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택과 집중' 전략
빅테크 오픈소스는 독이 든 성배
민관 역량 모아 대표모델 만들고
다양한 기업들이 특화 AI 도전
데이터 활용 규제 개선도 시급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거대언어모델(LLM), 즉 파운데이션 모델은 멸치·야채 육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식당이 다 육수를 끓일 이유는 없고, 각 식당이 좋은 육수를 사용해 특색 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정우 신임 AI미래기획수석이 평소에 주변에 밝힌 'AI 모델'에 대한 생각, 이른바 '육수론'이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LLM 모델 만들기에 열중하며 앞서나가는 상황에 국내 AI 생태계가 오픈소스를 바탕으로 어떻게 형성되야 할 지에 대한 그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민관의 역량을 끌어 모아 잘 만든 '육수'인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유하고, '소버린 AI'를 활용한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의 '버티컬(특화) AI'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 오픈소스 모델은 기회이자 독
17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거대한 자본을 앞세워 개발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국내 AI 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강력한 오픈소스 모델의 등장은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인 동시에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AI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국내 소규모 기업들은 막대한 초기 투자 없이도 고성능 AI를 즉시 활용해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다만 오픈소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장기적으로 우리 기술의 근간을 허무는 기술 종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핵심 원천기술 없이 남의 기술을 가져다 쓰는 데 익숙해지면, 결국 글로벌 빅테크의 생태계에 예속돼 부가가치가 낮은 서비스 개발에만 머물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확보를 통해 AI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파운데이션 모델은 반도체, 자동차처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전략자산"이라며 "남이 만든 오픈소스에만 의존하다가는 핵심 기술 경쟁에서 뒤처져 결국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체 모델이 있어야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데이터 주권을 지키며,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리스크에도 대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하이퍼클로바X'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든 네이버가 강조해 온 '소버린 AI' 개념과도 유사하다. 민관이 협력해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면 빅테크가 만든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
■버티컬AI 생태계도 키워야
전문가들은 국내 AI 생태계 진흥을 위해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기업들에게 고성능그래픽처리장치(GPU)를 몰아주고, 다른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버티컬 AI'를 만들도록 장려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도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AI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파운데이션 모델도 만들어 내야 하지만 오픈소스를 유연하게 이용해 실제 산업에 도입하는 버티컬 AI(특화 AI) 기업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각 분야별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국가가 인프라와 환경을 조기에 조성한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산학계 연구를 지원과 더불어 교육·국방·의료 등 각 분야에서 탁월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데이터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버티컬 AI 성공의 예로는 영상 이해 AI 기업 '트웰브랩스'를 들 수 있다. 트웰브랩스는 다른 AI 기업 보다 한 발 빠르게 영상 이해라는 특정 분야에 집중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플랫폼 베드록에 핵심 파트너로 입성하며 글로벌 빅테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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