굴착기가 자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무인 배달 로봇이 원활하게 작동을 하는 데 필요한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실험 스케줄을 크게 얽매이는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주변에 육아를 하고 있는 연구자가 얼마나 되나.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지금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의견을 구할 곳이 없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아이의 영유아 시기를 겪으며 연구를 어떻게든 계속 해나가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아내와 나 모두 이 시기에 연구 경력을 대표할 수 있는 논문이 나왔다. 육아가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
Q. 앞으로 목표는.
"좋은 연구를 계속 진행하는 동시에 육아와 연구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정규직 직업을 갖는 것이다. 아이가 한 해 한 해 클수록 육아를 일찍 시작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을 이뤄가며 느끼는 행복이 크고 다른 연구자들도 이런 행복을 당연히 느낄 수 있도록 정부나 대학 등에서 많은 도움을 주면 좋겠다."
[대전=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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