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한은 빅테크 대신 국내 기업 맞손
핵심 기술과 산업 보호 위한 전략 AI 필수
AI 주권 중요하지만, 가용 자원은 한정적
한국형 소버린AI 구체화해 선택과 집중을

편집자주 
'소버린 AI'를 강조해온 민간 전문가가 새 정부의 AI미래기획수석에 낙점되면서 AI 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AI 주권 확보는 물론, 치열한 미래기술 경쟁에서 선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시급히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본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AI미래기획수석으로 임명된 하정우 전 네이버 퓨처AI 센터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4한국포럼' 에서 '하이퍼클로바X의 혁신'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하이퍼클로바X는 네이버클라우드가 한국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한 생성형 AI다. 하 수석은 하이퍼클로바X와 같은 한국형 AI모델을 바탕으로 독자적인'소버린AI'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해 왔다. 최주연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12월부터 네이버클라우드의 초거대 인공지능(AI)인 ‘뉴로클라우드 포 하이퍼클로바X’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생성형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한수원이 40여 년간 축적한 원자력발전소 운전 경험 데이터를 학습시켜 특화형 AI를 만들고, 내부 데이터센터 기반으로 가동해 보안성을 높인 것이다. 이미 문서 요약이나 해석과 같은 범용 AI 기반의 1차 서비스 개발이 완료됐고, 업무 데이터 학습이나 미세 조정을 마친 2차 서비스는 다음 달 말 개시할 예정이다.

한수원이 특화형 AI를 구축하는 건 기술과 규제가 복잡하게 얽힌 원전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원전이 국가 주요 보안시설이기 때문에 효율만큼 보안도 중요해 국내 기업과 손을 잡았다. 김창현 한수원 ICT융합처 AI추진부 차장은 “기획 초반에는 당시 가장 성능이 검증됐던 미국 오픈AI의 챗GPT를 사용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AI 주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한수원 문서가 대개 개조식으로 작성되는데,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학습하려면 한국어 AI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그는 부연했다.

우리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학습한 ‘소버린(주권)AI’ 개발에 관심이 높다. AI 기술이 산업은 물론 사회 모든 영역에 깊이 침투하면서, 독자 AI 모델 구축은 경쟁을 넘어 기술과 문화 주권을 지키는 핵심이 됐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에선 이미 소버린AI 활용을 시작한 가운데, 평소 소버린AI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하정우 네이버 퓨처AI센터장이 이재명 정부의 AI미래기획수석으로 발탁되면서 정부의 ‘AI 100조 투자’ 역시 소버린AI 구축을 중심으로 재편될 걸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소버린AI가 한정된 자원을 ‘빅테크 따라잡기’에만 쓰는 방향으로 가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산 AI 모델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

18일 테크업계에 따르면, 하 수석은 "한국의 언어와 데이터로 학습한 우리만의 파운데이션(기반) 모델을 민간 협력으로 개발하고, 이렇게 만든 AI 모델을 오픈소스(개방형)로 공개해 여러 기업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또 이를 위해 “한국 대표 AI 기업 3, 4곳에 그래픽처리장치(GPU) 5,000장을 몰아줘야 한다”며 과감한 인프라 투자를 강조해왔다.

소버린AI가 중요한 이유는 주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방과 안보, 외교 분야에 국가 기밀을 다룰 소버린AI가 필요하다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민감한 군사·외교적 사안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와 지정학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는 AI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된다. 프랑스의 미스트랄AI, 중국의 문샷AI나 딥시크처럼 각국이 자국어 AI 개발에 수십조, 수백조 원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국가 핵심 기술과 산업을 보호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 AI'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수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지난 3월부터 네이버클라우드와 함께 하이퍼클로바X 기반으로 한국 금융·경제 데이터에 특화한 생성형AI 모델 구축을 시작했다.

하 수석의 소버린AI 구상은 특히 기술 주권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AI가 우수하다는 이유로 여기에만 의존하면 한국 AI 기술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다. 하 수석이 지난 2월 국회 토론회에서 “미국의 AI가 100점이라면 우리는 90, 95점 수준을 스스로 축적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 주권이 확립되지 않으면 앞으로 경제적 종속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해외 AI 서비스가 향후 갑자기 사용료를 높일 가능성에 대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대 모델 쫓다 되레 시기 놓치지 않게"

이재명(왼쪽)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하정우 네이버 퓨처AI센터장이 3월 민주당 유튜브 채널 '모두의질문Q'에서 대담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하 수석이 새 정부의 AI 정책을 총괄하게 됐지만, 정작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소버린AI 구축이 명시되진 않았다. 가장 맞닿은 개념이 ‘모두의 AI 프로젝트’다. 국민 모두가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선진국 수준의 AI를 만들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금융, 교육, 재난대응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하 수석이 기업인의 시각으로 주장해왔던 소버린AI 비전을 대통령의 공공 AI 구상과 조율해 정부가 추구하는 소버린AI가 무엇인지 구체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소버린AI를 진흥하더라도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AI 3대 강국’을 목표로 5년간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는 여전히 빅테크 기업들의 한 해 투자금액 정도다. 더욱이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기까지 최소 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거대 모델을 구축하려다 오히려 기술주권 확보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I 스타트업 포티투마루의 김동환 대표는 “소버린AI 구축 계획이 '빅테크 모델과 비슷한 걸 우리도 만든다'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남들이 전기차 엔진을 만들 때 뒤늦게 내연기관차 엔진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소버린AI가 꼭 필요한 분야에 초점을 맞추되, 우리가 강점을 갖는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특화형 AI에 투자하는 방법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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