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2032년 발사 예정인 달 착륙선의 임무와 직결되는 탑재체 개발사업이 올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데 이어 내년 예산 배정도 무산될 조짐이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조정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국과심)에서 우주항공청(우주청)이 제시한 탑재체 개발사업 예산이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달 착륙선을 실어나르는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이 우주청의 계획 변경 시도로 멈춰 있다. 달 탑재체도 내년 예산을 받지 못한다면 개발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지난달 열린 국과심에서 우주청이 계획으로 내놓은 달 탑재체 개발사업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다. 국과심은 내년 과학기술 관련 주요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내년 R&D 예산의 배분·조정을 진행하는 회의다. 11월 국회에서 예산을 최종 확정하기 전까지 달 탑재체 개발사업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올해에 이어 2년간 예산이 없는 셈이다.
2032년을 목표로 한 달 착륙선 개발 내용이 담긴 '달 탐사 2단계 사업'은 2023년 10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 당초 계획했던 6300억원 규모에서 1000억원 가량 축소된 53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착륙선에 실릴 탑재체 개발을 제외한 본체 개발만 예타를 통과하면서 예산이 줄었다. 당시 예타 과정에서 탑재체가 달 착륙선의 임무나 목표와 직결되는 만큼 중요성을 감안해 정부는 별도의 사업으로 탑재체 개발을 시작하기로 확정했다.
달 탐사 2단계 사업 예타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 주관부처는 2023년 9월까지 '우주탐사 로드맵'을 수립해 달 탐사 목적 임무와 착륙 후보지를 도출한 후 세부 과학기술임무 및 탑재체 개발을 위한 국내외 공모에 착수하고 올해 달 착륙선의 임무와 탑재체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우주탐사 로드맵은 한국이 언제, 어디로, 왜, 어떤 기술로, 어떤 순서로 우주를 탐사할 것인지 정리한 문서다.
올해 예산이 없어 탑재체 개발을 시작하지 못하면서 달 착륙선 개발에 차질을 주고 있다. 달 탐사 2단계 사업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탑재체가 정해지지 못한 데다 달 착륙선을 나르는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도 답보 상태라 연구현장에서는 올해 달 탐사 2단계 사업 예산 450억원을 받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말했다.
탑재체에 따라 달 착륙선 모양, 성능, 무게 등이 달라질 수 있어 탑재체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달 착륙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과심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주청이 우주탐사 로드맵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같은 이유로 우주청이 요청한 탑재체 개발사업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또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우주청이 예타 보고서에 언급된 우주탐사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았는데 올해도 마련하지 않아 탑재체 개발사업 예산이 통과되지 못했다"며 "기준 없이 탑재체 개발사업 예산을 통과시키면 시간이 흘러 우주개발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주청은 충분히 달 탐사 사업 임무를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달 표면 과학·기술 임무선정위원회를 구성해 달 착륙선의 임무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또 2월 우주과학탐사 추진전략, 지난주 분야별 전략 로드맵을 발표했다. 올해 하반기 우주탐사 전반의 중장기 계획을 담은 우주과학탐사 로드맵을 공청회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주청이 제시한 추진전략의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 관계자는 "예타 당시 우주탐사 로드맵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이유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들어 토론을 진행해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 장기적인 우주탐사 로드맵을 만들라는 의미였다"며 "학계 대다수 전문가들은 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주탐사 로드맵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우주 탐사를 추진해 나가는 데 시류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며 "지난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통해 우주탐사 로드맵이 80~90% 완성됐다고 알려졌지만 발표되지 않고 있어 의아하다"고 밝혔다.
대학의 한 우주항공학과 교수도 "지난해에 이어 1년이 지난 올해도 아직 우주청이 우주탐사 로드맵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으니 우주청에서 급히 올해 말 우주탐사 로드맵을 공개한다고 하지만 전문가들과 충분히 합의를 거칠지 의문이다"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달 탑재체 R&D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주청에서 탑재체 개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당장 달 착륙선 사업을 위해 어떤 임무를 먼저 해야하는지 책임감 있게 정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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