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대1인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요청
정부, 국가안보 문제로 불허했던 데이터
美와의 통상문제까지 맞물려 셈법 복잡
허가땐 플랫폼 생태계 대대적인 지각변동
구글, 애플 등 빅테크들의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들 기업이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한 공룡 ‘빅테크’들이 국내 초민감 지도 데이터까지 손에 넣을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사진은 구글과 애플의 로고 [로이터]
빅테크들의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구글에 이어 애플까지 가세해 데이터 요구 압박 강도를 더하고 있다. 그동안 ‘국가 안보’를 이유로 데이터 반출을 불허해 왔던 정부는 미국과의 통상 문제까지 맞물려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한 ‘공룡 빅테크’들이 국내 초민감 지도 데이터까지 손에 넣을 경우 파장은 일파만파다. 구글, 애플을 비롯해 중국 등 해외 플랫폼 빅테크의 반출 요구가 줄을 이을 수 있어 국내 플랫폼 생태계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1대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구글 이어 애플도 요구 가세=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정부에 축척 5000대1인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앞서 애플은 정부 측에 해당 내용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플의 이 같은 행보는 애플 기기 위치를 추적·관리하는 기능 ‘나의 찾기’, 애플 카플레이에 내장된 차량용 내비게이션 등의 기능을 고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애플은 2023년에도 한 차례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국토지리정보원은 이를 불허했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들의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요구 압박은 해를 거듭할수록 거세지고 있다.
구글은 지난 2월 국토지리정보원에 1대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신청한 상태다. 구글의 국내 지도 반출 요청은 2011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미 해외 기업에도 제공되고 있는 1대2만5000 축척 지도와 달리 1대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는 50m 거리가 지도상 1㎝로 표시된다. 골목길까지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국가 보안 시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도 이런 이유다. 현행법상 1대2만5000 축척보다 세밀한 지도는 국토교통부 장관 허가 없이 국외 반출할 수 없다.
구글의 2011년과 2016년 데이터 반출 요구 당시에도 정부는 안보상의 이유로 이를 불허했다. 구글은 민감한 보안시설을 ‘블러 처리’ 하는 대신 좌푯값 제공을 요구하는 조건을 달았다.
빅테크들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길 찾기 기능을 넘어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첨단 산업의 핵심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세한 지형 정보 등을 활용해 자율주행·스마트시티·디지털트윈 등의 기술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심 깊어진 정부…8월 11일 결론 ‘촉각’=구글에 이어 애플까지 고밀도 지도 데이터 요구를 압박하면서 새 정부의 고심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정부는 현재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해 검토 중이며 오는 8월 11일까지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반출 여부는 국토교통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통일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하는 ‘지도 국외 반출 협의체’에서 결정한다.
그동안 ‘불허’ 입장을 고수해 왔던 정부의 상황이 더욱 난처해진 것은 미국과 통상문제가 얽힌 탓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을 꼽으면서, 우리 정부에 이를 포함한 비관세장벽 관련 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 데이터 반출 이슈가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협상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불허’ 입장을 강하게 고집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구글의 반출 요청 결론에 따라 국내 플랫폼 생태계에 미치는 파장도 어마어마하다. 구글에 데이터 반출을 허용할 경우 애플에도 이를 불허할 명분이 없다. 더 나아가 미국뿐 아니라 중국 등의 빅테크 기업들에서도 데이터 반출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 번 데이터 반출이 허용될 경우 이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이라며 “지도 등의 플랫폼 생태계가 완전히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정 기자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